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스크랩] 2010신춘문예 당선작(시부문)

월정月靜 강대실 2010. 1. 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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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동아일보 신춘 시 당선작] 붉은 호수에 빈병하나 / 유병록

 

당선소감

꽉 쥔 주먹처럼 의지 견고하게 할 것

 

나는 이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커다란 손도 있다 한 번 휘두르면 길이 나고 바다에 띄우면 그대로 배가 되는 손, 그 계곡에서는 물줄기가 흐르는데, 역사라고 불린다는데
이 조그만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손은 연약한 도구에 불과하다 오므려보지만 물 컵으로 삼기에도 작다

흘러 다니는 운명이라고는 고작해야 목을 축이기에도 부족한데

 겨울 산에 오르자, 폭포가 꽝꽝 얼어붙어 있다 길게 펼쳤던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쥔 폭포, 울퉁불퉁 힘줄이 솟은 물의 팔뚝, 안쪽으로 흐르는 뜨거운 혈관
즐거운 한때를 어루만졌던 손을 씻고 주먹을 쥔다 더 이상 운명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지를 움켜쥐었을 때의 주먹은 견고하다 이제 일격으로 몽상의 호숫가에서 물 마시는 저 물소들을 때려눕힐 시간이다

꽉 쥔 주먹을 가끔 펼친다면 가족과 친구들의 손을 잡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동안 부족한 제자를 격려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결점 많은 작품을 위해 기꺼이

통곡의 벽이 되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생물의 마지막 순간 끈질기게 천착

 

예심에서 골라준 시 작품들 가운데서 다섯 분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거론했다. 성동혁의 ‘렌터카를 타고’ 외 4편은 장식적이거나 매끄럽지 않은 조립이 있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을 유희로 전환하는 유머가 돋보였다. 안웅선의 ‘미션스쿨의 하루’ 외 4편은 간혹 서사를 기록할 때 어색한 문장들이 들어있는 시편이 있었지만 미성숙한 사춘기 화자를 내세워 오히려 내면적 고투의 나날이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방법이 눈길을 끌었다.

 강윤미의 ‘소심한 소녀의 소보루 굽기’외 4편은 암시성이 확장하는 폭은 좁았지만 지루한 일상에 발랄한 리듬과 어조의 고명을 얹어 아기자기한 서술이 되게 하는 상쾌함이 장점이었다. 박은지의 ‘서랍의 눈’ 외 4편은 시에 산문적이고 설명적인 언술들이 섞여 들었지만 한 가지 사물이나 현상을 끈질기게 해석해 보려는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가 눈길을 오래 머무르게 했다.
유병록의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외 4편 모두가 절명의 순간에 바쳐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생물의 마지막 그 한순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간혹 상투적 해석이 불필요하게 첨가되었지만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서 단연 시선의 깊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 작품들 간의 질적 수준의 균질함,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묘사력 등이 탁월했다.


최동호 시인·김혜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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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매일신문 신춘시 당선작 ] 그녀의 골반 / 석류화

 

그녀의 골반

 

석류화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그녀 속의 나비가 조금씩 앓고 있었던 거죠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25명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갈래였다. 안정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익숙한 문법의 작품들과 언어의 긴장이 돋보이는 패기 넘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안정적인 작품들은 패기가 부족하기 쉽고, 언어의 섬세함이 시선을 사로잡는 낯선 문법의 작품들은 공허한 말놀음의 혐의를 넘어서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두 사람이 각각 숙독하고 5편씩 고르니 겹친 한 작품을 포함해 9편의 작품이 다시 선별되었다. 논의 끝에 4편을 최종 후보로 골랐다. 권분자의 ‘여우비’ ·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 ·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 ·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이 그것이다.
권분자의 ‘여우비’는 삶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이 돋보였다. 언어 수련의 과정을 잘 거쳤음을 짐작게 하는 적절한 비유의 힘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산문적 발상이란 아쉬움을 남겼다. 성은주의 ‘검은 고양이 카바레의 검은 고양이 신사’는 시적 언어의 활달한 운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의욕이 넘쳐 정작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김승훈의 ‘입술에 관한 새들의 보고서’는 언어 자체의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실험적 작품이었다. 상상력의 참신함과 더불어 구조적인 완결성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신춘문예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영탄의 언어는 시의 진정성과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흠결을 드러냈다. 반면 석류화의 ‘그녀의 골반’은 핍진한 삶의 굴곡을 고루 살피는 성숙한 시선이 깃들여 있었다. 정확하고 곡진한 언어로 시상을 잔잔하게 엮어나가는 솜씨가 신뢰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아울러 투고한 작품들 모두 완성도가 높고 수준이 골랐다. 반면 젊은 패기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같이 남겼다. 심사위원들은 탄탄한 사유구조와 시적 완성도라는 관점에서 석류화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합당한 행운을 차지한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송재학(시인)
엄원태(시인· 대구가톨릭대 교수)


 

 

[당선소감]

 


때마침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거세게 끓기 시작하며 김을 내뿜는 저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떨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등점! 그렇습니다. 나에겐 이 비등점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늘 끓기 전에 멈춰버렸거나 식은 내 몸과 영혼을 달래며 다시 끓기 직전까지 올려놓는데도 오래 걸렸습니다. 돌아보면 반복을 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이 비등점에 이르면, 무언가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로 그곳을 바라보고만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을 향하여 늘 심지를 달궈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고 소외된 것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를 보았습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얘기를 가장 필요없고 사소한 것에 걸어서 얘기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았습니다. 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불가능에 대해 무릎 꿇었습니다. 오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게 시와 귀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시를 썼지만 아직도 쓰지 못한 한 줄을 위해서 앞으로 살아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을 수밖에 없는 시 속에서 그 한 줄을 위해 나를 바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각은 무디기만 합니다.
앞으로 많이 달라지지 않을 듯한 자신을 그래도 또 닦달하고 몰아붙일 것입니다.
책상 머리맡에 붙어 나를 항상 바라보는 근취제신(近取諸身), 원취제물(遠取諸物),
이 말의 귀한 뜻을 깨우치게 해주신 계명대 문창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의 몸을 들여다보라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늘 불안한 나를 애정으로 바라봐준 가족들과 선후배님들께도 함께 있어서 행복했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끄러운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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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산부인과 41병동에서/ 김현숙

 

산부인과 41병동에서/ 김현숙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0년 동안 빈방을 먹고 몸집을 키워 집채로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병실은 침묵의 섬, 형광 수족관 유리벽에 갇힌 여자는 영락없이 부레를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넙치가 되었다 TV는 밤낮없이 용산 강제철거 참사를 알리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는 내 깊은 동굴 속에서도 일어났다 마취 4시간 만에 피 주머니에 고인 D25는 몇 날 며칠 창자를 지나 억울하다고 빈터에서 울었다 화염에 휩싸여 죽은 용산참사 가족들이 TV 화면 속에서 실신했다 불을 낸 책임이 넙치라고 했다가 꽁치라고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그녀의 몸이 점차 수족관이 되었다 밤마다 몸을 떠난 부레가 허공을 날고 납작하게 엎딘 시간들을 물고 사라지는 갈치 떼가 보였다 스산한 야광을 구경하는 관객은 네모난 아파트와 깜박이지 않는 붉은 십자가들뿐, 그런데 왜 십자가는 약자들의 빛이 되지 못할까 크레졸 안개가 어지러웠다 가끔 배를 움켜쥐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은 투명한 해파리 촉수에 찔린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여성을 잃은 대신 생명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D25를 죽이고 그녀가 산 수족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도 잃고 터도 뺏긴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신문이 말했다 그들에겐 죽을지언정 터를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은 물대포로도 꺼지지 않는다 허공을 얻은 몸은 이미 바다가 되었을 테니.
 
*D25 : 여성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근종의 종류
 

 

[신춘문예-시 당선소감]詩 안에서 살고 詩 안에서 죽어야
 

 


 

등단이란 관문은 시인다운 시인을 가려 시의 고삐를 채워주는 의식이다. 시 안에서 살고 시 안에서 죽어야 그 고삐가 풀릴 것을 알기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살면서 고통당한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나쁜 것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죽음은 무의식이지만 고통은 의식의 연속, 인간의 내면을 죽음보다 더 두렵고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절박한 고통의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고 감내하는 마음으로 내면의 눈을 떠 세상을 보니 비로소 타인에 대한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여성성을 잃는 수술로 내 몸에 있던 생명의 요람이 철거되는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TV에선 용산참사 현장 화염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몸의 작은 기관 하나가 철거되는 순간에도 내 의지의 불꽃이 실존한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맹렬히 싸워야 할 실존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가진 자들이 만든 법이나 질서에 우선하는 생명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미흡한 시를 뽑아 준 고명한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진할 생각이다. 사랑하는 가족 재휘와 새미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영광이 골고루 나누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다.

△김현숙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강원대대학원 철학과 문학 석사 △시선 동인 △수향시낭송회 회원 △강원복지신문 기자

 


 

[신춘문예-시 심사평]의미와 상징성 융합 괄목상대
 응모작 대부분이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시의 형식적 요구는 만족시키고 있는 반면 상상력의 내면화나 깊이에는 미흡했다. 이는 언제부턴가 문화적 유행처럼 되어버린 시 쓰기 공부, 혹은 시인 만들기의 한 경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시단의 이슈였던 그로테스크 시와 환상적 상상력 혹은 가독성을 부인하는 시편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젊은 응모자의 새로움에 대한 시도와 함께 기존의 전통 서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생활고나 청년 실직자들의 좌절 등 현실과 세태를 반영하는 작품도 눈에 띄었고 함축의 어려움을 비켜가고자 하는 한 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전반적으로 시가 길고 또 산문성이 짙은 경향을 보였다.

1,200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중 최종심의 대상은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의 노래'를 비롯한 8편이었다. 그중 명순이의 `지각한 길'은 생을 조망하는 사유와 시각은 뛰어나나 다소 평이함에 머무른 감이 있고 김영삼의 `덩굴장미'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는 신선함이 돋보이는 반면 단정적인 표현과 상반되는 모호함의 혼재가 오히려 시의 진정성을 흐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들의 노래'는 생태적 상상력과 형식 면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관념성과 다소 교훈적이라는 측면에서 시의 리얼리티를 놓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 `산부인과 41 병동에서'는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병증을 병치시키면서 그 의미와 상징성들을 융합하는 역량이 괄목상대할 만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대성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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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부산일보 시 당선작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   /   심명수

 

 

 

잘 못 꾼 꿈이 지워진 거예요 마음이 시끄럽네요 쮸릿, 쮸릿, 칫, 칫 물이 끓고 있나요?

머릿속을 지우개로 박박 지웠더니 보글보글 구름이 생겼어요 요리에 앞서 별표 3개라는 걸 잊지 마세요 너무 많이 문지르면 검게 비구름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럼 한쪽으로 쓸어버려야 하죠 쓸려나간 구름은 어디선가는 필요로 하거든요 아픈 배 문지르던 엄마의 손길로 잘못 디딘 첫발을 지워봐요 뒷걸음질치며 구름이 송골송골 피어날 테니까요

일단은 지나가는 뜬구름 낚아채 통째로 집어넣어야만 해요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 토끼 기린 강아지 오빠 엄마 물고기 할머니 얼굴로 수시로 변하거든요 강아지가 싫으면 절대로 피해야 하니까요 오빠와 엄마를 요리하고 싶으면 적절할 때 낚아서 납득시킬만한 꺼리가 필요해요 잘못하면 당신이 설득 당할 테니까요 할머니에겐 안개구름 한 소반 선물해 봐요 그럼 그 속에 감춰진 추억을 하나하나 따내며 끄덕끄덕 하시겠죠 그리고는 겹겹이 포개진 뭉게구름 동강동강 썰어야 해요 구름의 남쪽, 비늘구름 잡아 당겨 살점만 떠 넣고요 다시 제 위치에 걸어놓아야 해요 요리는 늘어놓고 하면 곤란해요 제 살점을 잃은 구름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다른 형상으로 변해 떠나가버려요

하악, 그새 악어가 입 딱 벌리고 급 하강하는 줄 알았어요! 간이 철렁했죠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간 뒤에 간을 보니 싱거워요 소금을 좀 더 넣어야겠네요

요리를 하다 보면 알게 되죠 구름을 절대 새총으로 쏘아 잡으면 안 돼요 조리법에 어긋나는 일이죠 빗맞기라도 하면 냄비에 구멍이 나요 조루처럼 빵빵 뚫린 구멍으로 빗줄기가 쏟아질테니까요 조리법에 의하면 그 총탄자국은 밤에만 보인다지요 그것은 인간들이 쏘아댄 빗나간 꿈이에요, 별들의 실체라고도 해요

요리가 다 됐나요? 새털구름이 하늘 가득 웃자라 피었어요 여러 빛깔로 아롱진 꽃구름이 피었어요 배추흰나비가 노루귀 꽃잎에 앉았어요 지나가던 바람 배추흰나비 날개깃에 머무네요

요리는 다 되었나요, 꽃구름?

 

 

[당선소감] 시는 내 운명의 굴레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가 생각난다. 필립은 장애인으로서, 고아라는 환경으로, 예술적 고뇌 때문에, 여성에 대한 집념 등 운명적으로 쓰인 굴레를 힘겹게 극복해간다.

내 삶도 어찌보면 필립과 닮아 있다. 어린 날 부모님을 여의고 우리 가족은 폭탄 맞은 듯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파편 조각은 어느 수집가에 의해 귀하게 쓰임을 받았고 그 배려로 내 삶은 훈훈하게 생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필립과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 늦게 시를 접했다. 시는 오랫동안 내 삶의 밤하늘이었고 별이었고 꿈이었다. 이런 내게 날아든 당선 소식은 내 생의 어떤 소식보다 날 기쁘고 두렵게 했다. 운명처럼 조이던 굴레가 어쩐지 그리 무겁고 힘겹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제 나는 내 운명의 굴레보다 더 나를 옥죌 시의 굴레를 기껍게 쓰려 하기 때문이다.

시에 참신한 상상과 메타포의 날개를 달아주신 중앙대 예술대학원 김영남 선생님, 서투른 날갯짓을 소중하게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부산일보사에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분은 많으나 가슴으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별뫼 친구들, 정동진 회원님들과도 이 기쁨 밤새도록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심명수 / 1966년 충남 금산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인천은광학교 근무

 
정현종 시인
 
정호승 시인


 
나희덕 시인

[심사평] 상상력 증폭시키는 힘과 감각

시 부문 투고자들 중에서 본격적인 논의 대상으로 압축된 것은 강가영, 김승원, 최류, 김경덕, 심명수 등이었다. 이 다섯 사람의 작품은 각각 개성적인 목소리와 일정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졌다.

강가영의 섬세한 조형력, 김승원의 현실에 밀착한 시선과 절제된 표현, 최류의 독특한 존재론적 사유 등은 모두 소중한 것이었지만, 당선작이 되기에는 다소 인상이 약했다.

마지막으로 김경덕의 '포쇄도'와 심명수의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를 두고 적지 않게 고심했다. 김경덕의 시가 고전적 기품을 지니면서도 언어를 탄력있게 운용할 줄 알고 시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보여준다면, 심명수의 시는 착상이 재미있고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가는 힘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대조적인 세계 중에서 심사위원들은 결국 좀더 젊고 신선한 목소리를 선택했다. 심명수의 투고작 10편이 두루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당선작인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는 상상력의 요리법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이미지들의 변주를 보여준다. 이런 분출이 다소 소란스럽고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이탈과 생성의 순간은 즐거운 몽상으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낚아챌 때는 빠른 감각, 두꺼비 혀의 본능이 중요해요"라는 구절처럼 감각의 촉수가 예민하고 날렵한 이 신인이 앞으로 차려낼 풍성한 시의 밥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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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동양일보 신춘 시 당선작] 실을 잣는 어머니 / 성준

 

실을 잣는 어머니

 

 

성준

 

 

내 어린 아침의 마루에서 실을 잣는 늙은 어머니.

그녀의 낡은 집 처마 빈틈 사이엔 야윈 바람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 줄기를 물레로 감아올렸다.

부활을 꿈꾸다 죽은 고치.

그녀의 몸에선 그 고치 냄새가 빠질 줄 몰랐다.

뜨겁게 삶아진 고치에선 비린향이 났지만

천천히 물레가 돌때마다 바람 실이 꼬이며

뽑아지는 실 줄기에선 언제나 바람향이 났다.

늦둥이인 나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컸다.

어머니는 울고 들어온 어린 나에게

주름살만큼 많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쓰디쓴 이야기를 소화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고

실 자락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나는 여린 뽕잎처럼 오물거리며 잠들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어린 꿈을 품고

하나의 고치가 되어 부활을 꿈꾸며 실을 잣았다.

그날도 그녀는 마루에 앉아 종일 물레를 돌렸고

처마 밑 허공에 걸린 마른 옥수수 따위가

마른 뽕잎 부스러기처럼 떠다니는 바람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날에 나를 떠났고

어린 나는 그런 날은 좀 더 특별하게 올 줄 알았다.

어머니는 단단한 나무 관을 고치삼아 깊은 잠에 들었다.

석양 무렵 마당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태우자

그녀에 일생의 고치가 흐릿한 연기로 피어올랐고

연기는 짙은 밤하늘 천으로 올올이 흩어졌다.

어른이 된 석양의 끝자락에서

나는 차가운 밤의 천을 두르며 그리움의 고치를 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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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문화일보 신춘시 당선작]골목의 각질/ 강윤미

 

골목의 각질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불안한 청춘의 고통과 고뇌 긍정적으로 승화
심사평 
 
 


▲ 시인 황동규(오른쪽), 정호승씨가 지난 12월18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시 본심을 진행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700여명의 투고자 중 최종심까지 올라온 투고자는 모두 11명. 이 중에서 강윤미, 이명우, 장예은, 최영숙, 정한희 등 5명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논의한 결과,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과 이명우의 ‘붉은 도로’가 남게 되었다. 이명우의 경우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나 내용이 결핍돼 있다는 점, 삶의 체험을 시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부족하고 설명적인 데다 과장이 심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시는 아이디어로 쓰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쓰는 것이라는 점, 아이디어에 의존하면 실패할 확률은 적지만 그런 시인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 이명우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당선작으로 결정된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가 진정 좋은 시라는 점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 시는 불안한 청춘에 대한 고통과 고뇌를 골목이라는 구체적 삶의 공간을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특히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라는 부분은 호소력이 뛰어나다.

시는 상식적인 데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삶의 체험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 강윤미의 앞날에 신뢰가 갔다. 다만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는데 시에 사족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더러 있어 아쉬웠다. 시에 사족이 있으면 완결미가 떨어진다. 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는 게 아니라는 점, 침묵의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한국시단의 샛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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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 뼈의 기원
안병호

 
 
뼈의 기원
 
                                                                                                  안병호
문득, 뼈가 시려오면 
 내 뼈의 아득한 시원을 찾아 
 눈과 바람의 길을 걸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의 문명이지만 
 그것은 비석에 판각되거나 정의되어진 것만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이 내 속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말 속에도 뼈가 있다하고 
 문중의 아재 한 분은 
 바람조차 투명한 뼈를 지니고 있다하므로 
 뼈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모든 족속은 그 조상으로부터 
 몇 개의 맑고 흰 뼈를 물려받아 사는 동안 
 또 한 생이 고요히 마감되는 것이다
 
 
 
“뼈가 시릴 적엔 몇 모금 음복술로 덥히면서 오백년 전, 통정대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삼십대에 무슨 사화로 졸(卒)하신 당신, 처자식은 관노가 되고 그 때 당신의 눈물은 눈발이 되어 사방 백리까지 날렸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뼈마디마다 수수눈꽃을 피우면서 아버지와 저의 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발 속에도 맑은 뼈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가 졸(卒)하시던 그 때처럼”
 
아버지는 신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하여 
 생의 마지막 즈음 공사판 반장직에 올랐는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졸(卒)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뼈만 남은 문양으로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흐린 물기를 보였는데 
 물기는 뼈를 타고 흐르다 서서히 결빙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한 뼈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경해 입관 하던 날조차 
 차거운 뼈를 따습게 데우지 못했다
 그 날에도 먼 곳에서부터 눈발이 날려 왔고 
 
오래지 않아 강아지처럼 여린뼈를 가진 
 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오늘 밤 수북이 눈이 내립니다. 눈송이 송이마다엔 당신의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북편에서 날리는 눈발에는 종가에 계자로 와 당신 집안은 절손 된 9대조 조부님의 눈물도 보입니다. 저와 아이는 오늘 같은 밤이면 뼈를 살포시 맞대고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눈 오시는 밤은 참으로 마음 따습습니다.”
 
 뼈가 잘 맞물려서 사계절을 보냈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나의 뼈는 좀 더 유연해지고
 아이의 뼈는 좀 더 옹골차졌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
 뼈마다 하얀 풀꽃이 피어난다
 
 향불을 피우는데 음력 시월 을해(乙亥)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린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상로기강霜露旣降 
 첨소봉영瞻掃封塋 
 불승감모不勝感慕 
 근이謹以 
 청작서수淸酌庶羞 
 지천세사祗薦歲事 상尙,
 
향饗 
 
“당신들께서는 하얗게 뿌려지는 눈으로 혹은 투명한 축문의 곡조로 살아오십니다. 맑은 눈발 속 나폴 나폴 떠다니는 어린 것이 또 다른 뼈의 기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뼈를 추스르며 어린 뼈를 돌보려합니다. 아이를 가만히 껴안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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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당선 소감
 
흉한 글 수상…더욱 정진하라는 뜻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동짓달 바람과 함께 결빙된 어둠이 내린다. 내 영혼도 시린 어둠처럼 오랜 시간 해빙되지 못했다. 문득, 불안정한 물상들이 스쳐지나간다. 지난 삶은 일상의 갈피마다 차가운 그림자가 펼쳐지곤 했다. 발은 자꾸 헛디뎌지고 내 속의 언어는 좀처럼 시가 되지 못했다. 시가 되지 못한 언어들이 입 안에서 술렁이다가 자주 치아를 흔들면서 치근단까지 상하게 했다. 오늘도 치과를 다녀왔다. 나는 그렇게 겨울 풍경처럼 기울어져 바람에 흔들거렸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늦은 나이에 문학을 접했다. 불혹을 몇 해 앞두고 중한 병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병상에서 몇 권의 시집을 읽은 것이 시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였다. 무작정 독학으로 시 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를 통해 모질고 험난했던 지나간 생과 화해도 하고 내 영혼도 위로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아둔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가 내 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얼음송곳이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쓴 시가 문자와 이미지에 갇힌 관념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영혼의 해독은 고사하고 육신의 해독도 불가능한 비문들이었다. 깊은 사유와 철학 없이 시를 쓰다는 게 참으로 무모한 짓임을 인식하고는 오랜 시간 글 짓는 것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울림 없는 시를 세상에 내 놓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알고 있기에 당선소식을 듣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시 쓰기란 늘 두려운 작업이었다. 이젠 두려움이 더욱 깊어지겠지만 이런 상황도 천 년 전에 이미 정해진 운명일 것이다. 흉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의 의도는 목숨 걸고 정진하라는 의미임을 잘 안다. 혼신을 다해 노력해야겠다. 지면을 빌어 함께 밥을 먹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의 공백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2009년 포항문학 신인상, 현재 일반 회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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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조 심사평
 
혈육에 대한 ‘화자의 연민’ 잔잔히
 
 
상당수 시편에서 참신한 발상과 탄탄한 직조력에 놀라면서 능청스런 어법과 해학으로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본지의 특성상 불교적 선미가 깃든 작품이 상당수 있었으나 대체로 관념을 육화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순조로운 시상전개와 유려한 발성이 돋보이는 ‘초록 함정’이나 ‘바람의 사원’ 같은 작품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해학성이 넘치는 ‘산국이 노랗게 피었어’나 ‘언어 수난 기록문’, ‘동물의 왕국’과 ‘월식’의 참신성과 시적 통찰력, 생명에 대한 외경과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 ‘고양이에 대한 편견’, 한 치의 오차 없이 조사가 탁월한 ‘꽃잎’과 ‘낚시’에서는 선명한 이미지와 영상미가 돋보였다. 이러한 시 읽기를 두루 충족하는 ‘어머니’와 ‘살구나무’ 그리고 ‘들 찔레꽃’은 ‘뼈의 기원’과 끝까지 겨루었다.
 
신춘문예는 신인의 등용문이라는 점에서 언어적 세련성과 완결성도 중요하나 시적 통찰력과 참신성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한편의 시를 꿰뚫는 유기적 통일성과 새로운 발성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움의 추구’로 하여 상당한 수준에 이른 응모자 몇 분의 시편이 보여주듯이 허위적 치장이나 포즈, 단선적(斷線的) 언어구사로 소통불능의 난해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결국 <뼈의 기원>을 진정성과 설득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뼈의 기원’에서 시적 화자가 들려주는 진지한 발화는 시종 중량감을 가지고 시적 구성을 탄탄히 떠받치는 힘을 발산하고 있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은 시제(時祭)를 지내는 기일이다. “향불을 피우는데”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리는” 데서 ‘나의 뼈’와 ‘아이의 뼈’를 이루는 그 기원과 눈발로 오시는 조상님들을 추상(追想)하고 있다. 이 시의 탄탄한 구성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몰락한 가계의 조상과 혈육에 대한 시적 화자의 따뜻한 연민이 잔잔히 배어나기 때문이다.
 
 
[불교신문 2588호/ 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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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 한라 문예 시 당선작] 장식장을 버리고/박찬

 
장식장을 버렸습니다. 떨어져 덜컥이는 문짝을 청테이프로 길게 입막음 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오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치곤 값싼 그 몸값이 안쓰러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와의 이별에 매달립니다. 모서리를 밀치고 튀어나온 못이 허리를 꺾어 작별을 고합니다. 아내와 함께 시집와 십 여년, 그 사이 고장난 어깨가 삐걱거립니다. 긁히고 벗겨져나간 살점들과 아이들의 낙서자국,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몸은 뼈대만 앙상히 늙어갑니다. 그 안에 담아두었던 신혼의 이야기며 육아일기며 단란했던 한 가족의 앨범들.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많은 날들을 지탱해온 가슴에 아쉬움이 복받쳐 오르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넣었습니다. 당신의 신경통은 다 나았다 걱정마라하시며 혼자 있는 자식걱정에 마음 졸이시는 어머니. 밥은 제때 챙겨먹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 애 엄마는 잘 지내는지…. 비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걱정에 할 말 다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습관처럼 올려다보는 하늘. 아메리카로 가는 비행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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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국제일보 시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심사평 정호승, 최영철, 하상일

 

 

시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무 단조가락이어서 탈이라는 듯

동해남부선 기차가 한바탕 지나간다

누가 알았으랴, 그 때마다 묵정밭의 무들이

허연 목을 내밀고 실뿌리로 흙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해국(海菊)은 왜 가파른 해변 언덕에만 다닥다닥 피었는지

아찔한 각도에서 빚어지는 어떤 황홀을 막 지나온 듯

연보라색 꽃잎들은 성한 것이 없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청사포 절벽을 떨며 기어갈 때

아슬아슬한 정착지를 떠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을 몽땅 떨어뜨린 채 마지막 열매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지쳐 다시 꽃 피는 것일까

누구나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한다


*문탠로드(Moontan Road)
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달빛의 기운을 받으며

산책을 즐길수 있도록 조성된 2.2㎞의 산책로.

 


[2010 신춘문예] 시 심사평


삶의 깊이 응시하는 내면의 시선 미더워 / 정호승, 최영철 
   
 
전체적으로 수준이 고르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부산경남 지역보다 오히려 타 지역에서 응모한 시가 훨씬 많았다. 신춘문예만큼은 더 이상 중앙과 지역을 구분해서 차별화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심에서 거론된 시는 모두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작품들이었다. 다만 언어적 기교나 시적 수사가 지나치게 정형화된 느낌이 들어 신인으로서의 시적 개성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좀 서투른 감이 있더라도 확연히 눈에 띄는 작품을 찾을 수 없어서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박눈', '탁구치는 자전거', '나무의 온도', '뭉게구름을 확장하다',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를 두고 마지막까지 논의를 하였다.

   
시 심사평/ 하상일
 
심사위원들은 일정한 틀에 맞추어 패턴화된 시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이미지가 육화된 개성 있는 시를 찾는 데 주력했다.

낡고 진부한 서정에 갇힌 시보다는 풍경과 일상을 응시하는 내적 깊이가 시정신의 심화를 불러오는 작품을 주목하였다.

그 결과 고심 끝에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일정한 수준을 갖추었고, 삶의 깊이를 내면으로 응시하는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서 미더웠다.

다만 응모 작품들 간에 시적 경향의 편차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점은 신인으로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어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는 않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최종심에서 안타깝게 떨어진 예비 시인들에게는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앞으로 시와 더불어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본심위원 정호승(시인) 최영철(시인) 하상일(문학평론가·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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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전북일보-시 당선작 ]  먼지/ 김혜원

 

 

1. 무게
체중계를 꺼내려다
나보다 먼저 올라앉은 먼지를 본다
저것도 무게라고 저울 위에 앉았을까
털어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저 가뿐한 내공
내가 눈금처럼 꼼꼼히
몇 장의 졸업장과 얼마간의 통장으로
몸집 불리는 동안 너희는 세상을
깎고 갈고 부서지며 삭으며 살아왔구나
저울 위에 앉아 제 발자국 헤아리다가
세상 변두리 어디쯤 다시 찾아 날아올랐겠지
버려야만 이루어지는 저 가뿐한 무게
달 수조차 없는 그 삶에
문득 마음 무겁다

 

2. 높이
먼지도 세월을 견디면 높이를 갖는구나
어둠 속에서 말을 잊다보면 눈이 밝아지는 법, 나는
저 허름한 생의 목록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말이 벗어놓은 하품 바스러진 각질의 한숨 비틀대던 머리카락과 맥없이 흘러내리던 낡은 옷의 넋두리 나뒹굴던 보풀의 푸념 몇 낱 희미해진 거울의 깨진 비명도 몇 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뒷걸음쳐 이 구석 찾았을 게다
내일이 꼭 오리라 믿었을 그들
나는 오지 않은 날의 달력을 찢어
숨죽여 쌓인 어제의 높이를 가만히 들어 올린다

 

3. 길
차 안에 쌓이던 먼지
어느 날 흔적이 없어졌다
닦은 적도 없는데 저희끼리 뭉쳤다가
알갱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다
어디든 다시 떠돌고만 싶은 것 같아
조심조심 발판을 걷어 밖에 뿌려준다
순간 바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일제히 질주하는 저 하얀 맨발들
길이란 열망이란 얼마나 서늘한가
천 길 절벽은 허공에도 있어
지상으로 추락하여 얼룩지는 생이여
흙물이 제 지나온 길 가라앉히듯
빗물에 씻겨 다시 먼 길 떠나는구나
밤하늘에 담겨 반짝반짝 눈을 뜨는 별들도
떠나온 별을 찾아 몇억 광년 속으로
저렇게 먼지처럼 뛰어든다던데
나 이제 몇십 킬로의 동력을 켜고
내게 남은 시간의 벌판으로 달려간다


[2010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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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시-세계일보]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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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신춘문예 전북일보-시 당선작 ]  먼지/ 김혜원

 

 

1. 무게
체중계를 꺼내려다
나보다 먼저 올라앉은 먼지를 본다
저것도 무게라고 저울 위에 앉았을까
털어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저 가뿐한 내공
내가 눈금처럼 꼼꼼히
몇 장의 졸업장과 얼마간의 통장으로
몸집 불리는 동안 너희는 세상을
깎고 갈고 부서지며 삭으며 살아왔구나
저울 위에 앉아 제 발자국 헤아리다가
세상 변두리 어디쯤 다시 찾아 날아올랐겠지
버려야만 이루어지는 저 가뿐한 무게
달 수조차 없는 그 삶에
문득 마음 무겁다

 

2. 높이
먼지도 세월을 견디면 높이를 갖는구나
어둠 속에서 말을 잊다보면 눈이 밝아지는 법, 나는
저 허름한 생의 목록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말이 벗어놓은 하품 바스러진 각질의 한숨 비틀대던 머리카락과 맥없이 흘러내리던 낡은 옷의 넋두리 나뒹굴던 보풀의 푸념 몇 낱 희미해진 거울의 깨진 비명도 몇 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뒷걸음쳐 이 구석 찾았을 게다
내일이 꼭 오리라 믿었을 그들
나는 오지 않은 날의 달력을 찢어
숨죽여 쌓인 어제의 높이를 가만히 들어 올린다

 

3. 길
차 안에 쌓이던 먼지
어느 날 흔적이 없어졌다
닦은 적도 없는데 저희끼리 뭉쳤다가
알갱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다
어디든 다시 떠돌고만 싶은 것 같아
조심조심 발판을 걷어 밖에 뿌려준다
순간 바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일제히 질주하는 저 하얀 맨발들
길이란 열망이란 얼마나 서늘한가
천 길 절벽은 허공에도 있어
지상으로 추락하여 얼룩지는 생이여
흙물이 제 지나온 길 가라앉히듯
빗물에 씻겨 다시 먼 길 떠나는구나
밤하늘에 담겨 반짝반짝 눈을 뜨는 별들도
떠나온 별을 찾아 몇억 광년 속으로
저렇게 먼지처럼 뛰어든다던데
나 이제 몇십 킬로의 동력을 켜고
내게 남은 시간의 벌판으로 달려간다


[2010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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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심사평 허형만|

 

제비꽃 향기 / 김 은 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되고 마침내 개 입에서

생을 마감하는 너에게서

제비꽃 향기가 난다

 

햇볕이 개 밥그릇을 헤집는데

생선뼈는 온 몸으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비워라, 그릇

 

.....................

 

심사평

'제비꽃향기' 이미지 전개 깔끔/시적 성취도 높은 작품들 많아

 

허형만(시인·목포대 국문과 교수)

제22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을 비롯하여

60대 나이에 이르기까지 무려 883편이었다.

지역적으로도 과거 광주·전남 위주였던데 비해

호남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강원도에서부터

서울, 경기, 충청,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분포를 보여줘

서울 중심의 신문에 뒤지지 않는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신문사 측에서 요구한 심사 규정은 우선 표절 여부와

기성 문인으로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응모작은 심사에서 제외해달라는 거였다.

설령 심사위원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선되었더라도 후에 밝혀지면 당선을 취소하겠다는 뜻을 심사위원에게

강력하게 주지시켰다. 신문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응모자의 정성과 노고를 생각하며

긴 시간 동안 심사에 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은 먼저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즉,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품,

완성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습작, 탄식과 기도문 등 감정노출이 심한 작품,

수필 같은 산문과 시적 구별을 인식하지 못한 작품,

설익은 사회현실 비판, 이미지나 표현이 신선하지 못한 작품,

응모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작품,

그리고 자기만의 삶과 개성이 없이 미당이나 몇몇 유명 시인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젊은 시인들의 흉내나 냄새가 난 작품들이 그것이었다.

아울러 시가 지켜야 할 언어에의 경배심이 없이 함부로 언어를 다룬 작품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리하여 일단 걸러진 작품은 '송이도의 당산나무' 외 2편,

'하모니카 소리' 외 5편,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고추잠자리 길' 외 3편,

 '연탄' 외 2편, '하늘' 외 5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제비꽃 향기' 외 3편,

'헌책방 주인 고영감' 외 5편,

 '장미와 칸나 사이' 외 9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계단을 끌고 다니는 여자' 외 7편,

'살아있는 장례식' 외 3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이었다.

 

이 중에서 다시 최종적으로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을 골랐다. 최종심에 오른 이 작품들은 한결같이 오랜 습작을 거친, 비록 한 두편 정도가 치열성이나 언어를 다루는 힘, 이미지의 조화라는 점에서 응모작의 일괄적인 균일성을 갖고 있지 못한 흠이 발견되었을지라도 당선작으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래, 바로 이 작품이야!' 하고 추켜들 수 없는, 다소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소재나 이미지 전개나 묘사나 언어를 다루는 면에 이르기까지 과거 신춘문예 당선작 또는

 내가 읽었던 기성 시인들의 몸짓이나 말투와 많이도 닮아 보인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컨대 소재 면에서 폐타이어나 버려진 냉장고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소시민의 등장 같은 것,

표현 면에서 산문 투의 남발이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일부 젊은 시인들의 흉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 마침내 '제비꽃 향기' 외 3편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결정했다.

 당선작인 '제비꽃 향기'는 우선 감정의 억제를 통한 이미지의 전개가 군더더기 설명이 없이 깔끔하다.

뿐만 아니라 '개 밥그릇'과 '개미'와 '햇볕'이 하나로 어우러져 '제비꽃 향기'를 뿜어내는 우주적 통찰력 또한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연인 '비워라, 그릇'은 이 작품의 시안(詩眼)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은

시인의 내적 통성 같아 든든하다. 물론 함께 응모한 다른 3편의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 시인의 시적 역량을 믿을 수 있게 한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께는 격려를, 당선한 시인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당선작에서 보여준

시적 긴장처럼 이제부터 험난한 시의 여정이 새로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긴장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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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언어를 주물렀던 시간들 소중한 내 인생의 동반자/

김은아 신안 팔금면 출생

 

집안에 들어 앉아 있어도 허허로운 바람이 칼날같이 몸에 스미던 날,

길을 나섰다가 풍성하고 화려한 눈발을 만났다.

누구에게라도 환한 인사를 건네고픈 때에 마침, 하늘이 내 어깨를 다독여주듯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그 하얀 미소처럼 반가운 당선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폐강이 되어버린 광주여성발전센터에서 처음 문예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늘, 꿈꾸며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시들은 언제나 나를 꿈틀거리게 했다,

때론, 절망의 늪에서 헤매 일 때도 있었지만 묵정밭에 묻어 두었던

풀씨들이 하나 둘 싹이 나올 때의 기쁨은 산고 끝에 얻는 축복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운명처럼 다가와 내 언어의 뼈마디를 주물렀던 시간들,

구석에 던져진 글들을 보며 미처 피어나지 못한 말들이 쌓여갈 때,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것 마냥 두려웠던 날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고맙고,

나의 이 감성을 키워준, 바다 건너 늘 자식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나가시는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께, 이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툰 습작에 게으름 피울 때마다 귀한 말씀 해 주신 박경자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마음 아끼지 않고 용기 주셨던 김양기 교수님, 박한실 교수님, 이윤진 교수님,

강경호(시와사람)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같이 공부했던 문우들과

해솔 문학 동료들에게 고맙고,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무거운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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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당선작] 검은 구두 / 김성태

 

검은 구두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그는 나를 짐승처럼 끌고 왔습니다
오늘 나는 기울기가 삐딱한 그를 데리고
수선가게에 갔다가 그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그는 상처의 흔적을 숨기기 좋아하고
내가 그의 몸을 닳게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가끔 그는 코를 치켜들기 좋아합니다
하마의 입으로 습기 찬 발을 물고 있던 그가
문상을 하러 와서야 나를 풀어줍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를 만져보니
새의 날개 안쪽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습니다
두 발의 무게만큼 포물선이 깊어졌습니다
그의 입에 잎사귀를 담을 만큼
소주 넉 잔에 몸이 가벼워진 시간
대열에서 이탈한 코끼리처럼
이곳까지 몰려온 그들이 서로 코를 어루만지며
막역 없이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취한 그들이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에게 정중한 인사도 없이
주인이 바뀐 지도 모르고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
 

 

 

"눈물의 마운드에 섰다… 나는 아직 2군이다"


[당선소감]

홈런을 치지 못한 예비 시인들이 흘림체로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미안하다. 그 어느 날을 위해 그 어느 날은 패전투수처럼 연필을 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뜨끈뜨끈한 눈물의 마운드에 서있다. 심사위원 선생님이 선발등판을 허락해주셨다. 관중석 한 구석에서 나를 응원하는 그녀가 보인다. 그녀 이름은 김재숙, 어머니다. 보희 누나와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모자를 벗는다. 고개를 숙여 감사드린다.
대형서점에서 시집은 다섯 평의 영토만 갖는다. 식민지적 삶이라고 해도, 나는 시를 떠나 살 수 없다. 내 피는 C(詩)형이고 종이는 피부이기에 서걱거리는 연필을 놓을 수가 없다. 노트를 넘길 때마다 밤바다 소리가 들린다. 검은 모래사장 흰 고래처럼 갸릉갸릉 심연에 쌓여있는 언어를 불러본다. 단어 하나를 잃을까 봐 공포에 떨기를 여러 번, 처절하게 시를 썼고 홀로 외로워했다. 남루해지는 얼굴을 보고 슬펐다면 가난해지는 시를 보고는 분노했다. 이렇게 내가 시인이 되었다. 문학하는 당신이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시는 간절함이다. 짝사랑하는 마음은 문장을 슬프게 만들고, 대상을 그립게 만들고, 행동을 재촉하게 만든다. 타고난 무엇도 절박한 무엇을 이기지 못한다. 부끄럽게도 아직 나는 2군이다. 오늘도 헛스윙이다. 다시 주저앉아 조용히 시를 써야 한다. 진정 왜 시를 쓰는가. 초 단위로 담뱃불이 명멸한다. 내 등은 내가 볼 수 없는 자리다. 시인으로서 내 뒷모습이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려졌으면 좋겠다.

 


"행과 행 사이에 울림이 있는 시 쓰렵니다"


[인터뷰]

"당선도 당선이지만 저만의 시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김성태(24)씨에게 시가 '들어온'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사귀어왔던 절친한 친구를 사고로 막 잃고 나서다. 접신(接神)의 시간처럼 가을 내내 시를 쓰며 그 허무함과 절망감을 달랬다. 당선작은 그 친구의 장례식에 가서 마구 뒤섞여 있는 구두들을 보며 착상한 시다. '구두에는 계급이 없구나. 구두는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의 흔적을 보여주는구나'라는 생각에서 시는 출발했다.

김씨는 기성 시인들의 지도를 받지도, 시인 지망생들의 합평 모임에 참석하지도, 문학아카데미에서 공부하지도 않았다. 철저히 혼자서 습작기를 보냈다.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라서 시인들로부터 조언을 받을까 하기도 했지만, 시 쓰는 기술보다는 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머리맡에 시집을 두고 틈만 나면 시를 쓰고 지우며 스스로를 연단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 좌우명"이라는 그는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포스트잇에 메모를 하는 버릇이 있는데, 방 한쪽 벽은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돼 있다고 한다.

시만큼이나 연극을 좋아하는 취향과 무관하지 않게, 그의 시에는 '이야기'가 있다. 공익근무를 하면서도 지난해에만 70편 이상의 연극과 뮤지컬을 봤고 희곡도 100편 이상 읽었다.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심의 촉수를 뻗치고 있는 그는 환한 하늘과 어두운 집, 하늘을 나는 신사 등 이질적 풍경 속에 대상을 배치해 상상을 자극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읽다가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없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는 그는 "이 구절이 무서운 성찰 없이 울림 있는 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읽혔다"며 "행과 행, 문장과 문장 사이에 울림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심사평]

심사자들은 응모작을 셋으로 나눠 예심을 본 후에 올린 20편의 작품을 가지고 한 자리에 모여 당선작을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하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정움의 '실종', 이정현의 '빗살무늬토기의 냄새', 김성태(필명 김아타)의 '검은 구두' 등 3편이었다.
'실종'은 산악 등반을 소재로 하여 극한상황의 고통을 담담하게 성찰한 수작이다. '주인 없는 발자국도 신앙'인 고지대, '짐승의 몸을 가진 바람', 사방에서 채찍을 휘둘러오는 길 등과 같은 자연의 원시적인 힘과 작고 나약한 육체에서 꺼낸 의지를 대비적으로 실감나게 드러냈다. 감정을 잘 통제하면서 종교적인 경지가 느껴질 정도로 강한 극기의 사유를 관념과 감각을 조화시켜 그린 점이 돋보였다.
'빗살무늬토기의 냄새'는 신석기 사내가 비와 흙과 하늘로 빗살무늬토기를 빚는 과정을 상상한 시다. 오랫동안 보아서 사내의 몸에 충분히 육화된 빗줄기를 흙에 넣는 과정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빗살무늬 속에 내재된 기억의 원형을 현대인인 화자의 시점에서 읽어내고 신석기와 현대의 시공간을 빗줄기와 흙 속의 냄새로 결합시키는 상상력이 특히 볼 만하였다.
'검은 구두'는 쉽고 평이해 보이지만 구두를 통해 삶을 관통하는 시적 인식을 보여주는 방법은 결코 평이하지 않다. 평범한 사물을 통해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관찰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꿰맨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표현과 그것에 잘 어울리는 유머러스한 어조도 이 시의 미덕인데, 그것은 삶의 다양한 경험들이 오랫동안 육화되었다가 저절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났으나, 아쉽게도 두 작품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실종'은 시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보여 전체적으로 부자유스럽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빗살무늬토기의 냄새'는 같이 논의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그에 반해 '검은 구두'는 삶에 단단하게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럽고, 작은 것 속에서 의외성을 발견하는 발상도 참신하여,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을 축하하며,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기대한다. 끝까지 논의되지는 못했지만, '매머드 뼈'(김영각)와 '프로필'(기리나)도 매력적인 개성을 지닌 가작이었음을 밝힌다. 용기를 잃지 말고 더욱 분발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김기택  김광규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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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 - 당선작] 풀터가이스트 / 성은주


성은주
 

하늘은 별을 출산해 놓고 천, 천, 히 잠드네

둥근 시간을 돌아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어 동구나무처럼 서 있다가 숨 찾아 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 씽끗, 웃다 달아나 종이 인형과 가볍게 탭댄스를 추지

그들은 의자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가끔, 열쇠를 집어삼켜 버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울곤 해 스스로 문이 열리거나 노크 소리가 들릴 때 화장실 문은 물큰물큰 삐걱대며 겁을 주기도 해 과대망상은 공중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져

골치 아픈 그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광대를 찾아갔지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다며 웃어야 할 시간에 울고 있었어

 

천장을 훑어 오르기 위해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림자를 흔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때론 엉성하게
그러다 접시가 입을 쩌억 벌렸어
누워있던 골목들 일제히 제 넋을 출렁였지
붙어있던 그들은 홀가분하게 나를 떠났어
온갖 소동 부리고 떠난 자리,
무성한 음모만 시끄럽게 남아있네

 

* Poltergeist: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靈)

 


 
신춘문예 시 부분 - 심사평


불안을 이미지로 형상화… 문학적 역량 높이 평가 / 시인 문정희·최승호


마지막까지 논의된 것은 성은주의 '폴터가이스트' 외 2편과

김아타의 '달로 날아가는 방' 외 5편이었다.


김아타의 시는 새로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체 실험실에서 나온 듯한 그의 의욕적인 작품들은 특이한 언어의 선택과 뒤틀린 배치,

엉뚱한 결합을 통해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물론 평범한 문법을 거부하려는 신인의 자세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단절을 앞세우는 듯한 난해하고 모호한 문장들을 누가 읽어낼 수 있겠는가.

현란한 수사에의 도취는 자칫 시의 본질을 벗어난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언어의 쇄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작은 것과 큰 것,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해 내는 큰 안목을 갖추어야

비로소 독자들이 의심하지 않는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성은주의 '폴터가이스트'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든든한 문학적 역량이 느껴졌고 신뢰가 깊이 갔던 작품이다.

 '폴터가이스트'는 불안을 형상화했다. 불안을 토로하는 것은 쉽지만 불안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심이 묻어 있는 어눌하면서도 차분한 어조, 공포를 잠시 해소시키는 짧은 농담,

살얼음처럼 떨리는 섬세한 문체로, 불안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는

주목할 만한 것이었고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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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부분 - 당선소감, 문학은 나의 치료제


 폴터가이스트 - 성은주


시를 쓸 수 있도록 해준 '지금'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세상 만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싶습니다. 무엇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닌,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문학은 나를 발견해주는 치료제였고,

소외된 사유를 관계의 중심으로 옮겨 놓아 주었습니다. 시는 제 파토스에 하나하나

리본을 달아주며 질서 있게 나를 복원시키려 했습니다.

의미 없는 의미들이 부식되던, 어제는 감각적인 경계를 만나 별도의 설명도 없이 포장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할 대상을 찾아 떠났습니다.
당선소감을 쓰는 날 이사를 했습니다. 눈 때문에 살짝살짝 하얗게 지워지는 길 위에서 생각했습니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지워져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지워지는 건 두려운 게 아니었나 봅니다.

작년 이맘때쯤 USB의 고장으로 모든 작품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잃었기 때문에 얻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기뻐해 주실 지도교수님과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한남대 문창과 교수님들,

학점을 잘 주셨던 이재무 교수님, 늘 멘토링 받고 싶은 김동석 소장님, 시정신학회 회원들, 사랑하는 친구들, 당근, 앨리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아버지, 독수리 오형제보다 강한 우리 오자매 언니들,

형부들, 조카들, 사무엘 사랑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엄마, 할머니, 하느님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감사를 명료하게 밝힐 수 있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시다운 시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한남대 대학원 문창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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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경인일보 신춘시] 차우차우/ 김진기

차우차우

 

김진기

 

 

사자개 차우차우
긴 갈기를 바람에 빗질하며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칠장사 참배객의 발길이 어스름을 따라 사라지고
스님의 독경 소리 어둠에 몸을 누이면
티베트에서 온 차우차우
몰래 경내를 빠져 나가 칠현산에 오른다
바라보면 멀리 눈 덮인 고향이 보인다
달라이라마가 포탈라 궁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른 이후
그는 이곳으로 흘러왔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발소리 지우면서 다가오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듯
괜찮다 괜찮다 가벼이 꼬리 흔든다
꿈속에서나 만나는 그리운 히말라야 캄파라 패스를
이불처럼 두른 라싸 포탈라 궁
누가 구름 위에 백홍의 궁전을 지었나
돌아가는 마니차는 눈빛에 반짝이고 막 피어 올린 향내가
미로 같은 포탈라 경내를 적신다
얼어붙은 티베트 고원을 오체투지, 몇 달을 넘어온 장족이
다리를 질질 끌고 도착할 때마다
차우차우 맨발로 뛰어 나간다
고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
갈라터진 손바닥 무릎에서 흐르는 피, 내세의 제단에 올리면
신은 때때로 길을 비켜 준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먼저 왔는지
칠장사 차우차우가 도착하기 무섭게 라싸 차우차우들이 몰려나온다
부여잡고 얼굴 부비는 뭉클한 안부가 골목에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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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을에서 겨울로
글쓴이 : 동백 원글보기
메모 :

{+++이치를 깨닫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근취저신(近取諸身:이때 '諸'는 '저'라고 읽는다)의 방법과 원취저물(遠取諸物)의 방법이다. '가까이는 자기 몸에서 취하고, 멀리서는 모든 사물에서 취한다.' 구태여 멀리 갈 것 있는가! 가까운 데서 찾아야지! 그렇다면 자기 몸을 연구하는 것이 빠른 방법이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