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3. 손택수 시/4. 홍어

월정月靜 강대실 2025. 4. 2. 19:35

홍어

 

어느날인가는 시큼한 홍어가 들어왔다
마을에 잔치가 있던 날이었다
김희수씨네 마당 한가운데선
김나는 돼지가 설겅설겅 썰어지고
국솥이 자꾸 들썩거렸다
파란 도장이 찍히지 않은 걸로다가
나는 고기가 한점 먹고 싶고
김치 한점 척 걸쳐서 오물거려보고 싶은데
웬일로 어머니 눈엔 시큼한 홍어만 보이는 것이었다
홍어를 먹으면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지느니라
지엄하신 할머니 몰래 삼킨 홍어
불그죽죽한 등을 타고 나는 무자맥질이라도 쳤던지
영산강 끝 바닷물이 밀려와서'흑산도 등대까지 실어다줄 것만 같았다
죄스런 마음에 몇 번이고 망설이다, 어머니
채 소화도 시키지 못한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는데
나는 문득문득 그 홍어란 놈이 생각나는 것이다
세상에 나서 처음 먹는 음식인데
언젠가 맛본 기억이 나고
무슨 곡절인지 울컥 서러움이 치솟으면
어머니 뱃속에 있던 열달이 생각나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