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사랑 이야기 / 고재종
저 밤나무의 밤송이들이
왜 가시옷으로 무장을 하고
왜 종주먹질을 해대는지 아시는지는
나는 기억하는데요
모내기 끝난 지난 유월
모내기 끝낸 여남은 사람들
해설피 정자에 앉아
남은 막걸리 마저 기울이다간
앞산 보고 넋을 잃었는데요
그 앞산엔 젖살빛 밤꽃무더리
뭉실뭉실, 수만 구름 떼 밀어올리며
물큰물큰, 숫컷내 마냥 풍겨댔는데요
그 꽃 보다 넋을 잃다 다 가고
샛터집 과수댁만 뿌리치고 남아
워매, 저 징헌 놈의 꽃 좀 보소
워매, 이 징헌 놈의 냄새 좀 보소
꽃멀미 한 태산 일으켰는데요
혹여 그 일 때문에
혹여 그 환장할 일 때문에
저 밤나무의 밤송이들
저렇게 가시옷에다
종주먹질을 해대는 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정녕 그렇다면
저 밤나무의 밤송이를 까주어선
그 속의 알알들 쏟게 할 수 있는 건
바람 같은 세월일까요
미륵불 같은 침묵의 기다림일까요
아, 남에게는 넘치는데
나에겐 바짝 마른 사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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