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많이 읽히는 시

29. 산정묘지1/조정권

월정月靜 강대실 2024. 5. 18. 17:44

내가 읽은 좋은 시29

                

 산정묘지1/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

얼음을 그대러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성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 밑에서 들려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 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음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 누르지 않는다면

 

(시집 산정 묘지, 1991)

 

 

한없이 투명하고 한없이 견고한 정신의 드높은 경지. 그 곳이 바로 조정권의 시가 도달하려는 세계이며, 그 성과로 나나탄 것이 곧 산정 묘지시편이다. 정신적 순결성과 이미지의 명징성이 조화롭게 일치를 이룬 세계, 말고 투명하면서도 유동하지 않고 집중된 응결의 힘을 보여 주는 세계, 그는 바로 이런 공간을 꿈꾸어 왔고, 마침내 그는 그 정점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동양적인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사유의 깊이와 그것을 담아낸 언어 선택의 정점 때문에, 그의 시는 명상시(瞑想詩)라고 불리는 한편, 일제 치하의 육사의 절정과 방불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늘도 지쳐 끝난 고원 / 서릿발 칼날 진 그 위에 서다와 같은 극한적 현실 상황 속에서도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자기 극복과 초월의 모습을 이루어낸 육사의 자세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산정 묘지절정절정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산정 묘지30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로 허무와 싸움을 통해 정신적인 극복을 성취해 가는 초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초인(超人)이란 니체(F. Nietzsche:1844~1900)에 의하면 대지에 뿌리박고 살면서 자력에 의해 자기 극복을 성취함으로써 정신의 상승을 획득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다시 말새, 어떤 초자연적 · 초현실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의 대결을 통해 자기 극복과 구원을 이루어 가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조정권은 그것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시에 결빙’ · ‘광석’ · ‘얼음’ · ‘씨앗’ · ‘등과 같은 견고성 이미지들을 빈번히 사용한다. 이 작품에서는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나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 누리지 않는다면이라는 구절에서 그 같은 초인적인 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그의 현실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다. 그의 시에는 ’ · ‘어둠’ · ‘겨울’ · ‘결빙과 같은 하겅적 이미지 시어들과 함께 없다’ · ‘않다’ · ‘못한다등의 부정 종지법, 그리고 가장’ · ‘못내’ · ‘끝내’ · ‘마침내등의 단정 부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비관적인 세계 인식의 태도는 무()와의 대결로 응집된다. 그러므로 산정 묘지라는 제목의 산정묘지가 뜻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무와의 대결 또는 무의 초극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산정(山頂)’은 지상의 맨 끝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공간이며, ‘묘지는 삶의 마지막인 죽음의 세계, 곧 무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임을 분명히 알고 있는 시인은 이 무와의 첨예한 대결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의 극점에 도달하려는 치열한 초극 의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이 시는 허무한 지상적 삶을 초월하고, ‘가장 높은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산정 묘지에 다다르려 하는 시인의 현실 초극 의지가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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