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서정주의 <귀촉도>

월정月靜 강대실 2008. 1. 21. 17:29
서정주의 <귀촉도> / 고창수
글쓴이 : 운수재 조회수 : 14507.10.26 07:28 http://cafe.daum.net/rimpoet/GSrJ/21주소 복사

 

서정주의「歸蜀道」/  高 昌 秀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내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중․고등학교 시절 교재에도 나왔던 김소월의  <진달래꽃> <삭주구성>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삼수갑산> <초혼> <접동새>  등의 시는 어린 나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키워준 작품이었다. <정읍사>나 <청산별곡> 처럼 나를 감동시키고 일생의 반려가 된 시도 있지만, 그 중 한편을 고른다면 위의 시 <귀촉도>를 들어야 할 것 같다.

 

<귀촉도>는 미당 선생님과의 사귐으로 인하여 더 절실하게 내게 다가왔다. 그 전에는 서울의 시낭독회에서 미당의 시를 들을 수 있었고 모임에서 가끔 지나치고, 그의 시를 읽을 정도였다. 한국 시를 번역하면서 미당의 시 가운데서 <국화 옆에서> 등 몇 편의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시를 정독하고 음미하였다. (근래에 미당의 시를 몇 십편 번역하여 신문, 잡지에 발표한 바 있다.)

 

나는 이 시가 한국 시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주옥 같은 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시에는 한국 사람의 역사와 문화, 사상과 정서, 사생관, 서러움과 한이 영롱하게 맺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정주 시집을 책상에 두고 이따금씩 소리를 내어 읽어왔다. 아마도 이 시는 시인으로서의 나의 의식과 무의식에 깊이 내장된 한국 시의 하나가 되었고, 시인으로서의 나의 사념과 정서와 기질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눈물 아롱 아롱’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베는 머리털’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등의 귀절은 나의 심금을 울려주고, 나의 시의 혈액에 녹아 든 것으로 느끼고 있다. 이 시는 한국인의 시적 맥박에 강하게 작용하고 한국시의 서러움을 더해 주었다. 이 시는 그날 그날 먹고 마시는 일과 살다가 죽는 인간 조건을 절실하게 읊조린 비장한 시이다.

 

내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살고 있을 때 미당 선생님은 세계일주 여행 도중 그곳에 들렀다. 나는 미당 선생을 안내하여 며칠간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시에 관하여도 오래 이야기하였다. 어느 날 미당은 시인 릴케가 살던 곳이 스위스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릴케의 시를 좋아하고 탐독하였지만 릴케가 독일에서 주로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릴케가 살던 곳이 없다고 대답하였고, 미당은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미당은 제네바를 떠나기 직전 기차역에서 릴케의 『말테의 수기』이야기를 꺼냈다. 미당이 떠난 다음 나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서 비서에게 혹시 릴케가 스위스에 머문 일이 있는지 관광부 같은 데 물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릴케는 스위스 알프스 산아래 Sion이라는 마을 근처의 Mizot성에 살았고 Raron이라는 마을의 교회에 다녔으며, Mizot성의 장미밭에서 장미 가시에 찔려 사망했고 Raron 교회의 뒷마당에 묻혔다는 것이었다. 나의 무지에 놀란 나는 다음 주말에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Mizot성과 장미 밭을 구경하고 나서 Raron으로 갔다. Raron에 도착하여 어느 노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그 노인은 릴케가 좋아서 수년간 그곳에 살고 있는 Opie라는 영국 사람이었다. 내가 한국 시인인데 릴케의 무덤에 순례를 왔다고 말했더니 그는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근처 교회의 담장에서 들장미를 한 송이 꺾어 주었다. 나는 릴케의 묘소에 헌화한 다음 노인과 대화하다가 떠나겠다고 말했는데, 자기가 옆 동네에 마실을 가는 길인데 차를 태워달라고 했다. 옆 마을에서 작별을 하면서 내가  여생을 잘 지내시라는 뜻의 말을 했더니 그는 금세 눈물이 핑 돌면서 자기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를 집에 초청할 생각을 하면서 제네바에 돌아왔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서울에 귀국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내 친구 한 사람이 제네바로 여행할 일이 있었는데, 나는 미당 선생 이야기를 하고 그 영국 노인을 찾아보라고 부탁하였다. 친구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그가 자주 다니는 <장미>라는 카페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영국 노인의 무덤 사진이었다.

나는 Raron 교회 릴케의 무덤을 소형영화로 찍어왔고 언젠가는 미당 선생께 보여드리려고 생각하였으나, 서울에서 미당 선생을 댁에서 여러 번 뵈었지만 장비를 가져가지 않아 보여드릴 기회를 놓쳤다.

 

나는 미당 선생님에 대하여 시인으로서 또한 인간적으로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의 시에 대하여 각별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고 방문을 사절하는 사정이 생기고 나서는 나는 방문을 삼갔다. 자주 만나서 시에 관한 말씀을 듣고 싶었으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미당 선생의 장례식장에서도 위의 일을 생각하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그 후에도 깊은 감회를 가지고 <귀촉도>를 읽었다. 나는 언젠가 질마재 마을에 가서 며칠을 지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서정주 선생님의 묘소에 시인 릴케가 전하는 장미꽃을 헌화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또한 언젠가 스위스로 가게 되면 릴케의 묘소에 들러 미당 서정주 시인의 부음을 전하고 <귀촉도>를 낭송할 수도 있겠다.

                                                                                                                     (우이시 제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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