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김달진의 체념 외

월정月靜 강대실 2008. 11. 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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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2. 7 경남 창원~1989. 6. 5.

시인·번역문학가.
동양정신과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호는 월하(月下). 1929년 시 〈잡영수곡 雜泳數曲〉을 〈문예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득도하고 함양 백운산 화과원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수도생활을 하다가 1934년 9월 〈동아일보〉에 〈나의 뜰〉·〈유점사를 찾아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했다. 1939년 불교전문학교를 마쳤으며 첫 시집 〈청시〉(1940)를 펴내고 잠시 북간도 용정에 다녀왔다. 이때의 시 일부가 김조규가 엮은 〈재만조선시인집〉에 실려 있다. 8·15해방 후에는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를 지냈고 1946년 경북여고 교사로 있었으며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47년 〈죽순〉 동인으로 활동했고 자유민보 논설위원·동양불교문화연구원장을 거쳐 동국대 동국역경원 심사위원 및 역경위원으로 〈고려대장경〉 번역에 몰두했다. 1960년대 이후로는 은둔하면서 주로 불경과 한시를 번역했고 1983년 불교정신문화원에서 한국고승석덕으로 추대되었다.

그의 초기 시는 주로 자연을 노래하고 인간과 사물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밝아지고 사물의 제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는 동양정신의 본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관조하는 태도와 소박한 언어로 인간의 효용을 떠난 사물의 참된 모습을 찾아내고 착각과 환상을 몰아냄으로써 일제침략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려는 모든 관념에 나름대로 대항하려고 했다. 후기 시에는 이러한 동양정신을 더욱 깊이 있는 시정신으로 보여주었다.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1974), 시선집 〈올빼미의 노래〉(1983), 동양고전 〈장자〉(1965), 〈한산시집〉(1983), 〈금강삼매경론〉(1986) 등을 펴냈으며 죽은 뒤에 수필집 〈산거일기〉(1990)가 발간되었다.

 

씬냉이꽃

          김달진

 

사람등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늘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날은다.

 

*김달진 시인: 1907년 경남 창원 출생-1989년 6.7일 89세 별세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이면 족할 김달진 선생의 삶이었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스님으로 알려진 발자취에 세상 살아는데 비우는 마음으로 상아오신 분이시다.

 

 

체념    - 월하 김달진 -


        봄안개 자욱이 내린

     밤거리 가등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모습보다 아름다워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룰 뿥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분명 비수에 사는 운명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은 산 구름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지는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

 

 

김달진의 "임의 모습"


어디고 반드시 계오시라 믿기에

어렴풋 꿈 속에 그리던 모습

어둔 밤 촛불인 듯 내 앞에 앉으신 양

아 이제 뵈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네;



아 내 마음 어떻게 두어야 하리까?

너무도 작고 더러운 존재오라.

영혼의 속속들이 눈부시는 빛 앞에

화살 맞은 비둘기인 양 나래만 파닥일 뿐.



사랑이 되고 안 되고사

오로지 임에 매이었고

마주 앉아 말 주고 받은 인연

오백생(五百生) 깊음이 느껴 자랑스럽네.



푸른 나뭇잎 나뭇잎 사이로

말간 가을 하늘 우러러 보면,

어디서 오는 가느란 바람이기에

꽃잎처럼 흔들리는 임의 모습.



들 밖 어둔 길을 밤 늦어 돌아오면

허렁허렁 술기운 반은 취하고.

먼 남쪽 하늘가 흐르는 별 아래

산 너머 물 건너 몇 백리인고.

 

애인



깊은 밤 뜰 위에 나서


멀리 있는 애인을 생각하다가


나는 여러 억천만 년 사는 별을 보았다.





속삭임




내 영혼을 빨아들일 듯

응시하는 고운 눈길이여




꽃잎에 스미는 봄바람

애끈한 분홍빛 그 미소여




새하얀 부드러운 살갗의

뜨겁고 향기로운 닿음이여




어둠 속에 혼자 타는 촛불 앞에

애끊게 달아오르는 속삭임이여.



詩.김달진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 민음사, 1990>





가다가 문득 문득

가슴 하나 월컥 안기는 그리움

해바라기 숨길처럼 확확 달아

가을 석양 들길에 멀리 선다.



애달픈 이 사모(思慕)를

혼자 고이 지닌 채 이 생(生)을 마치오리까?

임아, 진정 아닌 척 그대로 가야 하리까?

살아 한 번 그 가슴에 하소할 길 없어-.



창 밖에 궂은 밤비 소리 들으면

풀 숲에 숨어 있는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울지도 못하는 외로운 가슴.

함초롬 이슬밭에 얼어 새우랴.



어렴풋 잠결에 꾀꼬리 소리

놀란 듯 허겁지겁 창을 여나니

꿈에 뵈던 임의 소식 아니언만

알뜰히 살뜰히 아쉬움이라.

 



하이얗게 쌓인 눈우에
빨간 피 한방울 떨어뜨려 보고싶다
속속드리 스미어드는
마음이 보고싶다





동무와 떠들다 문득 입 다물고

잔 들어 흥겨웁다 문득 멀리 앉아봄은

어디서 오는 또렷한 모습이기

눈썹 끝에 아롱다롱 한 숨발에 어리는고. 

 

 

고사(古寺) / 월하 김달진

밤이 깊어가서
비는 언제 멎어지었다.
꽃향기 나직히
새어들고 있었다.
모기장 밖으로
잣나무숲 끝으로
달이 나와 있었다.
구름이 떠 있었다.
풍경소리에 꿈이 놀란 듯
작약꽃 두어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의희한 탑 그늘에
천 년 세월이 흘러가고, 흘러가고... ...
아, 모든 것
속절없었다. 멀리 어디서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