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시(饑民詩)
--흉년에 굶주린 백성을 노래한 시--
- 茶山 丁若鏞 -
인생이 만일에 초목이라면
물과 흙으로만 살아가련만
허리 구부려 땅의 털을 먹으니
이것이 바로 콩과 조이렸다.
근들 어찌 넉넉히 먹었을소냐
마른 목은 여위어 따오기 모양이요
병든 살갗 주름져 닭살 같고나.
우물이 있다마는 새벽 동자 할 수 없고
땔감은 있다마는 저녁끼니 바이 없네.
사지는 아직도 움직일 때이련만
굶은 다리 제대로 걷기지 않네.
해저문 넓은 들에 부는 바람 서글픈데
슬피 우는 저 기러기 어디메로 날아 가나.
고을 원님 어진 정사 베풀기 위해
없는 백성 구한다며 쌀 준다기에
가다가다 고을 문에 이르러 보면
옹기중기 입만 들고 죽솥으로 모여든다.
개돼지도 버리고 거들떠 안 볼 텐데
굶주린 사람 입엔 엿보다도 달고나.
어진 정사 한다는 말 당치도 않고
주린 백성 구한다니 당치도 않으이.
관가의 상자 속은 악한 놈이 엿보거니
그 어찌 우리들이 굶주리지 않을소냐.
관가 마구간엔 마소들도 살찌는데
이건 바로 우리들의 살일러라.
슬피 울며 고을 문을 나서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여 갈 길은 감감
잠시 발 멈추어 마른 잔디 언덕 위에
무릎을 펴고 앉아 어린 것 달래노라.
고개 숙여 어린 것의 서캐 이를 잡노라니
두 눈에선 폭포같이 눈물이 곤두서네.
유유히 흐르는 천지자연 큰 이치를
고금에 그 누가 알기나 했으랴.
총총한 백성들이 살아 가는 저 모습
여위고 병들어서 몰골이 말 아닐세.
말라서 약한 몸이 가누지를 못하며
길가에 만나느니 유랑민뿐이로세.
이고 지고 나섰으나 오라는 곳 어디메뇨
갈 곳을 모르니 어디로 향할 소냐.
골육도 보전치 못하겠으니
두려울손 천륜을 어겨 버리네.
상농군도 이제는 거지가 되고
집집마다 문 두드리어 구걸을 하오
가난한 집 구걸 갔단 되려 슬프고
부자집에 구걸 가면 더욱 피하네.
날짐승 아니니 벌레 쪼아 못 먹고
물고기가 아니어서 헤엄칠 수 전혀 없네.
얼굴은 부어 올라 누렇게 뜨고
머리는 흩어져 어지러이 날리누나.
옛날 성현 어진 정사 펴던 시절은
홀아비와 과부를 먼저 살폈어라.
지금은 그들이 오히려 부러우니
굶어도 혼자서 굶고 지내니......
아내도 지아비도 가솔조차 없었으니
그 어찌 살림 걱정 하였겠는가?
따스한 봄바람에 봄비가 쏟아지면
꽃피고 잎이 피어 온갖 초목 자라느니
거룩한 생의 뜻이 온 천지에 가득하니
빈민구제 높은 정이 천지에 가득찼네.
엄숙코 점잖은 관청의 높은 분네
나라의 운명은 오직 경제뿐이로세
모든 생명들 도탄에 빠졌는데
이들을 구원할 자 관리들뿐이로세.
누런 얼굴은 볼 모양 없고
마른 버들가지 형상이로다.
구부러진 허리에 걸음 옮길 힘이 없어
담벽을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선다.
일가 친척도 도울 길 전혀 없고
길가는 나그네야 아는 체나 할까 보냐.
제 살기에 얽매어 본래 마음 어기고
주려 병든 자를 보고 도리어 웃고 있네.
이리저리 뒤치며 온 마을을 찾아가나
마을 인심 어찌 본래 이러하던가.
부러워라, 저 들판에 날아가는 새 떼들은
벌레나 쪼아먹고 가지 위에 앉았도다.
사또님네 집안에는 주육이 낭자하고
풍악 소리 울리면서 명기 명창 화려하다.
희희낙락 즐겁게도 태평세월 모습이며
대감님네 그 모습은 우람하고 풍성하다.
간사한 인간들은 거짓말만 꾸며대고
교활한 양반들은 걱정이라 하는 말이
「오곡이 풍성하여 흙더미로 쌓였으되
농사에 게으른 자 스스로 주리노라.
초목같이 많은 백성 어찌 다 번영케 하리
요순 때 임금들도 백방으로 병 고쳤네
하늘에서 홍수같이 좁쌀이 쏟아진들
이같은 대 흉년에 어찌 다 구언하랴.
두어라 술이나 마시자 또 한 잔을 기울여라
대부 벼슬 깃발 아래 춘홍이 가시겠다.
강언덕과 산골에는 남는 땅도 있을 게다
사람이란 숙명으로 한 번은 죽기마련,
제 아무리 어두운 백성이라 할지라도
나라에 이 사정을 알려서 무엇하리」
저들의 형장들이 서로 돕지 않는 것을
부모인들 그 어찌 자애를 베풀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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