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恨(한)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1. 22. 11:26

恨(한)                 문병란



우리 문학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적 특질을 한 마디로 말하여 恨이라고들 한다. 고려 시대의 속요, 이조 시대의 시조나 가사, 민요 잡가에 이르기까지 어디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이다. 특히나 일제시대의 가요나 근대 시가들은 대체적으로 민족의 한으로 점철되어 있다. 본래는 낙천적이고 밝은 사상으로 밝음과 흰 옷을 좋아한 민족이었으나 외세의 침입이 잦고 역사적 정치적 혼란을 겪는 동안이 한의 정서가 우리 민족의 심성에 뿌리를 박은 듯하다.

이 한이란 다시 말하면 애수요 감상이요 나아가서는 패배의식에서 연유된 체념이다. 체념은 도리를 깨달은 마음이라고 말하며 초탈이나 달관쯤으로 합리화 시키지만 사실은 단념이거나 현실적 패배에서 오는 자기 도피며 대결을 기피하는 비겁성의 미화(美化)에 불과한 것이었을 게다.

이러한 한의 정서는 불합리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싹튼 봉건시대의 유물이며 일제 식민지 치하의 잔재임이 분명하다. 1920년대의 한국의 모든 시편들, 가령 素月의 진달래꽃을 위시하여 민족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대개 한을 기조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뛰어 넘으려는 극복의지가 없고 눈앞의 모순이나 부조리나 싸우려는 투지가 거세된 불구의 정서이지, 결코 건전한 현상은 아니다. 한과 체념에 길든 패배적 정서의 소산, 그것은 결코 민족문학도 참다운 서민들의 저항적 민중의지(民衆意志)도 될 수 없다. 한의 극복, 이것이 민족문학의 과제일지 모른다.

얼마쯤은 이 한과 애상(哀傷)이 조미료격으로 가미되어야만 예술성으로 착각할 만큼 흐느낌으로 점철된 애조(哀調)의 시가나 가요들, 이것은 점점 이 땅의 민중을 거세자(去勢者)로 만들 뿐이요, 자탄과 자위의 감정 배설적 저질문학으로 타락시킬 것이다. 여기에 한을 의지, 즉 힘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 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소월시에 나타난 정서도 모두 한이요 패배다.

현실을 극복할 의지나 힘이 없다. 이런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민중은 영원히 승리하지 못하며 자기권리를 누리거나 새 역사를 창조하지 못한다. 항상 강박관념이나 어떤 피해의식에서 못 벗어난 그런 약자의 설움이나 탄식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과 맞서 싸우려는 굳은 의지로 현실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그런 건강한 정서만이 오늘의 우리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소월의 시대는 갔다. 그러한 전통적 정서에 매달려 민중을 한의 대명사로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분명 반역사성(反歷史性)이다. 싸우는 민중, 저항하는 민중, 한을 의지로 바꾸어 역사적 어둠을 무너뜨리는 그러한 새로운 전통이 창조되어야 한다. 여기에 비로소 한국문학의 새로운 내일이 약속될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