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이호우 : 시조 <개화(開花)>

월정月靜 강대실 2007. 6. 12. 13:51
이호우 : 시조 <개화(開花)> | 문학감상 2007.01.11 22:42
 <개화(開花)>

【시 원문】 - 이호우 시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 [현대문학](1962년 5월호) -

【해설】

  단수(單首)로 된 평시조. 이호우의 첫 작품인 <달밤>에서 시작하여 이 작품에 이르러 정신적인 한 고비를 이루었다. 초기의 연작형을 배격, 시조단(時調壇)과 작자 자신에 대한 준엄한 항거의 일면을 보는 단수(單首)의 절정이다. 가열한 정신의 개화로서의 고비가 작자 자신의 눈이 아린 고비의 현상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한 장을 두 행으로 나누어 한 연으로 하여, 전편 3연으로 된 현대시 형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시조를 현대시로 접근시키는 노력이라 하겠다. 율격은 시조의 일반 형식이 많이 무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파격(破格)이나 표기의 변형은 역시 시조의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모색이라 하겠다.

【개관】

▶종류 : 정형시, 현대시조, 단시조, 서정시, 구별배행(句別配行) 시조

▶제재 : 개화

▶성격 : 관조적, 관념적, 지성적

▶운율 : 정형률, 음수율, 4음보, 외형률, 각운

▶표현 : 반복ㆍ영탄ㆍ도치ㆍ의인ㆍ과장법

▶출전 : [현대문학](1962. 5월호)

▶주제 :

- 생명 탄생의 신비, 감격, 긴장감

- 개화를 통한 생명의 신비함과 경건성

- 생명의 존엄성

【특징】

1. 섬세한 감각, 관찰의 점층 구성(시간 순서)

2. 한 장을 몇 개의 음보로 나누어 행으로 구성

3. 한 장을 한 연으로 구성(시각적)

【구성】 - 순행, 점층, 추보식 구성

▶초장 : 개화의 시작 - 새 생명의 탄생

▶중장 : 개화의 절정 - 생명 탄생의 진통, 전율

▶종장 : 주제 - 감동의 절정(외경심) - 감정이입

【전개】

▶초장 : 꽃이 한 잎 한 잎 열리고 그 순간순간을 들여다보고, 그 꽃만의 독자적인 세계(하늘)가 열려 감을 볼 수 있다.

▶중장 : 이제 다른 꽃잎은 다 피고, 마지막 한 잎의 동작만 남았다. 그 꽃잎도 마침내 그 절정의 순간을 향해 몸을 떨고 있다.

▶종장 : 이 순간에는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인다. 천지가 숨을 죽여 죽은 듯 고요하다. 꽃이 피는 순간순간을 포착해 가던 작가도 이 엄숙한 순간에는 가만히 눈을 감지 않을 수 없다.

【감상】

  한 생명의 탄생이, 또는 그 생명의 절정의 순간이 얼마나 엄숙하고 고귀한가를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시조다. 이 시인은 자연의 깊은 섭리를 들여다보는 예지를 지니고 있다. 누가 이처럼 엄숙한 심정으로 꽃이 피는 순간순간을 응시한 적이 있었던가? 꽃이 한 송이 피어난 그 전체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한 송이 꽃에서, 그 한 잎, 한 잎이 피어나는 순간순간들을 응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라고 표현한 것도 대단히 차원이 높은 시적 세계이다. 꽃의 생명을, 꽃 한 송이 한 송이의 세계를 독립된 것으로 보는 이 철저한 평등사상은 불교의 ‘산천초목 실개불성(山川草木 悉皆佛性)’이란 사상과 통하고 있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는, 절정 직전의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그 예리한 시각이 놀랍다. 물론 이것은 심안(心眼)의 문제이다. 마음에 설비를 들여다보는 눈이 없으면 이 순간을 보지 못할 것이다.

  종장의 ‘나도 가만 눈을 감네’에서 우리는 이 작가의 자연에 대해 얼마나 깊은 외경(畏敬)과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한 잎, 한 잎이 피어나는 순간들을 지켜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눈을 감아버리지 않을 수 없는 이 사려(思慮), 그 안타깝고 안쓰러운 순간을 차마 지켜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엄숙한 순간은 눈을 감아 혼자 피게 하는 것이 꽃에 대한, 아니 한 생명의 절정에 대한 경의(敬意)요, 애정일 것이다.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는 순간이니까.

  이것은 시조가 종래의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외면 세계를 지양하고 내면세계로 파고드는 현대시조의 한 특징인 것이다. (권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