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시인의 ‘굴비’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빡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시(詩)의 해설
이 시(詩)는 “겨울 강”이란 시집에 수록된 오 탁번 씨의 “굴비”란 제목의 시(詩)다.
오 탁번 씨는 참 대단한 입담을 지니고 있다. 자칫 잘못 들으면 그저 홍당무가 되어 버릴 그런 이야기를 이렇게 태연하게 역어 낼 수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더구나 웃음이 절로 나오면서도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것을 변주(變奏)해내는 실력이라니!
굴비는 음담패설(淫談悖說)이다. “항간(巷間)의 음담(淫談), 얼마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라고.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그래서 오 탁번 씨는 시인(詩人)이다. 음담에 묻어 있는 삶의 곡진(曲盡)함까지 한눈에 통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마음과 그 마음에 목이 메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는 해학(諧謔)과 웃음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전혀 엉뚱한 활기(活氣)를 불어 넣는다.
아내가 굴비를 얻어 온 내역을 알고도 굴비를 맛있게 먹고, 그저 퉁명스럽게 볼 맨 소리를 하는 사내. 그리고 며칠 후 굴비가 다시 밥상에 올랐을 때는 결국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는 사내.
사연이야 어떻든 가난한 산림과 굴비에 얽힌 이야기는 사내와 계집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참으로 진실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야기는 허구(虛構)이고, 웃고 즐기자고 누군가가 만들어 낸 어른들의 우스개 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음담(淫談)에도 삶의 진실은 있는 것이다. 그런 진실 앞에 어슬프게 정조(貞操)나 순결을 들이 대며 힐난(詰難)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웃다가 결국은 울고 마는 이야기, 그런 상식을 초월(超越)해 버리는 역설(逆說)은 이 시인(詩人)의 특유(特有)한 장기(長技)라고 할 수 있겠다.
사내와 계집의 사랑을 묘사하는 두 구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 방아를 찧었다.“와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에는,
개똥벌레, 베짱이, 소쩍새 등, 온 자연(自然)과 우주(宇宙)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내와 계집의 사랑과 함께 호흡(呼吸)하고 장단을 맞추는 미적(美的)인 승화(昇華)의 경지(境地)가 숨어 있다. 음담패설(淫談悖說)에서 우주의 합창(合唱)을 엮어 내는 그런 파격, 그 파격이 이 시의 깊은 매력(魅力)이다. 결국 웃고 마는 음담패설(淫談悖說), 그러나 감동(感動)의 경지(境地)로 우리를 이끌어 올리는 시라고 하겠다.
오탁번 시인
1943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중등교육을 원주에서 받은 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한국 현대시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1967년「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하여 그 동안 시집 「아침의 예언」「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생각나지 않는 꿈」「겨울강」을 출간하고, 소설집으로 「처형의 땅」「저녁연기」「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순은의 아침」 등 출간하였다. 소설 「우화의 땅」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시집 「겨울강」 동서문학상, 시 「백두산 천지」로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밥냄새1 / 오탁번
하루걸러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이웃 진외가 집으로 갔다
지나다가 그냥 들른 것처럼
어머니는 금세 도로 나오려고 했다
대문을 들어설 때부터 풍겨오는
맛있는 밥냄새를 맡고
내가 어머니의 등에서 울며 보채면
장지문을 열고 진외당숙모가 말했다
-언놈이 밥 먹이고 가요
그제야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밥소라에서 퍼주는 따끈따끈한 밥을
내가 하동지동 먹는 걸 보고
진외당숙모가 나에게 말했다
-밥때 되면 만날 온나
아, 나는 이날 이때까지
이렇게 고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태어나서 젖을 못 먹고
밥조차 굶주리는 나의 유년은
진외가 집에서 풍겨오는 밥냄새를 맡으며
겨우 숨을 이어갔다
그렇지
오탁번
어떻게 지내냐 물으면 '그렇지'할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이 말만 듣고는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다 하나 우리 동네에서는 이 말만 듣고도 엊저녁 밤농사가 신통했는지 안 했는지 고추농사 재미봤는지 비료값 농약값 빼고 나면 말짱 헛농사 지었는지 훵하게 안다
눈빛과 말품을 보고 안다 사람의 진짜 뜻은 애당초 말이나 글로는 다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장에 가서 농산물을 팔고 오는 이에게 오늘 어땠느냐고 물어도 '그렇지' 이 한 마디 뿐 더 이상 대꾸가 없다 그러나 다 안다 헐값에 팔았는지 유기농이라고 허풍 떨어서 바가지 씌었는지 갈쌍갈쌍 눈빛을 보면 다 안다
몇 년 전 외아들이 선산까지 다 팔아먹고 도망간 정미소 늙은 홀아비는 동네사람들이 위로하면 기러기 날아가는 하늘 한 번 쳐다보며 '그렇지' 늘 이 한 마디뿐이다 옥양목 두루마기의 헐렁한 소매처럼! 빨랫줄에 앉아있던 잠자리가 쇠파리 잡으려고 날아올랐다가 이내 고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쟈스민 차/오탁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백과사전을
꿈에서도 읽고 또 읽었던 보르헤스가
술집에서 포도주를 마시다가
감기 기운을 느끼고는
집에 가서 아내와 쟈스민 차나 마시려고
밖으로 나와 니코바르2가 쪽으로
느적느적 걸어갔다
보르헤스를 본 버스 운전사가
낡은 버스를 세웠다
그 때 보르헤스는 갑자기
쟈스민 꽃이 하얗게 핀
중세의 수도원으로 사라졌다
늙은 운전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헛것을 보았나, 하품을 했다
보르헤스는 중세의 수도원에서
게으른 수도사가 되었다
핼끔힐끔하는 수녀와 몸을 섞다가
심심해지면 쟈스민 밭에 오줌을 누웠다
쟈스민 흰 꽃 위에서
교미하다가 암컷에게 먹히는
수컷 버마재비를 보았다
몸을 섞다가 죽을 수 없다면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자
보르헤스는 순식간에 숫컷 버마재비가 되었다
그 후 쟈스민 향이 더 그윽해진 것은
교미하다가 죽은
보르헤스의 오줌과 정액이
쟈스민 흰 꽃술마다
깊고 부드럽게 스몄기 때문이라고
<세계차백과사전(世界茶百科辭典)>(Oxford Univ. Press, 1958)
69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
오탁번
1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가까워 장백소나무 종비나무 자작나무 우거진 원시림 헤치고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순례의 한나절에 내 발길 내딛을 자리는 아예 없다 사스레나무도 바람에 넘어져 흰 살결이 시리고 자잘한 산꽃들이 하늘 가까이 기어가다 가까스로 뿌리내린다 속손톱만한 하양 물매화 나비날개인 듯 바람결에 날아가는 노랑 애기금매화 새색시의 연지빛 곤지처럼 수줍게 피어있는 두메자운이 나의 눈망울 따라 야린 볼 붉히며 눈썹 날린다 무리를 지어 하늘 위로 고사리 손길 흔드는 산미나리아재비 구름국화 산매발톱도 이제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백두산 산마루를 나 홀로 이마에 받들면서 드센 바람 속으로 죄지은 듯 숨죽이며 발걸음 옮긴다
2
솟구쳐오른 백두산 멧부리들이 온뉘 동안 감싸안은 드넓은 천지가 눈앞에 나타나는 눈깜박할 사이 그 자리에서 나는 그냥 숨이 막힌다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백두산 그리메가 하늘보다 더 푸른 천지에 넉넉한 깃을 드리우고 메꿎은 우레소리 지나간 여름 한나절 아득한 옛 하늘이 내려와 머문 천지 앞에서 내 작은 몸뚱이는 한꺼번에 자취도 없다 내 어린 볼기에 푸른 손자국 남겨 첫 울음 울게 한 어머니의 어머니 쑥냄새 마늘냄새 삼베적삼 서늘한 손길로 손님이 든 내 뜨거운 이마 짚어주던 할머니의 할머니가 백두산 천지 앞에 무릎 꿇은 나를 하늘눈 뜨고 바라본다 백두산 멧부리가 누리의 첫 새벽 할아버지의 흰 나룻처럼 어렵고 두렵다
3
하늘과 땅 사이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천지가 그대로 하늘이 되고 구름결이 되어 백두산 산허리마다 까마득하게 푸른하늘 구름바다 거느린다 화산암 돌가루가 하늘 아래로 자꾸만 부스러져 내리는 백두산 천지의 낭떠러지 위에서 나도 자잘한 꽃잎이 되어 아스라한 하늘 속으로 흩어져 날아간다 아기집에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혼자 울지도 젖을 빨지도 못한다 온 가람 즈믄 뫼 비롯하는 백두산 그 하늘에 올라 마침내 바로 서지도 못하고 젖배 곯아 젖니도 제때 나지 못할 내 운명이 새삼 두려워 백두산 흰 멧부리 우러르며 얼음빛 푸른 천지 앞에 숨결도 잊은 채 무릎 꿇는다
오탁번 시화-참으로 시인일 수밖에 없고나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의 화면도 좋지만 때로는 빛바래고 구겨진 초등학교 소풍 사진이 더 귀하듯 어린 아이의 시점을 짐짓 흉내내면서 사물을 바라볼 때 <시>는 더욱 그 실체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의 시세계는 어린 소년 시절로 거짓말처럼 회귀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제 어린 아이가 되는 데까지 돼보는 거다. 점잖은 어른들은 어른 노릇하게 놔두고 나는 천등산과 박달재를 바라보며 배가 고파 울던 그 시절의 '탁번이'로 돌아가는 거다.
제천군 백운면 평동리 장터
비바람에 그냥 젖는
버스 정류장 옆 조그만 가게
바깥 세상 겨우 내다보이는
가게의 금간 유리창에
흰 종이가 ☆☆☆☆ 모양으로
오종종 붙어 있다
천등산 그림자 일렁이는 앞개울에는
모래빛 모래무지 한 마리가
한사코 모래바닥에 숨는다
꼬리에 알 가득 밴 여울목의 가재는
무지개빛 수염을 한껏 치켜들고
물 속에 비친
천등산 이마를 간지럽힌다
셈본 숙제 끝낸 배고픈 아이들이
흰 토끼풀꽃 손목시계를 본다
오디도 복숭아도 아직 익지 않았고
개개비만 까불까불 흰 똥을 싼다
여울여울 이랑이랑
아이들의 꿈이 욜랑욜랑 헤덤빈다
실비 오는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오탁번, [고향]
시를 교육시킨답시고 공연히 시를 발기발기 찢어서 휴지로 만드는 일을 시교육의 최종목표로 삼는 교육현실 때문에 시를 읽는 일을 난감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좋은 시는 분석이니 해석이니 하는 어려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시 속에 담겨진 정황을 평범하게 안내만 해 주어도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된다.
이번 학기 학교에서 하는 강의 중에 <현대시선독>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나는 시간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 한 편씩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한다. 다음의 시는 나한테야 아주 친근한 소재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사뭇 고전적인 작품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 시의 정황을 쉽고 평범하게 안내만 해 주면 학생들도 이 시가 담고 있는 아주 시적인 맛을 금방 알아차리곤 한다.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시영, [시월]
미당 서정주의 [가을의 벼논]에 나오는 풍경과도 흡사한 농촌의 가을 정경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작품은 시치미떼는 어조 속에 우스개와 헤살부리는 장난끼가 고루 잘 녹아 있다.
'재두루미' '콩꼬투리' '미꾸라지' 등이 시의 화자와 같은 또래의 개구쟁이가 되어 자아내는 가을 농촌의 정경은 말할 수 없이 고와서, 네 잎 크로바를 끼워놓은 누이의 빛바랜 일기장을 보는 듯도 하고 주근깨가 많은 외사촌 동생의 편지글을 대하는 기분도 든다. '먼길을 가던 농부'라는 말에 의아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렇게 짐작하는 게 좋다. 10월이니까 바쁘던 농사 일이 거의 끝나 한숨 돌리고 있는 시간인데 멀리 사는 친척집에서 온 혼사를 알리는 통지를 받고, 여름 내내 땀흘려 일한 자기 논을 지나서 장터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부지런하고 착하기만 한 농부는 결실의 계절을 맞아 가을 뙤약볕으로 반짝이는 자연의 섭리를 모른다. <안다><모른다>라는 차원을 떠나서 하느님은 <농부>에게 앎의 이분법적 알량한 지혜를 주지 않고 하느님을 대신하여 자연의 섭리를 묵묵히 실천하도록 농부의 운명을 점지해 주었다.
재두루미도 지금 푸른 하늘을 날아가지 않고 왜 느릿느릿 헤엄치고 있는지도 모르고, 콩꼬투리가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제가 배시시 웃고 있는지도 모른다. 봇도랑에서 하얀 배를 내놓고 통통거리는 미꾸라지도 무슨 일이 그리 재미있고 우스운지 모른다. 하느님만이 알고 싱긋 웃을 뿐이다. 아니, 하느님도 지상의 이런 정경들은 다 연출해 놓고는 그냥 낮잠이나 주무시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하느님이 연출하는 가을 농촌의 정경을, 다른 시인들은 감히 볼 엄두도 안 내고 있는데, 현미경보다도 망원경보다도 더 세밀하고 넉넉하게 볼 수 있는 눈을 지닌 이시영은 참으로 시인일 수밖에 없고나. '껍데기는 가라'라는 그 유명한 명제에 빗대어 말한다면, 담론이나 주제나 내세우면서 시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껍데기들은 이 시 앞에서 진솔하게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언어의 묘미를 무시하고는 그 어떤 시도 탄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정신이 저급한 사람들이야 부정해 보고도 싶겠지만, 그러나 시의 영혼이 언어 그 자체라는 사실까지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꽃모종을 하면서
오탁번(1943 ~ )
따뜻한 봄날 꽃밭에서 봉숭아 꽃모종을 하고 있을 때
유치원 다니는 개구쟁이 아들이 구슬치기 놀이를 하고 놀다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모종�을 든채 나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아빠 아빠 쉬도 마렵지 않은데
왜 예쁜 여자애를 보면 꼬추가 커지나?
아들은 바지를 까내리고 꼬추를 보여주었다.
정말 꼬추가 아주 골이 나서 커져 있었다.
꼬추가 커졌구나 얼른 쉬하고 오너라
생전에 할머니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손자에게
말씀하시던 일이 생각나 나는 목이 메었다.
손자의 부자지를 쓰다듬으시던 할머니는
무너미골 하늘자락에 한 송이 신나리꽃으로 피어나서
지금도 손자의 골이난 꼬추를 보고 계실까?
시 해설(문화일보 기자커뮤니티에 장재선)
산문과 운문의 경계에서 피어난, 꽃과 같은 작품입니다.
고향마을에 꽃과 더불어 개구장이 아들의 '꼬추'가 기리고 있는 것은,
할머니의 가없는 내리사랑입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나를 통해 아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꽃밭에 봄빛이 퍼지는 자연스런 일이지요.
오탁번(1943 ~ ) 시인은 신춘문에서 소설과 시가 모두 당선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최근에 한국시인협회장이 됐다니 문학게의 꽃밭을 위해
열심히 보종을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똥볼 [오탁번]
축구시합하러 운동장으로 나갈 때
내가 코딱지를 파 먹으면서
개미 똥구녁 맛 같다고 하니까
주근깨가 다닥다닥한
여자 부반장 복실이가
멥쌀눈을 흘겼다
나는 동해물팀 공격수
등번호 9를 달고 냅다 달렸다
찬스를 잡아 슛을 했는데
아뿔사! 똥볼이 됐다
복실이가 메롱메롱 놀렸다
날아가던 황새가
똥볼에 놀라 물똥을 찍 쌌다
동해물! 장백산!
배고픈 아이들이
악머구리떼처럼 소리쳤다
오늘 축구시합은
복실이 때문에
재수 옴 붙었다
동해물팀이
3대빵으로 깨졌다
接吻 / 오탁번
그대가 짠 비단옷 입고
1년 만의 邂逅를 위하여
멀고 먼 宇宙를 달려갈 때
隕石 흩어지는 行星의 불빛이
銀河水 물결에 어리고
그대의 입술은
한여름 오디같이 달콤했다
이제 다시
黃道 十二宮에 千古의 세월이 흘러
사자별자리가 처녀궁에 들고 있는데
지금 여기는
韓半島 서울의 한 모퉁이
하늘의 별빛도 스모그에 지워지고
水銀燈만 눈물 빛깔로 울고 있는 밤
그대의 젖은 입술
눈에 밟혀
안전띠도 매지 않고
과속으로 달려간다
한강 잠실 나루의 물이랑 높아질 때
짧은 邂逅를 위하여
간이 매점의 500원짜리 블랙커피 마시면서
우리는 千金같은 입맞춤을 나누자
내 마음에 연필로 그린
銀河水 찾아
소나타
검은 소처럼 타고
별빛도 없는 黃漠한 어둠 속으로
車線違反 해가며 목마르게 달려간다
小春
- 음력 시월을 小春이라 부른다
된서리 내린 깊은 가을 해거름
삐약삐약 핸드폰이 울더니
버선코 같은 초저녁별 한 접 보냄다’
간질간질한 메시지가 오네
명왕성 근처 과수원에서
퀵 서비스 광속으로 보내온
능금처럼 잘 익은
초저녁별 한 접 받아 드네
사라져간 젊음의 피톨 하나하나
서럽게 불러내어
반짝이는 등불을 켜듯
별 하나 하나 맛있게 까 먹네
봄날처럼 따듯한 햇살이 비추는
기러기 혓바닥만한
小春의 들녘에는
알맹이 다 털어버린 볏단이
면도도 하지 않은
흰 수염 다붓한 내 턱처럼 시린데
그대와 나
아직 못다 한 인연이라도 있는지
그렇고말고 시늉하듯
초저녁별 깜박깜박 빛나네
스톤헨지 세우고 피라밋 뚝딱 만들던
선사시대의 거인처럼
별 한 접 다 먹고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는
되똥되똥 길 잘못 든 살별 하나
능금껍질처럼 곡선으로 사라지네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그대와 나
버선코마냥 오똑오똑한 새끼를 낳자
앙증맞은 小春의 햇볕 아래
토실토실하게 키운 새끼가
깡총깡총 태양계 너머로 달아나면
우리는 그냥 팔짱을 끼고
새끼 따라 은근슬쩍 잠적해버리자
詩/오탁번
- 羽化의 꿈
대나무를 기르는 사람이
- 영 대쪽같지 않고
蘭을 기르는 사람이
- 난커녕 잡초되어 살아가는
恨많은 한세상
- 나의삶이 끝나면
블랙홀 근처
- 朝鮮 소나무 가지위에
나는 매미나 한마리 되어
- 맴 맴 맴
宇宙가 떠나가도록
- 울어는 보고싶다.
오탁번
- 열쇠 / 오탁번
미아리 삼양동 산비탈에서
삭월 셋방에 살던 신혼시절
주인여자는 대문으로 출입하고
내 가난한 아내는
담벼락에 낸 쪽문으로 드나들었다
쪽문을 열고 부엌을 지나
대여섯 평 좁은 방에서
신혼의 단꿈을 꾸며 살았다
뚱뚱한 주인여자의
짜랑짜랑하는 열쇠소리에 주눅이 들어
사랑을 나눌 때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몇 년 후 장위동에다
전세방 끼고 대출 받아서
스무 평 집을 장만했을 때
아내와 나의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열쇠고리에 달린
대문 열쇠, 현관 열쇠, 방 열쇠를 보면서
아내는 함박웃음을 웃었다
열쇠고리를 짜랑짜랑 흔들며
당당하게 대문을 따고
우리집을 맘 놓고 드나들었다
열쇠가 늘어날수록
아내의 허리도 굵어지고
아들 딸 낳아 살다가
10년 후에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 아니라
열쇠 꾸러미를 분양받은 것 같았다
현관 열쇠, 방 열쇠, 장롱 열쇠, 싱크대 열쇠
화장실 열쇠, 다용도실 열쇠,장식장 열쇠
그것도 각각 네 개씩이나 되는
묵직한 열쇠 꾸러미를 받아든 아내는
열쇠에 맺힌 한을 풀었다는듯
한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토록 자랑스럽던 열쇠도
세월 따라 하나하나 사라지고
이제 아파트도 오피스텔도
디지털 키와 카드 키로 다 바뀌었다
제 집 문을 열 때는
열쇠를 구멍에 찔러 넣고
홱 돌려야 제 맛인데
손끝으로 번호를 톡톡 누르니까
꼭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 같다
열쇠란 열쇠는
몽땅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
이순의 저녁나절도 아득히 흘러간 오늘
아내의 방을 여는
사랑의 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통 생각나지 않는다
삭월 셋방 가난했던 그 시절엔
대문을 따는 열쇠는 없었지만
밤마다 사랑의 방을 여는
금빛 열쇠가 나에게 있었는데
이젠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숨은 딸 ㅣ 오탁번
나도 숨겨논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아빠' 브르면서 카네이션 꽂아주며
내 볼에 뽀뽀해줄 보조개도 예쁜 내 딸!
'어험, 어험' 하며 처음에는 멋쩍겠지만
내심으로야 뛸듯이 좋을거야
아내는 뾰로통해서 눈 흘기겠지만
덤으로 생긴 딸 설마 구박은 안 하겠지
보름달 따올 만큼 힘세던 내 젊은 날
숨겨 논 딸 하나 못 만들고 무얼 했을까
숨겨 논 딸이 없어 민망하긴 하지만
제 발로 숨어버린 딸은 많을지도 몰라
아득한 젊음의 새벽길에서
눈물 훔치며 떠났던 여자들이
나한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딸 하나씩 몰래 낳아 키웠을지도 몰라
숨어버린 딸이 운명運命의 해후邂逅를 위해
광속光速으로 달려와 내 앞에 선다면
DNA검사 없이 바로 내 딸을 삼을거야
호적戶籍에도 바로 올리고 재산도 나눠주고
큰 눈동자 빛나던
내 젊은 날의 흑백사진 보여줄 겨야
아아, 우주宇宙의 어느 행성行星새벽 바닷가에서
사랑의 불장난으로 태어난 어여쁜 내 딸아
지구地球가 혜성彗星에 부딪혀 파멸하는 날이 오면
나는 숨어있던 내 딸을 데리고
빙하기氷河期를 견디며 살아남아 있을거야
몇 천 년 몇 만 년이 흐르고
빙하氷河에 짓눌렸던 한반도韓半島가 다시 떠오르면
나는 내 딸을 데리고 화석化石에서 뛰어나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집 한 채 지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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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복(妻福) / 오탁번
나하고 자치동갑 Y시인은
자기가 내 원처(原妻)라고 대놓고 말한다
안동 양반의 후예 아니랄까봐
본처(本妻)보다 한 끗발 높은
원처(原妻)로서의 권위가 서릿발 같다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 본적(本籍)을 따르고
원래 본적은 원적(原籍)이 되어 물러나지만
원처(原妻)야말로 진짜 오리지날 와이프란다
본처(本妻)야 어쩌다가 도장 찍게 된
언제나 되물릴 수 있는
아티피셜 와이프이지만
원처(原妻)야말로
거웃이 거뭇거뭇 날 때까지
등목시켜 주던 막내 서고모(庶姑母) 같은
뗄 수 없는 혈연(血緣)이란다
콧대 높은 나의 원처(原妻)에게
하회(河回) 마을 아흔아홉 칸 기와집 한 채와
도지 일백 석 받는 고래실논을
등기 이전해 줘야겠네
나하고 동갑내기 S시인은
망년회(忘年會)에서 만날 때마다
자기가 내 별처(別妻)라고 까놓고 말한다
밥하고 빨래하는 본처(本妻) 자리는
아예 넘보지도 않겠다는
나붓나붓한 나의 별처(別妻)는
내가 딴 여자 볼까봐 강샘도 부린다
생활비 안 준다고 생떼를 쓰면
황진이가 쓰던 상평통보(常平通寶) 몇 만 고리와
빳빳한 지전(紙錢) 뭉치 퀵 서비스로 보낸다
내 생애(生涯) 끝나는 날
우주(宇宙)의 어느 행성(行星)에서도
주민등록초본 하나 남기지 못하고
자동 소멸되는 운명인 줄도 모른 채
내가 토성(土星)의 고리로 만들어준
빛나는 금반지 끼고
먼 은하수(銀河水) 호젓한 물녘에서
몇 겁(劫) 동안 날 홀리고 싶단다
내 별처(別妻) 자리 하나 얻으려고
새파란 띠동갑 시인들의 메시지가
와이브로 통신으로 수신되는
태초(太初) 후 46억 년 지난 어느 봄날
별처 1, 별처 2, 별처 3……
이렇게 번호 매겨 순번(順番)을 정해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거문고자리에
놋요강과 자개문갑과
학(鶴)이 우는 베개와 비단 금침(衾枕) 나붓한
별채 하나씩 뚝딱 지어줘야겠네
아아 나는 왜 이다지도 처복(妻福)이 많으냐
상처한 놈은 소피보면서 웃는다는데
몇 백 광년(光年) 후
원처 본처 별처 하나씩 눈 감으면
함박웃음 짓다가 틀니 다 빠지겠네
젠장 미운 본처(本妻)에게는
매달 쥐오줌만큼 나오는
연금밖에는 없다 없어!
우포늪 - 오탁번
우포늪이 토해내는 울음소리를 듣고
귀밝은 하늘이 내려왔다
그 후 하늘은
1억4천만년동안
하늘로 올라갈 생각은 영 않고
우포늪에서 살고있다
흰뺨검둥오리 알이
하늘빛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미하는 실잠자리들이
물수제비 그리며
우포늪을 간지럽힌다
먼 북극의 빙하가
늦잠자는 하늘을 깨우느라고
바다로 뚝 떨어진다
산란하는 붕어가
물풀사이로 숨는다 - 오탁번(56) '우포늪'
새삼 천지가 휑뎅그렁해진다. 저 경남 우포늪쯤이면 그곳의 물풀들을 먼저 말할 법도 하건만 한 주제를 가진 시인지라 빙하기와빙하기 사이의 염원에 의해 1억4천만년이라는 초시간이 개입한다.
하지만 우포 물위의 물오리와 그 알이 있고 실잠자리들과 붕어들도 있다. 그런 오래된 정적 속에 북극의 빙하라는 이미지와 바다 이미지가 정작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소도구로 쓰이고 있다.
울림이기보다 새김의 시다.
고은 <시인>
잠지 - 오탁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엽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 먹겠네
오탁번 시집"벙어리 장갑"
-개좆불/오탁번-
감기를 왜 `개좆불'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올 감기는 되게 질긴 놈이다
숏 타임이란 게 없다
보름 째 기침 가래에 숨이 차고
밤에도 가래 뱉느라고 몇 번 씩 깬다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단숨에 마시면
바이러스도 깜작 놀라 `어휴, 순 쌍놈이다!'하며
줄행랑을 치게 하던 시절도 있었다
갈비뼈가 아프도록 기침을 한다
술 담배 못하니
그냥 우울증 환자가 된다
서울시민이 떼로 모여서
나를 욕하고 있는 광경 빤히 보인다
`그 개새끼, 논문과 작품이 다 표절이야'
감기 바이러스여 그만 떠나다오!
이 질긴 롱 타임 개좆불아!
방아타령
오탁번
- 여보, 카섹스가 뭐래유?
요즘의 성풍속이 티브이에 방송되자
계집이 사내에게 물었다
- 병신, 자동차 안에서 방아 찧는 것도 몰러?
마당의 모깃불이 시나브로 사위어갔다
이튿날 사내는 계집을 경운기에 태우고
감자밭으로 감자 캐러 나갔다
산비둘기가 싱겁게 울고
암놈 등에 업힌 메뚜기는
뙤약볕이 따가워 뺨 부볐다
- 여보, 우리도 카섹스 한 번 해 봐유
- 뭐여?
- 경운기는 차 아니래유?
사내는 경운기를 냅다 몰았다
계집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소쿠리 가득 감자를 캐면서
계집이 사내를 핼긋핼긋 할겨보았다
- 저, 병신!
사내는 욕을 하며
구들장보다 뜨거워진 경운기에
계집을 태웠다
- 아유, 아유, 나 죽네
솔개그늘 아래 경운기 위에서
계집은 숨이 넘어갔다
뻐꾹뻐꾹 울던 뻐꾸기가
울음을 딱 그쳤다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오탁번 시집 <손님>, 도서출판 황금알, 2006.
시인
- 오탁번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시장 가는 길
감나무에 조랑조랑 열린 풋감을 보고
'푸른 감이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는단다'
엄마 말에 고개를 갸웃갸웃 하던 딸은
감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우는 매미울음 따라
엄마 손 잡고 까불까불 걸어갔네
가을 어느 날 해거름에 시장 가는 길
빨갛게 익은 감이 탐스러운 감나무 가지에
하얀 낮달이 꼬빡연처럼 걸려 있었네
다 저녁이 되어 엄마 손 잡고 돌아올 때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딸이 말했네
'엄마, 달님이 그새 빨갛게 익었어'
개미가 기어다니는 보도블록을 걸어오는 길
엄마가 까치걸음 하는 딸을 보고 눈을 흘기자
'아기 개미을 밟으면 엄마 개미를 못 만나잖아?'
앙증스러운 어린 딸의 말을 듣고 엄마는
처녀적 시인의 꿈이 다시 생각나 미소 지었네
시인은 못 됐지만 이제 시인 엄마가 되었네
감나무가 빨간 등불 알알이 켜고 환히 비추는
아기 시인과 엄마가 시장 갔다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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