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학 산책

2020. 신춘문예 당선 시

월정月靜 강대실 2020. 1. 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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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각 신문사 신춘문예 시 당선작

프로파일 이숙희문화교육연구소 2020. 1. 11.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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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문사별 신춘문예 당선작 시 감상

202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김지오(김임선)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혹시, 당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세요? 어머,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도둑 아니고 강도 아니에요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의 왼쪽 심장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혹시,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 번 만져 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 번 넣어 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한 개씩은 들어 있어요 사랑 말이에요 세균처럼 바이러스처럼 그 사탕 나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요 유난히,

망설이지 마세요 그 사탕 내게 주면 당신 주머니에는 또 다른 사탕 생길 거예요 사랑처럼 말이에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 맞아요

사탕 대신 꽃은 어때요?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꽃을 나눠 가진 우리

이제 달콤해집니다

*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우유를 따르는 사람들

김동규

- 창가에 앉아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것을 따르고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 둘러맨 앞치마가 하얗고 당신의 얼굴이 희고 빛이 나는 곳은 밝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우유를 따르고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서 우유를 따르고 다음 날에도 성실하게 우유를 따르는 그런 사람에게 매일 우유를 따르는 게 지겹진 않나요, 그곳은 고요하고 그곳에서 당신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고

-어떤 날엔 TV를 켰는데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출연한다. 책에서도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이 앉아있는 지면에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고 서가가 빛나고 읽던 것을 덮어도 빛나는 창가에서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차분하게 우유를 따르고 열 번을 쳐다보면 열 잔이 되는 우유가 있다. 실내는 눈부시고 새하얗게 차오르는 잔이 가득해지고

-그런데 누가 우유를 옮겨요, 지켜봐도 우유를 옮기는 사람이 없는데 우유를 가져다준 적이 없는데, 당신도 환하고 실내도 환하고 당신이 우유를 계속 따라서 그런 거잖아요 문밖에서 발목이 젖고 우유가 넘치고

-우유가 흐르는 골목이 차갑고 당신은 계속 따를 수 있겠어요, 당신의 손이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침착하게 사랑하기

차도하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

<2020 경향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세잔과 용석

박지일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

<2020 매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남쪽의 집수리

최선 (본명 최란주)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꽃 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

그때 산수유나무에는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찾아다니는 삼월,

나비와 귀뚜라미를 놓고 망설인다.

봄날의 아랫목은 두 폭의 날개가 있고

가을날의 아랫목은 두 개의 안테나와 청기聽器가 있다.

뱀을 방안에 까는 것은 어떠냐고

수리업자는 나뭇가지를 들추고 물어왔지만

갈라진 한여름 꿈은 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오고 가는 말들에 시차가 있다.

그 사이 표준 온도차는 5도쯤 북상해 있다

천둥과 번개 사이의 간극,

스며든 빗물과 곰팡이의 벽화가

문짝을 7도쯤 비틀어지게 한다.

북상하는 꽃소식으로 견적서를 쓰고

문 열려있는 기간으로 송금을 하기로 한다.

꽃들의 시차가 매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든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 수리를 부탁하고 보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아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계약이 성립된다.

산수유 꽃나무가 화르르

허물어지고 있을 것이다.

*

<2020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도서관의 도서관

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지만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있다

*

<2019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새로운 생활

조용우

문병을 다녀오는 길에 새 옷을 사기로 한다

벽장 속 셔츠들은 옷깃이 바랬고

오늘은 사야한다 새로운 흰 것을

여름의 아웃렛 비어있는 리넨들은

간소하고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권하고

너는 이제 그런 생활을 한다

얇은 옷 한 벌과 주머니 두 개로

마당 없는 병원 벤치에 간간이 내리는

미적지근한 볕을 받으며 너는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좋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운이 좋았다, 좋다

라는 말을 번갈아 고르고

오늘도 너를 찾아오지 않는

우리를 여전히 좋아하는 척하면서

어떤 얼굴은 하얗고

어떤 사람은 점점

창백해져 가는가

하얀 것이 하얀 것을 더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구겨져갔다 나는

새로 산 셔츠를 벽장에 건다

버릴 옷들이 다시 버릴 옷으로 남겨진다

뿌옇게 젖어가는 깃과 깃

땀방울은 매일 차가운 목덜미를

투명히 흘러내리는데

*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바이킹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

[2020 영남일보 문학상] 詩 당선작

포노 사피엔스

금희숙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림자 숲과 검은 호수

이원석

모든 것은 덤불 속에 감춰져 있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둡고 어렵고 어리고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마른 잎들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따라붙었지 매달리고 매만지고 메말라

찬 공기는 조금씩 뒤섞였어

침상에서 내려 딛은 발은 문 앞까지 낡은 마루가 삐걱이는

소리를 누르고 길고 고른 숨소리들

사이로 천천히 밀어내는 호숫가의 배

젖은 흙 다섯 발가락들 사이로 닿는 촉각 촉각 누르는

건반과 긴바늘 입술 위의 손가락

우거진 뿔이 덤불 속에 갇혀

머리를 숙이고 있지 포기하지 못한 자랑들이 엉켜 있는

낮은 덤불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지 다물지 못하는 입으로

숨을 뱉으며 뒷걸음질 끝에 꿇은 무릎과 마른 잎 위의 몸뚱이

내가 들어 올리고 싶은 뿔은 덤불 속에 잠겨 있어

달리는 덤불을 보여 줄게

춤추는 작은 숲을

바닥을 움켜쥔 모든 뿌리와 함께

흰옷은 흙투성이

물은 차고 어두워 소스라치는 살갗

걸어들어오는 고요와 잠긴 청각이 듣는 물소리

물속을 만지면 물이 몸을 바꾸고 뒤집는 모양은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잠기는 기억

길게 줄어드는 음이 끊기지 않는

몸에 선을 긋고 지나가지 손도 발도 없이

물의 틈을 찾아 결대로 몸을 틀며 가라앉는 숨

접촉경계혼란

피아노의 가장 낮은 건반을 무한히 두드리는

바닥

놓지 마 놓지 마

춤을 추는 팔과 파란

뒤집힌 호수 바닥 위에 검은 숲

그림자 속 덤불과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젓는 우거진 뿔과 큰 눈망울

진저리치며 흩날리는 입과 잎과 입김

호수 위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검은 물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숲엔 부러진 뿔과 나뭇가지

몸뚱이 위로 끝없이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

*

202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투

차유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