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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경림 : 시 <목계장터>

월정月靜 강대실 2007. 5. 22. 16:46
 <목계장터>

【시 전문】  - 신경림 시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시집 <농무>(1973)-

* 박가분 : 여자들의 화장품.

【해설】

  이 시는 신경림의 시 세계의 한 아름다운 거점이 되고 있는 '목계 장터'를 제재로 하고 있다. '목계'는 남한강안(南漢江岸)의 수많은 나루터 중에서 가장 번잡했던 곳이다. 목계를 중심으로 한강마을 사람들의 억센 생명력을 고도의 상징과 비유를 통해 형상화시키고 있다.

【개관】

▶성격 : 서정적, 향토적, 비유적, 상징적, 관념적

▶운율 : 민요적인 리듬(4음보), 특정 어구의 반복.

▶표현상의 특징 : 1인칭 화자의 독백체

▶제재 : 민중들이 삶

▶어조 : 삶의 애환을 차분한 어조, 독백조로 노래

▶심상 : 상징적, 감각적

▶제재 : 떠돌이의 삶

▶주제 :

- 민중들의 삶의 갈등과 그 극복 의지

- 떠돌이 민중의 삶과 생명력

▶출전 : <농무>(1973)

【구성】

▶제1∼7행 : 떠나는 삶 - 방랑

▶제8∼11행 : 머무르는 삶 - 정착

▶제12∼14행 : 떠나는 삶

▶제15∼16행 : 떠나고 머무르는 삶

【표현상의 특징】

  이 시는 신경림 자신이 주도한 민요 운동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그는 일찍부터 민요에 관심을 가져 광범위하게 민요를 수집하였을 뿐 아니라 민요 보급 운동에 적극 참에 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습득한 민요의 가락이 이 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전통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 음보의 가락을 토대로 하고 있고, 각 음보를 구성하는 음절수도 3ㆍ4 조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하고','하네','라네' 등의 어미를 반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생동감 있게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방물장수'의 이미지】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물장수'의 이미지이다. 이 방물장수는 전통 사회에서 일종의 민중적인 '이야기꾼'이었다. 즉 방물장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보고들은 것들을 구수하게 역어 내는 입담을 지닌 존재로 민중들의 애환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고, 그 이야기들을 이곳 저곳에 전파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따라서,'방물장수'가 되라는 것은 민중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하는 이야기꾼이 되라는 뜻으로, 이 시의 작가가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말해 준다.

【어휘ㆍ시어 풀이】

<박가분> : 여자들이 쓰는 화장품의 일종

<방물장수> : 여자들에게 소용되는 물품을 파는 상인

<토방> : 마루를 놓게 된 처마 밑의 땅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바람이 되라 하네> : '구름'과 '바람'은 주로 '떠남' 혹은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를 상징.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 목계 나루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산은 날더러 들꽃이∼잔돌이 되라 하네>  : '들꽃'과 '잔돌'은 모두 찾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어떤 시련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민초를 상징.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바위 뒤에 붙으라네> : '산서리'와 '물여울'은 모두 가혹한 시대 현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풀 속에 얼굴 묻고'와 '바위 뒤에 붙는’ 행동은 현실의 시련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민초들의 모습을 암시.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 민물 새우를 넣고 끓인 찌개 냄새가 토방 툇마루.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을 암시.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 '천치'는 세속적 이해나 명리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을 뜻한다. 즉 '세속적 이해나 명리를 다 벗어버리고'의 뜻.

【감상】

  이 작품은 떠돌이 장사꾼들의 삶의 공간인 목계장터를 중심으로 민중들의 삶과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민요적 가락과 일상 어휘 구사가 이 작품의 서정성을 돕고 있다.

  또한 구름과 잔바람, 방물장수, 떠돌이로 표상된 '유랑'의 이미지와 들꽃과 잔돌로 표상된 '정착'의 이미지는 이 시의 주제 의식을 이루는 두 축이 된다.

  신경림 시인이 민요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던 한 시기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성과를 이룩한 작품이다. 4음보의 가락을 주조(主調)로 하여 '하고', '하네', '-라네'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방랑과 정착의 심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시는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특히, 목계 나루를 무대로 한 풍물과 그에 따른 어휘들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끊임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뿌리 뽑힌 민중들의 삶의 정서를 물씬 풍기게 한다. 목계 나루는 서울로 가는 길목에서 큰 장터를 이루었으나. 근대화되면서 점점 퇴색해 갔다. 화자는 바로 이 대목에 서서 갈등을 느낀다.

  방랑인가 정착인가. '구름', '바람'으로 대표되는 방랑의 심상과 '들꽃', '잔돌'로 표상되는 정착의 심상 사이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그의 마음은 '산 서리 맵차'고 '물 여울 모진' 이 세상에서 차라리 천치(天痴)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고 싶지만, 몸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터이다.


  이 시는 표면상 시적 자아의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시인 자신의 삶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시인과 시적 자아가 밀착되어 있다. 시적 자아에게 있어서 '구름'이나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삶은 곧 하늘이 부여한 운명이자 시대가 규정한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자아는 그러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은 한편으로 서러운 운명이기도 하지만 아무것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배경 또한 자신을 '잔바람'이나 '방물 장수' '들꽃', '잔둘'과 같은 존재로 보는 깨달음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왜냐 하면 '목계 장터'는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곳은 한때 남한 강변에서 가장 번화한 나루터이자 장터였지만 이제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전통적인 촌락 공동체이고, 몰락해 가는 농촌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나루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곳에는 무수한 사연들이 베어 있고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집중되어 있다. 시적 자아는 자신에게 '목계 장터'에 '짐부리고 앉아 쉬는 천치', 즉 '방물장수'가 되어 그 모든 변화와 그 모든 삶의 애환을 보고 듣는 존재가 되라고 하는 운명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인 자신의 삶의 행로, 그리고 민중들의 삶과 밀착되려고 애써 온 그의 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민중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전해 주는 이야기꾼(방물장수)으로 살아 왔거니와, '목계 장터'는 그와 같은 시인 자신의 삶을 소박한 언어와 경쾌한 민요적 율격, 그리고 빛나는 이미지들로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가 서 있는 목계 나루는 서울로 가는 길목의 하나로, 예전에는 큰 시장이 서기고 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취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장이 설 때마다 찾아오는 방물장수와 9년에 한 번씩 찾는 떠돌이에게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있으나, 그것 역시 흔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퇴색하여 가는 목계 나루에서 방랑과 정착의 갈림길에 서 있는 민중들과 시적 화자의 갈등을 이 시는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민요적 가락과 수사적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또한 이 시에는 토속적인 소재와 어휘들이 사용되어 목계 나루의 옛 정서를 물씬 풍기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서정의  세계는 잃어버린 것, 지금은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강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운율면에서는, 민요의 리듬을 연상시키는 4음보를 주된 율격으로 하면서, '하고', '하네', '-라네' 등의 어미를 반복적으로 구사하여 생동감 있는 시상(詩想)을 전개하고 있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방랑과 정착의 이미지가 교차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강', '구름', '바람' 등으로 표상되는 떠남의 이미지와, '산', '들꽃', '잔돌'로 표상되는 정착의 이미지는 떠돌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민중들과 시인 자신의 운명을 은근히 암시한 것이다.


  이 시는 '목계 장터'를 중심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민중들의 삶과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목계'는 1910년대까지 중부 지방의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남한강안(南漢江岸)의 수많은 나루터 중 가장 번창하기도 했지만, 1921년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충북선이 부설되자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시의 표현상 특징은 전통적인 민요의 리듬을 연상시키는 4음보를 주된 율격으로 하면서, '하고', '하네', '라네' 등의 어미를 반복적으로 구사하여 생동감 있는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방랑과 정착의 이미지가 교체되어 나타나고 있으나, 마지막 부분에서 1ㆍ2행을 변주, 반복하여 주제를 강조하는 안정된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표면상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진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독백은 화자 개인의 삶의 애환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떠돌이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의 고뇌라는 일반화된 삶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가 '목계 장터'라는 생활 현실의 공간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적 화자가 보고 듣고 체험한 사실들이 시적 표현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름'ㆍ'바람' 등으로 표상되는 떠남과 '들꽃'ㆍ'잔돌' 등으로 표상되는 정착의 이미지 사이의 대조적 표현은 퇴색해 가는 목계 나루에서 방랑과 정착의 기로에 서 있는 농촌 공동체의 시대적 삶과 화자의 개인적 삶 사이의 갈등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16행의 단연시로서 의미상 5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락 : 1∼4행 : 하늘, 구름, 땅, 바람(잔바람)

2단락 : 5∼7행 : 방물 장수

3단락 : 8∼11행 : 산, 들꽃, 강, 잔돌

4단락 : 12∼14행 : 떠돌이

5단락 : 15∼16행 : 하늘, 바람, 산, 잔돌

  1∼7행에서, 하늘과 땅은 날더러 구름이나 바람, 혹은 '방물장수'가 되라고 하고, 8∼14행에서는, 산과 강이 날더러 들꽃이나 잔돌, 혹은 '떠돌이'가 되라고 한다. 이를 보면, 8∼14행이 1∼7행의 변주이며, 15∼16행은 1∼2행의 반복으로, 이 시가 정교한 기하학적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단락은 화자가 갖는 유랑의 운명에 대한 인식을 보여 준다. '구름'과 '바람'은 화자가 삶에 대해 갖는 비탄, 또는 삶의 주체로서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뜻하며,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는 그 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서 취재한 표현이다.

  2단락은 방물장수로서의 떠돌이 삶을 노래한다. '아흐레 나흘'은 목계장이 서는 4일과 9일을 말하며,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에서 가을볕마저도 서럽게 느끼며 살아야 하는 그의 비애가 잘 드러나 있다.

  3단락은 나약한 민초로서 살아가는 삶을 제시하며, 4단락은 고달픈 삶의 애환과 소망을 보여 준다. '산서리 맵차'고 '물여울 모진' 삶의 시련을 피해 '풀 속에 얼굴 묻고' '바위 뒤에 붙'어 안식을 얻고 싶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를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천치로 변해/짐부리고 앉아' 쉬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은 화자가 처한 곤궁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5단락은 운명과 존재성을 함께 제시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출처 : 김영관의 국어방
글쓴이 : 재봉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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