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서정주
대추 물 들이는 햇볕에
눈 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올 때
가슴에 그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비수 밑에
숨기어져
살던 눈썹.
비수들 다 녹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은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산 바위
박아 넣어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았다가
그 눈썹 꺼내들고
기왓장 넘어 오는고.
춘궁(春窮)
춘궁(春窮보름을 굶은 아이가
산(山) 한 개로 낯을 가리고
바위에 앉아서
너무 높은 나무의 꽃을
밥상을 받은 듯 보고 웃으면,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山) 두 개로 낯을 가리고
그 소식을
구름 끝 바람에서
겸상한 양 듣고 웃고,
또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山) 세 개로 낯을 가리고
그 소식의 소식을 알아들었는가
인제는 다 먹고 난 아이처럼
부시시 일어서 가며 피식 웃는다.
**사정주(1915~ 2000)
**중앙일보(2007.1.4<목> 31면 '시가 있는 아침')게재
**정끝별시인말씀:
보름 굶을 때마다 산 그림자가 하나씩 깊어집니다.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말.생생합니다.먹을 수록 '허천병'을 부르는 진달래꽃.박태기꽃.찔레순.삘기...,산 하나씩을 훑어 먹어가며 보름을 거듭 굶을수록 꿈속 상다리가 휘어집니다.몽상의 밥상,초월의 밥상!이쯤 되면 굶주림도 정녕 남루에 지나지 않겠습니다.굶을수록 거듭 깊어지는 굶주림의 내공.굶주림의 경지!
출처 : 저 곳에 가는 길
글쓴이 : 벽계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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