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문학교과서에 실린 미당의 시

월정月靜 강대실 2007. 9. 20. 18:19

춘향유문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불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미당은 우리 옛 이야기를 모티프 삼아 즐겨 시를 썼습니다. 특히 춘향은 미당이 각별히 사랑한 인물로 ‘춘향의 말’이라는 부제를 달고 춘향의 마음을 노래한 시 3부작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춘향유문」은 그 중 옥중에 갇힌 춘향이 죽음을 앞두고 이도령에게 남기는 유언의 말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목에는 무거운 칼을 지고 쓸쓸한 눈빛으로 지난 일을 떠올리며 이 생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기는 춘향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옥에 갇힌 춘향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그저 바라보고 있는 이도령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서글픈 인사로 입을 연 춘향은 그러나 죽음도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고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승도 춘향의 사랑보다 먼 곳은 아닐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느 곳에 어느 모습으로 있든지 마음이 함께 있는 한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땅 밑을 흐르던 물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것과 같이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하지만 소나기가 되어서라도 다시 도련님 곁으로 오겠다는 굳은 사랑의 의지를 춘향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보입니다. 

 비록 춘향이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비단 춘향만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애절한 사랑의 감정. 그 걸림돌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랑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춘향이의 애절한 유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추천사(鞦韆詞)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波濤)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곱게 차려입은 춘향이가 그네를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네를 뛰고 있는 춘향의 마음은 단옷날 정취를 즐기기 위해 나왔던 지난날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 봄 광한루에서 이몽룡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이후 춘향의 마음을 얽매는 것이 있으니 계급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도덕이 그것입니다. 자유롭게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춘향은 자신을 옭아매는 이 땅을 벗어나 훨훨 날아오르고만 싶습니다. 사랑에 빠져 울렁이는 춘향의 가슴은 더욱 먼 곳으로만 가기를 원합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춘향은 자신이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하늘에 떠 있는 달같이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춘향이는 그네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향단이에게 바람이 파도를 밀어올리듯 계속해서 그네를 밀어달라고 청합니다. 쉬 부서지는 파도처럼 높이 올랐다가 금세 내려오는 그네이지만 춘향은 그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도령에게 향하는 사랑을 멈출 수 없는 한 그녀의 부질없는 그네타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자화상  --  서정주

 

 

핵심 정리

 

주제:시련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살아온 삶에 대한 회고

     자신의 고통스런 삶의 회고와 그에 좌절하지 않는 강렬한 생명적 욕구

제재:자화상

성격:관념적, 상징적, 격정적

출전:<시건설> (1939)

표현상 특징:강렬한 어조,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 구사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시상 전개

 

제1.2연:가난한 시련의 삶

제  3연:고뇌 속에서 자신의 시련과 고통을 시로 승화시킴.

 

제1연:불행한 어린 시절의 기억 / 가난한 생활에 대한 부끄러움과 한스러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궁색한 집안의 모습 묘사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임신한 어머니의 모습과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궁핍한 가정의 모습

      달을 두고:한 달 동안 계속하여. 여자가 아이를 가짐.

      흙으로 바람벽 한:답답하고 어두운 공간

      갑오년:동학혁명이 일어난 해. 1894년.

      바다:새로운 세계

 

제2연:성장기의 시련과 고통의 회고

      팔할(八割):종노릇하는 아버지,늙은 할머니,빈곤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二割을 키운 것이라면 나머지 팔할(八割)은 젊음의 방황과 시련이 키운 것이라는 뜻

                 '팔할'의 '파'라는 파열음은 '바람'의 음상과 호응을 이루며 절묘한 음악적 효과를 자아낸다.

      바람:험한 세파의 상징

           힘겨운 방랑과 삶의 역정(고통과 시련)

      부끄럽기만 하드라:방황과 시련 속에 살아온 나이기에 세상을 대하는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고백한다. 이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경우처럼 자아의 순결성에 바탕을 둔 부끄러움이 아니라 현실적 죄의식에 바탕을 둔 부끄러움이다. 말하자면 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살아왔기에 남에게 떳떳하게 나설 만한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서 죄인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천치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당당하고 단호한 어조. 궁핍과 상실의 공간에서 벗어나 유랑의 세계로 뛰어든 것은 죄인이 되건 바보가 되건 자기의 책임이므로 후회는 없는 것이다.

 

제3연:생에 대한 강렬한 욕구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희망과 소생의 정경

      티워 오는:상승

              Cf. 늘어뜨린:하강을 나타낸다.

      시의 이슬:괴로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의 열매를 나타낸다.

      피:고통스런 자기 번민과 열정의 몸부림. 즉 고뇌의 상징. 피는 창조의 원동력이자 이슬로 승화되어야 할 숙명을 지닌 이중적이고 모순된 존재다.

      병든 수캐:절망과 쇠락의 표정을 나타낸다. 이 시의 화자가 그린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시어 → 현실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혓바닥을 늘어뜨린 병든 수캐'에 비유

 

해설 및 감상

 이 시는 근대 역사의 시련기를 배경으로 하여 힘겨운 삶을 살아 온 한 인물의 반생을 솔직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자화상(自畵像)

 

「자화상」에서 시인이 회고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당시까지 겪어 온 20여 년의 생애일 것이다. 그 세세한 내용이 과연 실제의 사실과 그대로 부합하느냐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사항은 이 작품에 나타난 한 인물의 생애가 지닌 근원적 고통과 방랑의 모습,그리고 이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결의이다.

제1연은 주인공 `나'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보여 준다. 그것은 불행한 역사의 그림자 속에 있다. 그의 집안은 모순된 사회 제도와 가난에 시달렸다. 할아버지는 동학 농민 전쟁이 일어나던 갑오년에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바다에 간 것이 아니라 그 농민 전쟁에 가담하였다가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종이었기에 주인을 위한 일에 매이어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못하고는 했다. 이 쓸쓸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암시된다. 바람에라도 쓰러질 듯 가늘고 연약한 모습 ― 이것이 위의 구절에서 암시되는 의미이다. 그런 가운데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나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두운 밤 흙벽에 일렁거리는 호롱불 아래 가난에 찌든 어린 소년이 때가 낀 까만 손톱을 하고 이 어두운 풍경의 일부분이 되어 앉아 있다.

여기서 갑자기 시상의 흐름이 바뀌어 그의 지난 생애가 몇 마디 말로 요약된다. 스물 세 해 그의 생애를 지배한 것은 대부분이 바람, 즉 끊임없는 방랑, 세상 속에서의 시달림, 흙먼지와 추위 같은 것들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그의 고통을 어떤 죄의 값이라 여기기도 하였으며, 그를 천치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감연히 말한다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개인적인 괴로움과 역사의 시련이 겹친 삶을 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나 아픔을 뉘우침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삶의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세게 일어나도록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에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나타난다.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시의 이슬이란 곧 괴로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의 열매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병든 숫캐마냥 흔덕거리며 나는 왔다.'고 그가 말하는 것은, 그러므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쓰디쓴 회고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릴 수 없는 생명적 욕구에의 강렬한 확인이 된다. [해설: 김흥규](한국현대시, 대한교과서)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메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낸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은 화가가 거울을 보며 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미당은 붓 대신 펜을 들고 어느 그림보다도 훌륭하게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그의 고뇌에 찬 이마를, 그늘 진 뺨을 그리고 날카롭고 당당하게 빛나는 눈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만나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역사를 말입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영상처럼 떠오르는 시의 첫 행. 아버지가 종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술은 사실 판단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개인의 역사일 수도 있고 조국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과 권위의 상징인 부성(父性)의 상실 즉 아버지가 부재하는 현상입니다. 초라하고 어두운 집안에는 파뿌리처럼 늙은 할머니와 만삭인 어머니가 아버지 없는 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외롭고 가난하지만 새로운 생명을 끈질기게 만들어갑니다. 꽃이 핀 대추나무와 해산달을 앞둔 어머니는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갑오년 이후 돌아오지 않는 외할아버지가 휩쓸려간 바다는 같은 해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역사의 바다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시련의 바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외할아버지를 닮은 그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난한 종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스물 세 해 동안 겪었을 모진 풍파는 짐작키 어렵지 않습니다. 그를 키운 바람엔 시련, 고통, 방황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현실에 대항해 살아온 그는 사람들의 괄시와 질시를 한 몸에 받기도 했지만 결코 뉘우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치열하게 살아온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고통스러운 삶의 역정을 지나온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꽃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의 삶이 탄생시킨 순결한 시의 이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탄생시킨 시의 이슬은 투명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몇 방울의 피가 맺혀 있는 시, 그 고난의 핏방울은 그의 시와 인생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줍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얻은 시가 있기에 그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깨달음 때문에 그는 병든 수캐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신부(新婦)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미당의 고향인 선운리 마을의 옛 이름은 질마재입니다. 질마재에서 내려오던 갖가지 전설들,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져 있는 그 이야기들을 미당은 『질마재 신화』라는 시집에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신혼 초야, 신랑의 오해로 버림을 받은 신부가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가 오십 년 만에 매운재로 내려앉았다는 이 이야기 역시 질마재에서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미당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옛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첫날 밤, 잠시 자리를 비운 남편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다보고도 싶지만 오늘밤 나는 새신부입니다. 살짝 고개들어 바깥 소리에 귀기울여보기도 하지만 차마 일어나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다리가 저려옵니다. 달은 기울고 어둠이 점점 옅어집니다. 새벽을 알리는 첫 닭 울음소리를 들은 후에야 야속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칩니다.  

 그녀의 가혹한 기다림은 십년, 이십년, 삼십년 계속됩니다.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나중엔 원망스런 마음에 오기가 생겨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기다림 그 자체가 이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아주 오랜 후에야 찾아왔습니다. 왜 이제야 왔느냐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그녀는 한 줌 매운 재로 내려앉아 버립니다. 기다림이라는 숙명에 얽매여있던 그녀는 마침내 그가 내민 한번의 손길로 자유로워졌습니다. 야속한 우리네 옛 여인의 일생입니다.

 

 

무등(無等)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玉)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때로 문학은 우리를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괜찮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문학에 의지하여 우리는 안도하고 또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서정주가 이 시를 쓴 시기는 우리 민족 대부분이 극단적인 궁핍에 시달리던 6. 25 전쟁 직후입니다. 황폐해진 삶의 터전에서 어렵게 생활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 미당은 따뜻하고도 꿋꿋한 음성으로 위로합니다. 가난은 한낱 남루일 뿐이라고.

 전쟁의 상처로 모두가 궁핍하고 배고프던 시절, 미당은 푸르른 모습으로 의젓하게 서 있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이 시를 썼습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자칫 ‘인간의 인간다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을 순수하게 길러내야 하고, 서로의 마음을 보다듬으며 의젓하고 꿋꿋하게 버텨나가야 한다고 미당은 말합니다.

시련 속에서도 푸르른 무등산처럼 우리의 타고난 순수성은 가난 속에서도 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령 지금 당장 가시덤불에 놓여 있다하더라도 소중한 옥돌처럼 호젓이 뭍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가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것이라는 소박한 진실을 미당은 이 시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꽃이든, 별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 마음을 참으로 기쁘게 합니다. 아름다운 시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시를 마주하여 한 번, 두 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어 곱씹어 볼 때 번져오는 기쁨, 그것은 너무도 소중한 기억이 됩니다.

‘동천’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기억이 되기에 충분한 詩입니다. 시를 읽고 눈을 감으면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오두마니 뜬 초승달이 그려집니다. 누군가는 초승달을 두고 인간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나 궁금해 하는 하느님이 살짝 내놓은 귀라고 했지만 미당은 그 어여쁜 모습을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이라고 합니다.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 하늘에 옮기어 놓은’ 눈썹에는 님을 향한 나의 정성스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천일동안의 꿈으로 맑게 씻긴 초승달은 그래서 매우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초승달이 드러내는 맑고 차가운 기품에 매서운 새도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비끼어 갑니다. 미당은 이 시를 통해 절대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 혹은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 말입니다.

 초승달은 겨우 밤하늘의 한 구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초승달의 고운 자태와 분위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 달을 보며 시의 화자처럼 사랑하는 임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느다란 실반지를 떠올리며 인연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던 겨울 밤 초승달이 가진 절대적 아름다움은 우리 마음속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미당은 이렇게 차가우면서도 맑은 겨울 하늘을 한 폭의 멋스러운 동양화 같은 이 짧은 시 안에 잘 담아냈습니다.

 

 

꽃밭의 독백 - 사소단장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사소’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박혁거세를 잉태한 그녀는 산으로 신선수행을 떠나게 되는데 미당은 길 떠나기 전 사소가 꽃을 보며 홀로 말하는 장면을 시로 그려내었습니다.

 홀로 꽃과 마주한 사소는 말합니다. 노래가 좋긴 해도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올 수밖에 없고, 힘차게 달리는 말 역시 바다 앞에서는 멈추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인간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이렇게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유한한 세계가 아닌 영원한 세계를 갈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다른 것들에 비해 자연과 가까이 있긴 하나 활이나 매로 잡을 수 있는 산돼지나 산새에도 입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은 사소의 눈에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신선이 되어 영원한 세계에 살기를 꿈꾸는 사소는 그래서 꽃을 제일 좋아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꽃처럼은 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인간입니다. 꽃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단지 기대어 서 있기만 한 사소는 꽃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외칩니다. 꽃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말입니다. 벼락과 해일 같은 고통도 꽃으로 대표되는 영원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그녀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세계와 사물에 대한 관찰과 치열한 고민으로 그 누구보다 현실 세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을 미당이기에 사소의 독백은 미당의 염원처럼 들려옵니다.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歸蜀途)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머언 옛날 중국 촉나라의 임금이던 망제는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별령이라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나라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일순간 나라를 빼앗기고 돌아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망제는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죽어서 두견새가 된 망제는 밤마다 불여귀(不如歸),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으며 목에서 피가 배어나오도록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제의 혼이 담긴 그 새를 두견새, 소쩍새 혹은 귀촉도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귀촉도는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새입니다. 미당은 이러한 귀촉도의 슬픈 사연을 임과 이별한 여인의 마음에 빗대어 노래하였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임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임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길을 떠났습니다. 흰 옷깃을 여미며 떠난 길, 아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강을 건너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긴 머리칼을 잘라 신을 삼아주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우리 전통 장례 풍습에는 입관하기 전 죽은 자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는 의식이 있습니다. 저승가는 길에 신으라는 의미의 그 신, 그녀는 머리카락으로나마 그의 마지막길을 함께하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후회스럽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목에 피가 배어나도록 울부짖었던 귀촉도처럼 울고 또 웁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회한이 담긴 울음을 우는 새, 울다울다 지쳐 목이 젖어버린 새, 그것은 떠난 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그녀입니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모든 꽃과 잎들이 시드는 늦은 가을, 국화는 서리 속에서도 홀로 향기롭게 꽃을 피웁니다. 모든 생명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잎을 떨구고 몸을 움츠리는 동안 국화는 봄 소쩍새의 울음, 여름 천둥의 울음을 가슴에 간직한 채 활짝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 국화가 우리 누님을 닮았습니다. 젊음의 뒤안길에서 방황하다가 이제야 돌아와 편안히 거울을 마주하게 된 누님을 말입니다. 누님과 국화가 닮은 까닭은 국화를 피우기 위해, 봄의 소쩍새와 여름 천둥의 울음, 가을의 무서리가 필요했듯이 성숙한 여인으로 누님이 거울을 마주하기까지는 젊은 시절의 방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고 하나의 영혼이 성숙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처럼 누님 역시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여인입니다. 국화의 아름다운 노오란 꽃잎이 정신적으로 성숙한 누님과 닮았다면, 또 나의 시가 바로 그들을 닮았습니다. 간밤 잠을 설치며 고뇌하여 얻은 한편의 시, 그것이 바로 무서리를 맞으며 피어난 국화, 그리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인 것입니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진정 아름다운 것들엔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 우리 눈에 눈물이 고이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이 슬픔이라는 본질을 동반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진실하고 애틋한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있어야 한다는 견우의 말도 이와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칠월 칠석 단 하루만 만날 수 있는 슬픈 연인들. 견우는 자신들의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고 어쩌면 그로인해 자신들의 사랑이 더욱 커지고 성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날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은하수 앞에 나가 하염없이 눈물짓고, 어떤 날은 목이 쉬도록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는 애틋한 기억들이 칠월칠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견우와 직녀 사이의 먼 거리를 나타내는 은하물도 어두운 검은색이 아니라 희망의 푸른 색을 띠는 것입니다.

견우, 직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래서 해마다 칠월칠석이 되면 비를 기다리게 됩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들의 만남을 떠올리며 우리도 각자의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을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