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
쓸쓸한 겨울입니다. 눈물나는 겨울입니다. 빗발이 눈송이로 변하는 추운 밤, 슬픔 속에서 등을 켜는 이 있습니다. 그 등은 그냥 등이 아니라 신뢰의 불꽃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 지금 슬프고 가난하지만 등불 아래서 다시 따뜻하고 넉넉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그대 곁에도 등 하나 켜 있길 바랍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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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이여, 오늘은 왼종일 바람이 불고 사람이 그리운 나는 짐승처럼 사납게 울고 싶었다. 벌써 빈 마당엔 낙엽이 쌓이고 빗발들은 가랑잎 위를 건너 뛰어다니고 나는 머리칼이 젖은 채 밤 늦게까지 편지를 썼다. 자정 지나 빗발은 흰 눈송이로 변하여 나방이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유리창에 와 흰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나는 편지를 마저 쓰지 못하고 책상 위에 엎드려 혼자 울었다.
2 눈물 글썽이는 누이여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저 고운 불의 모세관 일제히 터져 차고 매끄러운 유리의 내벽에 밝고 선명하게 번져나가는 선혈의 빛. 바람 비껴불 때마다 흔들리던 숲도 눈보라 속에 지워져 가고, 조용히 등의 심지를 돋우면 밤의 깊은 어둠 한 곳을 하얗게 밝히며 홀로 근심없이 타오르는 신뢰의 하얀 불꽃. 등이 하나의 우주를 밝히고 있을 때 어둠은 또 하나의 우주를 덮고 있다. 슬퍼 말아라, 나의 누이여 많은 소유는 근심을 더하고 늘 배부른 자는 남의 아픔을 모르는 법, 어디 있는가, 가난한 나의 누이여 등은 헐벗고 굶주린 자의 자유 등 밑에서 신뢰는 따뜻하고 마음은 넉넉한 법, 돌아와 쓸쓸한 저녁이면 등을 켜자.
- 장석주, 「등(燈)에 부침」, 『완전주의자의 꿈』, 청하
□ 장석주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붉디 붉은 호랑이』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