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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 시 <우리가 물이 되어>

월정月靜 강대실 2007. 6. 12. 09:16
강은교 : 시 <우리가 물이 되어> | 문학감상 2007.01.11 15:51
 <우리가 물이 되어>

【시 전문】 -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허무집>(칠십년대동인회.1971)-

【해설】

  만남이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너와 네가 만나 합쳐져야 우리가 될 수 있고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너와 나의 만남이 우리를 만들고 그 무수한 우리가 만나 세상을 이루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에서 시인은 물로 만나기를 원한다. `가문 집'에서 반가워하는 물, 키 큰 나무와 함께 서는 비와 같은 물이 되어 만나기를 원한다. 물은 갈증을 없애 주고 하늘에서 축복처럼 내려온다. 뿐만 아니라 물은 풍요한 덕성을 지니고 있어서 죽은 나무의 까칠한 뿌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기도 하며 깊은 강으로 흐른다. 물은 혼자인 법이 없다. 혼자서는 흘러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은 서로 만나 세상을 적시며 강으로 흐르고 이윽고 바다에 닿는다.

  풍요하고 부드러운 물로 만나려는 시적 화자의 소망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우리'는 물이 아닌 `불'로 만나려 한다. 불의 속성은 물과 달리 파괴적이며 징벌적이고 가혹하다. 불의 열기는 뜨겁고 그 빛은 화려해서 종종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불에 닿는 것은 파손을 면할 길이 없다. 물이 모성적인 부드러움으로 포용하며 유연한 흐름을 가지는데 반하여 불의 강렬한 에너지는 `검은 뼈'와 같은 앙상한 잔해를 남기기 마련이다. 시인은 불의 열정적인 힘이 지나간 뒤 물로 만날 것을 희망한다. 불이 사라진 뒤의 고요한 세상을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한 심상을 지니고 있다.

  세상의 불의(不義)한 것을 불이 일소해 버린 뒤 물은 세상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새로운 창조를 기약할 수 있다. 거친 불 뒤의 물은 새로운 재생을 상징한다. 물로 만나자는 뜻에는 불의 광포한 열기가 종식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후의 평화로움에 대한 기대가 부여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불의 강렬함은 넓고 깨끗한 세상을 위하여 필요한 하나의 통과제의와 같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희구하는 것은 물과 불로 정화(淨化)된 맑은 세상이다. 풍요하고 맑은 물로 만나는 의미의 진정함은 탁하고 어지러운 것이 사그러진 후의 순결한 재생에의 기대에서 온전하게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해설: 유지현)

【개관】

▶성격 : 상징적, 의지적

▶표현 :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미래 가정법 형태로 시작하여 만남에 대한 소망을 물과 불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함.

▶특징

  ① 이별의 고통, 슬픔, 한스러움이 아닌 만나고 싶은 열망, 만남에 대한 기대를 적극적, 능동적 자세로 노래함.

  ② 물과 불의 이미지로 만남을 노래함.

▶제재 : 물의 흐름과 만남

▶주제 : 원시적 생명력과의 만남에 대한 희구

【사어 풀이】

<물> : '물'은 '나'와 '그대'라는 고립된 개체들을 '우리'로 합일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가뭄'으로 표상된 삶의 고독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 물은 유동적이고 서로 완벽하게 섞일 수 있는 성질을 지님.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 우리가 소망, 생명, 화합으로 서로 만난다면

<가뭄> : 삶의 삭막함, 고독감. 기계문명의 편의성, 이기주의로 메말라 가는 존재

<키 큰나무와 함께 서서> : 굳건한 의지를 지닌, 생명력 넘치는 존재로서 넉넉한 모습으로

<비> : 가뭄을 해소시키는 역할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에 누워> : 삶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더욱 깊어져

<죽은 나무 뿌리> :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로 인해 사라져 버린 것

<만리 밖> : 내가 갈망하는 세계

<부끄러운 바다> : 순수성을 지닌 이상향의 세계

<저 불 지난 뒤에> : 부정적인 것들이 타 버린 곳에서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 파괴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넓고 깨끗한 하늘> : 시적 화자의 지향의 세계. 원시적 생명력과의 만남, 합일의 세계

<불> : 희망적인 삶의 모습인 '물'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실체. 우리의 삶을 병들게 하고, 서로에게 갈등을 안겨 주는 이념, 죽음, 그리고 모든 부정적 현상. 삶의 고독과 절망을 가중시키는 허무의 존재

【구성】

▶1∼2연 : 물이 되어 만나고 싶은 심정

▶3연 : 물과 불의 대비

▶4∼5연 : 불이 지난 뒤의 만남

【감상】

   시의 제목부터가 매우 함축적이다. '우리', '물', '가뭄', '불', '넓고 깨끗한 하늘'의 영상을 떠올려 보자. '물'의 보편적 성질과 '가뭄'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자. 물과 가뭄이 대립적으로 짝을 이루어 가뭄은 물에 의해 그 갈증이 해소됨을 보이고 있다. '가뭄'을 인간적인 정이 고갈된 삶의 고독으로 볼 때, 시인이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물'이다.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와 '벌써 숯이 된 뼈'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불'이 지난 뒤에 시인의 열망이 어느 시어에 나타나 있는가? 만남에 대한 화자의 태도의 흐름을 좇아 시를 이해해 보자.

▶(1) 이 시는 개성 있는 발상에 의해 '만남'을 노래한 5연의 자유시다. '나'와 '너'를 '우리'로 합일(合一)시킬 수 있는 매체인 물의 현상에 비겨 노래했다. 곧,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이나 고통, 한스러움의 부정적인 상황을 탈피하여 만나고 싶은 열망,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2연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래서 이 세상의 가뭄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노래한다.

▷제3연 :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고, 물의 세계와 불의 세계를 대비시키고 있다.

▷제4∼5연 :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불이 다 지난 다음에 물이 되어서 만나자는 내용이 나온다.

  물, 불 그리고 불을 감싸는 물의 세계, 따라서 보편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물’, '불'이 이 시의 중심이 된다.

  이 시에서 '물'은 주체와 객체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매체이며, '가뭄'으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의 편의성에 물들어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 가는 삶의 고독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이 유동적이면서 서로 완벽하게 하나로 섞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물로 만나 흐를 때, 비로소 힘을 지니어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에 찌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불은 무엇인가? 불은 삶의 기본 원리가 되는 물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것으로 죽음, 파괴, 파멸 등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방향을 상징한다. 이제, 이 불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태우고 지나간 후에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만나자는 것은 단순한 연인이나 친구가 아닌, 원시적 생명력과의 만남, 합일에의 희구라 할 수 있다.

▶(2) 이 시는 '물이 되어 만난다면'이라는 미래 가정법 형태로 시작하여 생명력의 합일에 대한 희구를 '물'과 '불'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물'은 '나'와 '그대'라는 고립된 개체들을 '우리'로 합일시킬 수 있는 매개체이자, '가뭄'으로 표상된 삶의 고독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또한, '물'은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는 생명의 기원인 동시에, 다른 것들과 섞여 '아직 처녀인 / 부끄러운 바다'로 흘러감으로써 삶의 다른 세계를 맛보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물'로 상징되는 조화로운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깨끗이 태워 버릴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에, 3연에서 '불'로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은 삶의 기본 원리가 되는 '물'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것으로, 현실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에 맞서는 대결의 정신을 의미한다. 그 때,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음을 발견한 시인은, 이 불이 지나가고 난 후, 모든 사람들이 '만리 밖'의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마침내 '흐르는 물'로 만날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 지향하는 '넓고 깨끗한 하늘'이란 바로 완전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새로운 창조적 만남의 공간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