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신현정 시인의 시

월정月靜 강대실 2008. 6. 25. 13:03

신현정 시인

  • 글쓴이: yanggo
  • 조회수 : 0
  • 08.04.1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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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시인
1948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2004년 제4회 한국시문학상 수상
시집 『대립』『염소와 풀밭』 
『 자전거 도둑 』등 다수 

<1>-오리 한 줄/신현정-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에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 가면 된다 
뒤뚱뛰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2>-빨간 우체통 앞에서/신현정-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 껍질을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안고 그냥 왔다.

 

 

<3>-박하사탕/ 신현정

 

왜 박하사탕은 새 가슴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너의 입 안에 환한 마름모꼴 한 개를 넣어 주었다

 

애야, 참, 아슬한 벼랑, 오오래 녹여 먹어라.

 

 

<4>-맛있는 시] 라 라 라 라

오늘이 모자라면 모자처럼 날아가고

모자처럼 하모니카 불고

모자처럼 새 되어

모자처럼 옆으로 돌려쓰고

모자처럼 구름 위에 올려놓고

모자처럼 뒤집어서

새도 꺼내고

토끼도 꺼내고

사과도 꺼내고

오늘이 모자라면 라 라 라 라

모자처럼 공중에 높이 던졌다 받으며

라 라 라 라


신현정, ‘라 라 라 라’ (시집 ‘자전거 도둑’, 2005, 애지)

무거워진 어른들의 몸속에도 아이가 사네, 모자 속 토끼라네. 실용의 말뚝에 하나의 이름만으로 매어놓은 사물들의 모가지 줄을 풀어주네. 옆으로 돌려놓고 뒤집어도 보고 새도 꺼내고 사과도 꺼내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네. 꽉 막힌 길 위로 버스가 날아가네. 유쾌한 오늘이 라라라라, 날아가네. 이선형/시인



<5>-여보세요 / 신현정

 

거미집을 보면 여보세요가 하고 싶어진다

거미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

여보세요가 하고 싶어진다

거미가 없는 텅 빈 거미집을 보아도

여보세요가 하고 싶어진다

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