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8. 문병란 시/7. 호수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1. 27. 07:52

호수

문병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뜩임 사이에서
더욱 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