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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보며-서정주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27. 15:07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