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의 몽상.2 / 고재종
이고 들고 업고 안은 아낙네만 같아서
무얼 좀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다시 찾는 오솔길에는
억새 속새 푸나무 넌출 무성한데
무얼 더 붙잡겠다고 거미는 곳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가, 기다려보아야
아무도 없는 혼자일 때마다
소쩍새 울음이나 뼈마르도록 듣던 곳,
잎새들이 또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모퉁이를 돌아간 쓸쓸함까지 되부르는 곳.
무얼 좀 놓아버리면 몽상은 되살아나선
가령 수제비 떼어놓은 듯한 구름이며
휘파람새 울음 속에 집 한 채 짓고 싶다.
몽상은 요렇더라도 머루 다래 돌배는
토실토실 여기저기 풍성한데
오목눈이들은 어찌 오락가락 야단법석인지.
야단법석으로 여럿일 때마다
늘 무언가 잃어버린 듯 막막하던 날들,
저처럼 햇빛 코팅한 억새들의 반짝임 속에
그러나 곧장 해지면 소슬해지는 그 속에
혼자 누워 있던 때가 그립더라니!
무얼 좀 잡은 적도 좀체는 없는데
무얼 다 놓지 않으면 목숨에 닿을 것 같은
그 경각의 마음으로 찾는 오솔길에는
설렁설렁 바람만니 수만 길을 낸다, 내는데
아까부터 저쪽의 햇빛 환한 무덤 뒤에선
웬 커다란 엉덩이가 잦은 방아를 찧어대며
밑에 깔린 숨결을 자꾸만 결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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