13. 문학 산책

사미인곡(思美人曲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2. 18. 15:19

 

사미인곡(思美人曲)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 임과의 인연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이별 후의 그리움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세월의 무상함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 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결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 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 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 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결사 - 변함없는 충성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임에 대한 충성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가 : 정철(鄭澈;1536~1593)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연대 : 선조 18년~22년(1585~1589)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서정 가사(抒情歌辭)[3·4조 내지 4·4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연군의 정, 임금을 그리는 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율격 : 3(4).4조의 4음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문체 : 운문체. 가사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서사, 본사<춘원(春怨) ·하원(夏怨) ·추원(秋怨) ·동원(冬怨)>, 결사의 3단 구성.

서사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 : 쌍이 되어 있는 것. 또는 대칭이 되어 있는 것 )하였다.

본사

(춘하추동)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면, 임금의 심정 또한 어떠할 것인지 궁금해 하는 뜻을 읊었다.

춘하추동 사계절마다 고조되는 임을 향한 그리움의 정한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 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하다고 노래하였다. 또한, 하원에서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이 옷을 지어 보내드리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미화법을 써서 정성의 극진함을 표현하고 있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 중에서 청광(淸光)을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였다.

동원에서는 임이 추울까 양춘을 붙이고 싶어하며,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결사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읊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계절별 주요 소재에 담긴 상징적 의미

계절

소재

상징적 의미

 

매화

임에 대한 화자의 충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화자가 임에게 이른 봄의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매화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변함없는 충절을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임에 대한 그리움과 충정

여름

임에 대한 화자의 알뜰한 정성 : 옷을 통해 사무치는 외로움과 임에 대한 애틋한 사람을 드러냄

가을

청광(달빛)

임의 선정을 갈망하는 화자의 충정

겨울

양춘(봄볕)

임에 대한 화자의 염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어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노래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국문학사에서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①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② '정과정(鄭瓜亭)'을 원류(源流)로 하는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다.

③ 우리말 구사의 극치를 보여 준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송강 가사(松江歌辭)성주본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 : 송강이 50세 되던 선조 18년(1585)에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의 논척(論斥 : 옳고 그름을 따져 물리침)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그의 고향 전남 창평(昌平)에 4년 간 우거(寓居)할 때 지은 작품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가 : 서포(西浦) 김만중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은 이 세 편뿐이다.'(左海眞文章只此三篇 : 좌해진문장지차삼편)'라고 극찬하였고,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비겨 '동방의 이소(東方之離騷)'라고 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의 문학적 우수성 : 이 작품은 임금인 선조를 사모하는 연군의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연모하는 마음에 비겨서 노래하였다. 다양한 기법과 절묘한 언어가 구사되어, 가사 작품 중에서도 그 문학성이 두드러진다. 표현상의 기법으로는 비유법, 변화법을 비롯하여 연정을 심화시키는 점층적 표현이 쓰였다. 시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고 있으며,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정서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과 '사미인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속미인곡

사미인곡

공통점

1. 화자가 모두 천상의 백옥경(궁궐)에서 하계(유배지)에 내려온 여성임

2. 임에 대해서 화자가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음

3. 죽어서도 임을 따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음(다른 자연물로 변신 : 서정주의 '춘향유문'도 이와 유사한 표현)

차이점

내용
전개

화자와 보조적 인물의 대화체

화자의 독백체

화자의 일상 시간에 따른 전개로 임의 일상 생활을 염려하는 말 속에서 사계절이 잠깐 언급됨

임에 대한 그리움을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읊음

표현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소박하고 진실한 표현으로 서포 김만중이 송강의 작품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한 작품

한자숙어와 전고가 간혹 섞여 있으며 과장적 표현이 많음

화자의 태도

임의 소식을 알아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 보러 다니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애절한 마음으로 임을 기다리는 성숙한 감정을 표현했다는 점

속만 태우며 앉아서 임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임에 대한 일방적 지향이라는 점이 강함

어조

직설적이고, 소박한 서민 여성의 진솔하고 절실한 목소리

그리움을 안으로 삭이고 점잖게 표현하는 사대부 규중 여인의 목소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에서의 화자 갑녀와 을녀의 차이점

갑녀

을녀

을녀의 하소연을 유도하고,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결말 짓게 함

갑녀의 질문에 응하면서 하소연을 하면서 작품의 정서적 분위기를 주도함

작품의 전개와 종결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이 강함

작품의 주제 구현을 위한 실제적 중심 역할

보조적 위치에 있는 화자(보조적 위치에 있는 화자이지만, 문제가 있는 것이 마지막 결론 부분을 가장 강렬하고 의미있게 끝맺는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구태여 두 화자로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이 제기될 수 있다)

작가의 처지를 대변하는 중심 화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송강 정철은 '미인'을 한글로 '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본래 '미인'은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 항상 사모하고 있는 군주, 재덕이 뛰어난 사람, 한나라 여관의 명칭, 무지개의 별명, 미남자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미인곡', '속미인곡'에서 작중 화자는 분명 임을 이별한 여인이므로, 여기서 '미인', 곧 '임'은 남성이거나 군주이다. 따라서 송강 가사에서는 '미인, 임'은 '사랑하는 임이자 미덕을 갖춘 임(군주)'이다. 한편, 송강 가사를 좀더 넓게 해석하면, 임을 꼭 군주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여자)로도 볼 수 있다. 절실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송강가사에서 임금을 미인으로 설정한 것은 남녀의 인간적인 정감의 교류를 군신 관계에 끌어들인 셈이고, 그래서 송강의 작품들이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 임과의 인연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나와 임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임과 운명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또한 어찌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백년해로 :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하기 전의 행복했던 시절의 상황. 나=작자 자신, 님 = 임금, 선조, 어울리는 한자성어는 금상첨화[(錦上添花) :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으로, 좋은 일 위에 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안석의 글에서 유래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 이별 후의 그리움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올 적에 비슨 머리 헝클어진지 3년일세 : 위인작춘연(爲人作春姸) 라는 말이 고문진보 '진사도'가 쓴 '박첩명이수'라는 시에 있다. 그 말은 남을 위해 봄화장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인은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 작춘연은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것, 곱게 치장하는 것.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궁궐에서 임을 모시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온 지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광한전은 임금이 계시는 궁궐, 하계는 작자가 은거하고 있는 전남 창평. 작자가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論斥)을 받고 창평에 퇴거(退去)한 때가 선조 18년(1585) 8월이므로, 이 작품의 창작 연대가 선조 21-22년(1588-1589)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 세월의 무상함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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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금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데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세월이 흘러가니 임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 가고) 듣고 보고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서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서사로서 임과의 인연이 천생 연분임을 밝히고, 이별의 한과 그리움으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심정을 나타낸 부분이다. 전편에 여성적인 감정과 어투와 행위로 가득 차 있다. 한 편의 연시(戀詩) 형식으로 작자의 심정과 처지를 말하고, 끝 부분에서 본사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으며, 충신 연군의 정을 남편과 생이별한 한 여인의 심정에 의탁하여 표현하였고, 임과 이별한 지 3년, 한과 그리움으로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데, 무심한 세월은 덧없이 흘러 계절 따라 온갖 회포를 자아낸다고 여성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3년'이란 작자가 전남 창평에서 은거해 있는 동안을 말한다.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 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은근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 비치니. '暗香(암향)'은 매화의 속성으로 작자의 변함 없는 충성심을 img080111051.gif은 임금을 상징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직접 보여 드리고 싶은 작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매화'와 같은 나의 충정을 알아 주실런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학수고대]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 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한 여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공작'을 바꾸어 두르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img1-sa-mi-222-222.gif : 자화자찬을 하고 있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기도 험하구나. 산과 구름은 자신과 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따라서 '산'과 '구름'은 간신 또는 정적(政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간신들이 임금님의 총명을 가리고 있어 조정이 어지럽다'는 뜻이다

본사의 춘·하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로 춘원에서는 봄의 정경과 창 밖의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었고, 하원에서는 여름의 정경과 원앙금으로 옷을 지어 임에게 보내고 싶은 정성을 표현했다. '매화'는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고 암향(暗香)은 절개와 충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이것이 임을 표상하는 달과 조화를 이루어 임금을 그리는 충성이 함축성 있게 표현되었다. '하원'에서는 긴긴 여름날에 고독에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원앙금으로 임의 옷을 지어내는 알뜰한 정성으로 나타나, 임에 대한 일편단심, 변함 없는 충성을 절실하게 드러내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 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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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러기는 사랑에 있어서 믿음을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러기의 울음 소리를 통해 작자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끄러운 조정을 은근히 풍자하며 임금의 선정을 기대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또 자신이은거하고 있는 이 곳까지도 임금의 은혜가 미치기를 바라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 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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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온 세상이 눈에 뒤덮여 움직이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인 '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萬徑人踪滅 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온 길엔 사람 하나 자취 없다.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차가운 강
  위에서 호올로 낚시한다'
를 암인(暗引)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임과 이별한 후의 뼈에 사무치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다. 이 밤은 언제나 밝을 것인가. 임이 없는 외로운 밤이기에 원앙침도 차게 느껴지고 밤도 길게만 생각된다. 임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여성의 입장에서 밝히고 있다.

본사의 추원-동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 부분인 추원과 동원으로 '추원'에서는 달, 혹은 별(북극성)을 임(임금)에 비유하여 그 달빛 같고, 별빛 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갈망했고, '동원'에서는 따뜻한 햇볕을 부쳐 보내고 싶어하는 여성다운 알뜰한 정성과 긴긴 겨울 밤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여성다운 애절함으로 노래했다. '졈낫'은 선정(善政)을 비유한 것이고, '뎐공후'는 외로움을 달래는 매개물로 동원되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임에 대한 충성심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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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열두   셜흔 날' 등의 표현은 시름과 한의 양을 표현하기 위한 수법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임을 가까이 할 수 없어 얻은 병이기에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서 영혼으로나마 임을 만나겠다는 강렬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임과 함께 하겠다는 염원이 반영된 표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 비록 임이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를지라도, 나는 오직 임만을 좇겠다는 일편단심을 표현한 구절이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전 편의 절정을 이룬 부분이다. 이 구절은 서사의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와 호응 관계를 이루면서 임을 따르려는 사랑의 일념이 숙명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결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결사로 임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일념을 노래한 부분으로, 전반부에서는 하루 열 두 때 한 달 설흔 날 한 시도 잊지 못하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한을 거의 절망에 가까운 탄식으로 노래를 했고,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그리움과 한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죽어 범나비가 되어서라도 영원히 임을 따르겠다는 강렬한 집념을 표현하였다. 이 집념이 바로 충신의 불변의 충성을 뜻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고려 때의 정과정을 연원으로 하여 조선 성종 때 조위의 만분가를 거쳐 온 충신연군지사는 송강의 '사미인곡'에 이르면 이렇듯 농염한 한 사랑의 노래로 변하여 격조 높은 문학 작품이 된 것이다.

1. 가사의 형식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이 작품을 낭송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가사 장르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가사는 3·4 또는 4·4조를 기본 음수율로 하며, 4음보 연속체의 운문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가사는 눈으로 읽기보다는 낭독하는 데서 그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음을 알고 학생들이 낭송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몸 / 삼기실 제 / 님을 조차 / 삼기시니, / 한 생 / 연분이며/ 하늘 / 모를 / 일이런가' 와 같은 방식으로, 3·4 또는 4·4조의 음수율과 4음보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낭송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내용 전개에 따라 '서사 - 본사 -결사'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정적 자아 정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흐름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상의 흐름에 따라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전체 구성은 서사 - 본사 - 결사로 이루어져 있고, 본사는 다시 춘원(春怨), 하원(夏怨) , 추원(秋怨), 동원(冬怨)의 사계절로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하고, '본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사' 와 '결사' 의 내용을 정리해 보게 한다.

예시답안 :

서사 :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낙향한 것을,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사 : 본사의 '춘원' 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이를 임금께 보내고 싶은 심정을, '하원' 에서는 비단으로 임의 옷을 지어 화려한 규방에서 기다리는 심정을, '추원' 에서는 가을날의 맑고 서늘한 기운을 임에게 보내어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는 심정을, '동원' 에서는 홀로 자는 차가운 침상에서 임을 생각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결사 :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는 임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서라도 임에게 옮기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 부분에는 신하의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충정이 담겨 있다.

3. 이 작품에서 '淸光(청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루)의 븟티고져.' 라는 표현이나, '陽春(양춘)을 부쳐 내여 님겨신 데 쏘이고져.' 와 같은 표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자연물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관적으로 변용한 독특한 표현이다. 이러한 구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에 내재된 독특한 발상과 표현을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조와 가사의 독특한 표현 방법과 발상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정되었다. 시조의 표현을 통해 원래 말하고자 한 내용을 추출해 내고 다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살펴보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가) 시조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나) 는 기나긴 겨울밤을 홀로 지내는 고독한 시간을 줄이고 싶은 작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

예시답안 :

(가) 시조의 시적 화자는 봄바람을 빌어다가 귀 밑의 백발을 녹이겠다고 한다. 이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인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물을 부리며, 늙어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시조의 시적 화자는 외로운 시간을 넣었다가 임 오신 밤에 구비구비 펴겠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추상물을 마치 이불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로 변형시켜 접었다 펴고 있다는 참신한 발상의 소산이다.

(다) 시조의 초장에서 전원에 남은 흥을 전나귀에 모두 싣는다는 표현이 참신한 발상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과 관련 작품들

 정철의 〈사미인곡〉은 〈속미인곡〉을 낳았으며, 그후 이를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형식을 지닌 일련의 가사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은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본받아 임금에 대한 충성을, 임을 향한 여인의 정조와 그리움의 방식을 빌려 고백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고전문학사에서 임금을 사랑하는 대상으로서의 임에 비유하는 문학적 관습을 자리잡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노래에 대해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제갈공명의 〈출사표 出師表〉에 비길 만한 작품이며, 악보(樂譜)의 절조(絶調)"라고 평했고,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중국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 離騷〉에 비길 만한 것으로, 자고로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이 셋뿐이다"라고 극찬했다. 이수광(李光)은 〈지봉유설 芝峰類說〉에서 "우리나라 노래 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해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했다"라고 평했다. 충신이었던 굴원의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해 지었다고는 하나, 한 구절도 인용한 것이 없고 오히려 그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다. 국문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송강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난 4년간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연모하는 연군지사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실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사모하는 신하의 정성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의 내용이 춘, 하, 추, 동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두고 있어서, 모두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외로운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경시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준 작품으로서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제목인 '사미인(思美人)'은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제 9장의 '사미인'과 같다. 그래서 임금께 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어 죽어서도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소의 충군적 내용에다, 송강 자신의 처지를 맞추어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문학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고려 때의 '정과정'과 조선 성종 때의 조위(曺偉)의 유배가사 '만분가(萬憤歌)'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의 아작(亞作)이 아니라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지만, 송강의 작품에서는 권력지향적인 느낌이 강하게 스며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치 체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의 작품의 한계성을 본다는 것이 오늘날의 시각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1

 '사미인곡'은 송강 정철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나 4년간 전남 담양 창평에서 은거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이다.

 창작 배경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충정을 하소연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자신을 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로, 임금(선조)을 임으로 설정하고 네 계절의 경물을 완상하는 가운데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전체는 서사, 본사, 결사로 구성되고,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그리면서 그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연군의 정을 엮어 낸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임이 나를 모르더라도 나는 임을 따르겠다는 결사는 한 여인의 절절한 애정의 표현이자 신하로서의 일편단심의 충정을 함축하고 있다. 뛰어난 우리말 구사의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사랑하는 임으로 설정하는 방식은 고려 속요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시리',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대한 평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도 역시 송강이 지은 것이다. 이것은 시경에 있는 미인이라는 두 글자를 따 가지고 세상을 걱정하고 임금을 사모하는 뜻을 붙였으니, 이것은 옛날 초나라에 있었던 '백설곡'만이나 하다고 할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속미인곡은 역시 송강이 지은 것으로, 앞의 노래가 다하지 못한 말을 다시 펴서 꾸밈이 더욱 공교하고 뜻이 더욱 간절하여 가치 제갈공명의 '출사표'와 맞먹는다. -
홍만종의 '순오지'에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 미인곡은 우리나라의 '이소'이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뿐인데, 다시 이 세 편에 대하여 논할 것같으면 그 중에서 속미인곡이 더욱 뛰어났다.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은 오히려 한자음을 빌어서 그 가사 내용을 꾸민 데 지나지 않는다. - 김만중의 서포만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우리나라 노래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하여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하였다.
-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정철 가사의 문체적 특징과 문학사적 의미

  '송강가사' 는 가사사(歌辭史)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작품일 뿐더러 문학성의 측면에서도 우뚝 솟은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그 까닭은, 거듭 말하거니와,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의식의 단초를 그에 걸맞는 언어로써 드러내고자 한 송강가사의 문체에 있다고 볼 것이다.

  송강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서 다양하게 대화의 전개 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이것은 '훈민가'에서 송강이 강원도 백성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백성 A가 백성 B에게 전언하는 형식을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볼 때 송강가사의 미적 원천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대화의 다양한 층위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송강가사의 문제는 문어체 소설과 대비하여 보면, '판소리 서사체에서는, 흔히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언어(내적 분석)로부터 인물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내적 언어(독백)로의 전치(轉置)를 유도하는 예의 인용투어를 생략하거나 탈락시켜 버림으로써, 서술과 독백의 경계 없이 양자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양상은 초기의 가사에서 이미 보여진 바였다. 민요와 사대부 문학의 결합이라는 가사의 특성상 구어체와 문어체의 혼용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16세기의 가사들에서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는 반면, 송강가사에서는 문학적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언어 실험의 시도로 나타났다. '서술자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숨기도 해서, 서술자의 목소리와 시점, 인물의 목소리와 시점이 다양하게 조합됨으로써 상호침투 내지 공존' 하는 현상은 실로 송강가사의 문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6세기는 주자학이라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에 보였던 과도기적 경향도 그러한 거시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송강이 가졌던 상대주의적 의식도 주자주의의 틀 속에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송강가사의 문체 또한 완전한 의미의 대화체로 보기는 어렵다. 송강가사의 후기의 기행가사인 '연행가' 나 '일동장유가'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의한 의식이나 경험의 세계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를 토대로 송강가사가 전기가사의 최고봉이면서 그 마지막에 놓인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가사사적 전망을 세워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발생기의 가사가 민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사대부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상승하는 계급으로서의 사대부가 민중의 언어를 포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사가 서정성을 띤 이유도 마찬가지로 이제 상승을 끝낸 사대부들이 그들의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송강가사에서 보이는 언어 현상은, 지배계급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모순이 쌓여 가는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민중의 언어가 스며든 것인 셈이다.

  송강가사의 문체가 보여 주는 특성들은 궁극적으로 개화기의 대화체가사에서 드러나는 언술적 특성의 단초가 되었다. 대화체가사의 서사화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고 후기가사의 서사화는 '누항사'가 그 선편을 쥐고 있었던 바, 서사화의 가능성은 원칙적으로는 가사의 언술적 특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송강가사의 언어 실험이 그 매개항이 되기 때문이다. 송강가사는 이른바 사대부가사의 백미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누항사' 에서 비롯되는 후기가사의 서사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송강가사는 전기가사의 마지막이면서 최고봉인 동시에 사대부가사 자체의 원리는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출처 : 조세형, '송강 가사의 이해와 감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사미인곡

사미인곡 

1588년(선조 21)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6구이다. 음수율에서는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 3·3조, 4·4조, 5·5조, 5·3조 등도 나타난다. 송강집 松江集≫·≪송강가사 松江歌辭≫·≪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한다.
작자는 50세되던 1585년 8월에 당파싸움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평(昌平)에 은거한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이 사미인곡이다. 고신연주(孤臣戀主)의 지극한 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구성은 서사(緖詞)·춘원(春怨)·하원(夏怨)·추원(秋怨)·동원(冬怨)·결사(結詞) 등의 6단락으로 짜여져 있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하였다.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고 싶으나 임금의 심정 또한 어떤 것인지 의구하는 뜻을 읊었다.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 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함을 노래하였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 중에서 청광(淸光)을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였다.
동원에서는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읊었다.
사미인곡 작품 전체가 한 여성의 독백으로 되어 있고, 여성적인 행위·정조(情調)·어투·어감 등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맞는 소재를 빌려 작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 또한 비범한 것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그래서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사미인곡을 가리켜 가히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하다(可與孔明出師表爲佰仲着也).라고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그의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사미인곡의 속편이라고 한 속미인곡 續美人曲, 관동별곡 關東別曲과 함께 동방의 이소요, 자고로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3편뿐이다(松江先生 鄭文淸公 關東別曲 前後思美人歌 乃我東之離騷……自古左海眞文章 只此三編).라고 대단히 칭찬하였다.
동국악보 東國樂譜에서는 사미인곡에 대해 영중의 백설(中之白雪)이라고 하였다. 사미인곡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중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다.
내용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많기는 하나 한 구절의 인용도 없고 오히려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서
사미인을 능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후대에 이르러 사미인곡을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들이 나타나게 된다.
정철의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이 모두 사미인곡의 영향에 의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정철의 전후사미인곡과 같이 충군(忠君)의 지극한 정을 읊은 것으로 정철의 작품을 모방하여 지어진 것이다. 한역시로는 김상숙(金相肅)이 소체(騷體)로 번역한 것이
이병기(李秉岐) 소장의 사미인곡첩에 전하고 있고, 성연경재(成硏經齋)의 오언시인 사미인곡역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松江集, 松江歌辭, 松江別集, 追錄遺詞, 北軒集, 鄭松江硏究(金思燁, 啓學社, 1950), 松江의 前後思美人曲硏究(徐首生, 경북대학교논문집 6, 1962), 曲攷(林瑩澤, 낙산어문, 서울대학교, 1966), 思美人曲 歌辭의 比較硏究(徐元燮, 경북대학교논문집 11, 1967).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정철(鄭澈)

 1536년(중종 31)∼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서울 장의동(藏義洞 :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 아버지는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이다.
어려서 인종의
숙의(淑儀)인 누이와 계림군 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막내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인종 1·명종 즉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아버지는 함경도 정평(定平)으로, 맏형 자(滋)는 광양(光壤)으로 유배당하였다. 곧이어 아버지만 유배가 풀렸다.
12세 되던 1547년(명종 2) 양재역 벽서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을사사화의 여파로 아버지는 경상도
영일(迎日)로 유배되었고, 맏형은 이 때 장류(杖流) 도중에 32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이 시기 정철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 생활을 하였다.
1551년 원자(元子) 탄생의 은사(恩赦)로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기에서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양응정(梁應鼎)·김인후(金麟厚)·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다. 또, 이이(李珥성혼(成渾송익필(宋翼弼) 같은 큰 선비들과도 사귀었다.
17세에 문화유씨(文化柳氏) 강항(强項)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25세 때 〈성산별곡〉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노래는 성산(별뫼) 기슭에 김성원이 구축한 서하당(棲霞堂)과
식영정(息影亭)을 배경으로 한 사시(四時)의 경물과 서하당 주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고, 이듬해 문과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성균관 전적 겸 지제교를 거쳐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 이어 좌랑·현감·도사를 지내다가 31세에 정랑·직강·헌납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함경도암행어사를 지낸 뒤, 32세 때 이이(李珥)와 함께
호당(湖堂)에 선출되었다. 이어 수찬·좌랑·종사관·교리·전라도암행어사를 지내다가 35세 때 부친상을, 38세 때 모친상을 당하여 경기도 고양군 신원(新院)에서 각각 2년여에 걸쳐 시묘살이를 하였다.
40세인 1575년(선조 8) 시묘살이 복을 벗고 벼슬길에 나아가 직제학 성균관 사성,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이 무렵 본격화된 동서분당에 따른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벼슬을 버리고 담양 창평으로 돌아갔다. 창평 우거시에 선조로부터 몇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43세 때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승진하여 조정에 나아갔다. 그 해 11월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되나 진도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반대파인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1580년 45세 때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 때 〈관동별곡〉과 〈훈민가 訓民歌〉 16수를 지어 시조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의 재질을 발휘하였다.
그 뒤 전라도관찰사·도승지·예조참판·함경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48세 때 예조판서로 승진하고 이듬 해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음해(1585)에 사직, 고향인 창평으로 돌아가 4년간 은거생활을 하였다. 이 때 〈사미인곡〉·〈속미인곡〉 등의 가사와 시조·한시 등 많은 작품을 지었다.
54세 때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서인의 영수로서 최영경(崔永慶) 등을 다스리고 철저히 동인들을 추방하였다.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고 인성부원군(寅城府院君)에 봉해졌다.
56세 때 왕세자 책립문제인
건저문제(建儲問題)가 일어나 동인파의 거두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와 함께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기로 했다가 이산해의 계략에 빠져 혼자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였다.
이에
신성군(信城君)을 책봉하려던 왕의 노여움을 사서 “대신으로서 주색에 빠졌으니 나랏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는 논척을 받고 파직되었다.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주(晋州)로 옮기라는 명이 내린 지 사흘 만에 또다시 강계(江界)로 이배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1592년(선조 25) 57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귀양에서 풀려나 평양에서 왕을 맞이하고 의주까지 호종, 왜군이 아직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경기도·충청도·전라도의 체찰사를 지내고 다음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동인의 모함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다가 58세로 별세하였다.
작품으로는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등 4편의 가사와 시조 107수가 전한다. 시조는 ≪송강별집추록유사 松江別集追錄遺詞≫ 권2에 〈주문답 酒問答〉 3수, 〈훈민가〉 16수, 〈단가잡편 短歌雜篇〉 32수, 〈성은가 聖恩歌〉 2수, 〈속전지연가 俗傳紙鳶歌〉 1수, 〈서하당벽오가 棲霞堂碧梧歌〉 1수, 〈장진주사 將進酒辭〉 등이 실려 있다.
상당히 중복되기는 하나 성주본(星州本)과 이선본(李選本) ≪송강가사 松江歌辭≫에도 많은 창작시조가 실려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대체적으로 애군(愛君)·애민(愛民) 사상을 저변에 깔고 있다.
이 외에도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하는 인간미 넘치는 작품, 강호 산수의 자연미를 노래한 작품이 있다. 그리고 선취(仙趣)적 기풍과 풍류적 호방함을 담아낸 작품 등 폭넓은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송강집≫과 시가 작품집인 ≪송강가사≫가 있다. 전자는 1894년(고종 31)에 간행한 것이 전한다. 후자는 목판본으로 황주본(黃州本)·의성본(義城本)·관북본(關北本)·성주본(星州本)·관서본(關西本)의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그 중 관북본은 전하지 않고 나머지도 책의 일부만 전한다.
필사본으로는 ≪송강별집추록유사≫와 ≪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가 있다. 한시를 주로 실은 ≪서하당유고 棲霞堂遺稿≫ 2권 1책도 판각본으로 전한다. 창평의 송강서원, 영일의
오천서원(烏川書院) 별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李朝時代의 歌謠硏究(金思燁, 大洋出版社, 1956), 松江·盧溪·孤山의 詩歌文學(朴晟義, 玄岩社, 1966), 松江鄭澈硏究(金甲起, 二友出版社, 1985), 國譯 松江集(松江遺蹟保存會, 第一文化社, 1988), 松江文學硏究(申庚林·李殷鳳·曺圭益 編著, 國學資料院, 1993), 松江歌辭의 硏究 1∼3(李秉岐, 震檀學報 4·6·7, 1936∼37), 松江의 前後美人曲의 硏究(徐首生, 慶北大學校論文集 6, 1962), 訓民時調硏究(尹星根, 한뫼金永驥先生古稀紀念論叢, 1971), 장르論的 關心과 歌辭의 文學性(金炳國, 현상과 인식, 1977 겨울호)(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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