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 임과의 인연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이별 후의 그리움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세월의 무상함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 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결렸고, 수 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 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 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 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 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 - 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결사 - 변함없는 충성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임에 대한 충성심 요점 정리 작가 : 정철(鄭澈;1536~1593) 연대 : 선조 18년~22년(1585~1589) 갈래 : 서정 가사(抒情歌辭)[3·4조 내지 4·4조] 성격 :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 주제 : 연군의 정, 임금을 그리는 마음 율격 : 3(4).4조의 4음보 문체 : 운문체. 가사체 구성 : 서사, 본사<춘원(春怨) ·하원(夏怨) ·추원(秋怨) ·동원(冬怨)>, 결사의 3단 구성.
계절별 주요 소재에 담긴 상징적 의미
내용 :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어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노래하였다. 의의 : 국문학사에서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①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품이다. ② '정과정(鄭瓜亭)'을 원류(源流)로 하는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다. ③ 우리말 구사의 극치를 보여 준 작품이다. 출전 : 송강 가사(松江歌辭)성주본 배경 : 송강이 50세 되던 선조 18년(1585)에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의 논척(論斥 : 옳고 그름을 따져 물리침)을 받고 관직에서 물러나 그의 고향 전남 창평(昌平)에 4년 간 우거(寓居)할 때 지은 작품이다. 평가 : 서포(西浦) 김만중은 '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장은 이 세 편뿐이다.'(左海眞文章只此三篇 : 좌해진문장지차삼편)'라고 극찬하였고,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비겨 '동방의 이소(東方之離騷)'라고 하였다. 사미인곡의 문학적 우수성 : 이 작품은 임금인 선조를 사모하는 연군의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연모하는 마음에 비겨서 노래하였다. 다양한 기법과 절묘한 언어가 구사되어, 가사 작품 중에서도 그 문학성이 두드러진다. 표현상의 기법으로는 비유법, 변화법을 비롯하여 연정을 심화시키는 점층적 표현이 쓰였다. 시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고 있으며,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정서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속미인곡'과 '사미인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속미인곡'에서의 화자 갑녀와 을녀의 차이점
내용 연구 송강 정철은 '미인'을 한글로 '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본래 '미인'은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 항상 사모하고 있는 군주, 재덕이 뛰어난 사람, 한나라 여관의 명칭, 무지개의 별명, 미남자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미인곡', '속미인곡'에서 작중 화자는 분명 임을 이별한 여인이므로, 여기서 '미인', 곧 '임'은 남성이거나 군주이다. 따라서 송강 가사에서는 '미인, 임'은 '사랑하는 임이자 미덕을 갖춘 임(군주)'이다. 한편, 송강 가사를 좀더 넓게 해석하면, 임을 꼭 군주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여자)로도 볼 수 있다. 절실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송강가사에서 임금을 미인으로 설정한 것은 남녀의 인간적인 정감의 교류를 군신 관계에 끌어들인 셈이고, 그래서 송강의 작품들이 보편적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 나와 임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임과 운명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올 적에 비슨 머리 헝클어진지 3년일세 : 위인작춘연(爲人作春姸) 라는 말이 고문진보 '진사도'가 쓴 '박첩명이수'라는 시에 있다. 그 말은 남을 위해 봄화장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인은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 작춘연은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는 것, 곱게 치장하는 것.
: 임금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데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서사의 이해와 감상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은근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 비치니. '暗香(암향)'은 매화의 속성으로 작자의 변함 없는 충성심을 은 임금을 상징한다.
: 임과 이별한 여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공작'을 바꾸어 두르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본사의 춘·하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로 춘원에서는 봄의 정경과 창 밖의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은 심정을 나타내었고, 하원에서는 여름의 정경과 원앙금으로 옷을 지어 임에게 보내고 싶은 정성을 표현했다. '매화'는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고 암향(暗香)은 절개와 충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이것이 임을 표상하는 달과 조화를 이루어 임금을 그리는 충성이 함축성 있게 표현되었다. '하원'에서는 긴긴 여름날에 고독에 몸부림치는 한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원앙금으로 임의 옷을 지어내는 알뜰한 정성으로 나타나, 임에 대한 일편단심, 변함 없는 충성을 절실하게 드러내었다.
: 기러기는 사랑에 있어서 믿음을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러기의 울음 소리를 통해 작자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 시끄러운 조정을 은근히 풍자하며 임금의 선정을 기대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또 자신이은거하고 있는 이 곳까지도 임금의 은혜가 미치기를 바라고 있다.
: 온 세상이 눈에 뒤덮여 움직이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인 '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萬徑人踪滅 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온 산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온 길엔 사람 하나 자취 없다.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차가운 강 본사의 추원-동원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본사 부분인 추원과 동원으로 '추원'에서는 달, 혹은 별(북극성)을 임(임금)에 비유하여 그 달빛 같고, 별빛 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갈망했고, '동원'에서는 따뜻한 햇볕을 부쳐 보내고 싶어하는 여성다운 알뜰한 정성과 긴긴 겨울 밤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여성다운 애절함으로 노래했다. '졈낫'은 선정(善政)을 비유한 것이고, '뎐공후'는 외로움을 달래는 매개물로 동원되었다.
: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열두 셜흔 날' 등의 표현은 시름과 한의 양을 표현하기 위한 수법이다. 결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의 결사로 임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일념을 노래한 부분으로, 전반부에서는 하루 열 두 때 한 달 설흔 날 한 시도 잊지 못하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한을 거의 절망에 가까운 탄식으로 노래를 했고,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그리움과 한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죽어 범나비가 되어서라도 영원히 임을 따르겠다는 강렬한 집념을 표현하였다. 이 집념이 바로 충신의 불변의 충성을 뜻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고려 때의 정과정을 연원으로 하여 조선 성종 때 조위의 만분가를 거쳐 온 충신연군지사는 송강의 '사미인곡'에 이르면 이렇듯 농염한 한 사랑의 노래로 변하여 격조 높은 문학 작품이 된 것이다. 1. 가사의 형식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이 작품을 낭송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가사 장르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가사는 3·4 또는 4·4조를 기본 음수율로 하며, 4음보 연속체의 운문의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가사는 눈으로 읽기보다는 낭독하는 데서 그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음을 알고 학생들이 낭송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몸 / 삼기실 제 / 님을 조차 / 삼기시니, / 한 생 / 연분이며/ 하늘 / 모를 / 일이런가' 와 같은 방식으로, 3·4 또는 4·4조의 음수율과 4음보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낭송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내용 전개에 따라 '서사 - 본사 -결사'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정적 자아 정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흐름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상의 흐름에 따라 서정적 자아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전체 구성은 서사 - 본사 - 결사로 이루어져 있고, 본사는 다시 춘원(春怨), 하원(夏怨) , 추원(秋怨), 동원(冬怨)의 사계절로 나누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하고, '본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사' 와 '결사' 의 내용을 정리해 보게 한다. 예시답안 : 서사 :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낙향한 것을, 광한전에서 하계로 내려온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본사 : 본사의 '춘원' 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이를 임금께 보내고 싶은 심정을, '하원' 에서는 비단으로 임의 옷을 지어 화려한 규방에서 기다리는 심정을, '추원' 에서는 가을날의 맑고 서늘한 기운을 임에게 보내어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싶다는 심정을, '동원' 에서는 홀로 자는 차가운 침상에서 임을 생각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결사 :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는 임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죽어서 범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서라도 임에게 옮기고 싶다고 했다. 특히 이 부분에는 신하의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충정이 담겨 있다. 3. 이 작품에서 '淸光(청광)을 쥐어 내여 鳳凰樓(봉황루)의 븟티고져.' 라는 표현이나, '陽春(양춘)을 부쳐 내여 님겨신 데 쏘이고져.' 와 같은 표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자연물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관적으로 변용한 독특한 표현이다. 이러한 구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작품에 내재된 독특한 발상과 표현을 설명해 보자. 이끌어 주기 : 이 활동은 시조와 가사의 독특한 표현 방법과 발상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정되었다. 시조의 표현을 통해 원래 말하고자 한 내용을 추출해 내고 다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살펴보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가) 시조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나) 는 기나긴 겨울밤을 홀로 지내는 고독한 시간을 줄이고 싶은 작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 예시답안 : (가) 시조의 시적 화자는 봄바람을 빌어다가 귀 밑의 백발을 녹이겠다고 한다. 이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인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물을 부리며, 늙어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시조의 시적 화자는 외로운 시간을 넣었다가 임 오신 밤에 구비구비 펴겠다고 한다. 시간이라는 추상물을 마치 이불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로 변형시켜 접었다 펴고 있다는 참신한 발상의 소산이다. (다) 시조의 초장에서 전원에 남은 흥을 전나귀에 모두 싣는다는 표현이 참신한 발상이다. 사미인곡과 관련 작품들 정철의 〈사미인곡〉은 〈속미인곡〉을 낳았으며, 그후 이를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형식을 지닌 일련의 가사 작품들이 쏟아져나왔다.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은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본받아 임금에 대한 충성을, 임을 향한 여인의 정조와 그리움의 방식을 빌려 고백한 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고전문학사에서 임금을 사랑하는 대상으로서의 임에 비유하는 문학적 관습을 자리잡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노래에 대해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제갈공명의 〈출사표 出師表〉에 비길 만한 작품이며, 악보(樂譜)의 절조(絶調)"라고 평했고,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중국 초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 離騷〉에 비길 만한 것으로, 자고로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이 셋뿐이다"라고 극찬했다. 이수광(李光)은 〈지봉유설 芝峰類說〉에서 "우리나라 노래 중 정철이 지은 것이 가장 훌륭해 〈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이 후세에 성행했다"라고 평했다. 충신이었던 굴원의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해 지었다고는 하나, 한 구절도 인용한 것이 없고 오히려 그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다. 국문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송강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난 4년간 전남 창평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연모하는 연군지사인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실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사모하는 신하의 정성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의 내용이 춘, 하, 추, 동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두고 있어서, 모두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외로운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경시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준 작품으로서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제목인 '사미인(思美人)'은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제 9장의 '사미인'과 같다. 그래서 임금께 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어 죽어서도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소의 충군적 내용에다, 송강 자신의 처지를 맞추어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문학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고려 때의 '정과정'과 조선 성종 때의 조위(曺偉)의 유배가사 '만분가(萬憤歌)'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의 아작(亞作)이 아니라 송강다운 문학적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지만, 송강의 작품에서는 권력지향적인 느낌이 강하게 스며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치 체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의 작품의 한계성을 본다는 것이 오늘날의 시각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해와 감상1 '사미인곡'은 송강 정철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나 4년간 전남 담양 창평에서 은거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지은 작품이다. 창작 배경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충정을 하소연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왕과 자신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자신을 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로, 임금(선조)을 임으로 설정하고 네 계절의 경물을 완상하는 가운데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전체는 서사, 본사, 결사로 구성되고, 본사는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그리면서 그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연군의 정을 엮어 낸 솜씨가 탁월하다. 특히 임이 나를 모르더라도 나는 임을 따르겠다는 결사는 한 여인의 절절한 애정의 표현이자 신하로서의 일편단심의 충정을 함축하고 있다. 뛰어난 우리말 구사의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사랑하는 임으로 설정하는 방식은 고려 속요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가시리',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출처 : 한계전외 4인 공저 블랙박스 문학) 심화 자료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 대한 평가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뿐인데, 다시 이 세 편에 대하여 논할 것같으면 그 중에서 속미인곡이 더욱 뛰어났다.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은 오히려 한자음을 빌어서 그 가사 내용을 꾸민 데 지나지 않는다. - 김만중의 서포만필
정철 가사의 문체적 특징과 문학사적 의미 '송강가사' 는 가사사(歌辭史)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예비하는 작품일 뿐더러 문학성의 측면에서도 우뚝 솟은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그 까닭은, 거듭 말하거니와,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의식의 단초를 그에 걸맞는 언어로써 드러내고자 한 송강가사의 문체에 있다고 볼 것이다. 송강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서 다양하게 대화의 전개 방식을 변경한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이것은 '훈민가'에서 송강이 강원도 백성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백성 A가 백성 B에게 전언하는 형식을 취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볼 때 송강가사의 미적 원천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서 대화의 다양한 층위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송강가사의 문제는 문어체 소설과 대비하여 보면, '판소리 서사체에서는, 흔히 서술자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언어(내적 분석)로부터 인물의 시점에서 진술되는 내적 언어(독백)로의 전치(轉置)를 유도하는 예의 인용투어를 생략하거나 탈락시켜 버림으로써, 서술과 독백의 경계 없이 양자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양상은 초기의 가사에서 이미 보여진 바였다. 민요와 사대부 문학의 결합이라는 가사의 특성상 구어체와 문어체의 혼용은 이미 배태되어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이 16세기의 가사들에서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는 반면, 송강가사에서는 문학적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언어 실험의 시도로 나타났다. '서술자의 존재가 드러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며 숨기도 해서, 서술자의 목소리와 시점, 인물의 목소리와 시점이 다양하게 조합됨으로써 상호침투 내지 공존' 하는 현상은 실로 송강가사의 문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6세기는 주자학이라는 절대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에 보였던 과도기적 경향도 그러한 거시적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송강이 가졌던 상대주의적 의식도 주자주의의 틀 속에 국한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송강가사의 문체 또한 완전한 의미의 대화체로 보기는 어렵다. 송강가사의 후기의 기행가사인 '연행가' 나 '일동장유가' 등에서 볼 수 있는 상의한 의식이나 경험의 세계를 드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를 토대로 송강가사가 전기가사의 최고봉이면서 그 마지막에 놓인다는 사실을 해명하는 가사사적 전망을 세워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발생기의 가사가 민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사대부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까닭은 상승하는 계급으로서의 사대부가 민중의 언어를 포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사가 서정성을 띤 이유도 마찬가지로 이제 상승을 끝낸 사대부들이 그들의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송강가사에서 보이는 언어 현상은, 지배계급의 언어만으로는 더 이상 모순이 쌓여 가는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게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민중의 언어가 스며든 것인 셈이다. 송강가사의 문체가 보여 주는 특성들은 궁극적으로 개화기의 대화체가사에서 드러나는 언술적 특성의 단초가 되었다. 대화체가사의 서사화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고 후기가사의 서사화는 '누항사'가 그 선편을 쥐고 있었던 바, 서사화의 가능성은 원칙적으로는 가사의 언술적 특성 자체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송강가사의 언어 실험이 그 매개항이 되기 때문이다. 송강가사는 이른바 사대부가사의 백미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바로 이어지는 '누항사' 에서 비롯되는 후기가사의 서사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송강가사는 전기가사의 마지막이면서 최고봉인 동시에 사대부가사 자체의 원리는 해체되고 있었던 것이다.(출처 : 조세형, '송강 가사의 이해와 감상') 사미인곡
1588년(선조 21)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6구이다. 음수율에서는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 3·3조, 4·4조, 5·5조, 5·3조 등도 나타난다. ≪송강집 松江集≫·≪송강가사 松江歌辭≫·≪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한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하였다. 정철(鄭澈) 1536년(중종 31)∼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인·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서울 장의동(藏義洞 :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출생. 아버지는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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