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김현승 "눈물"

월정月靜 강대실 2013. 9. 2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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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시초>

 

시인은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기독교 신앙으로 견디어 내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제망매가에서 친족의 죽음이라는 비통한 체험을 종교적 깨달음으로 극복하고자 했듯이, 김현승 또한 슬픔과 고통의 극한에서 절대자를 향한 경건함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기독교적 시정신이 이룩한 높은 경지의 하나를 본다.

 

* 나의 웃음 : 삶의 환희

* 나의 눈물 : 삶의 고뇌와 시련을 통하여 도달된 절대 순수의 세계

*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일상적 죄악과 불순에 젖어 살지만 가끔은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풍요로운 땅에 떨어지는 씨앗과 같이 말고 깨끗한 새명이 되고 싶다.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 흠 티 금 등이 없다는 것은 눈에는 일체의 비순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 눈물만이 나의 흠없고 티 없는 모든 것이나 그것마저 불순하다고 하며 더 맑고 가치 있는 것을 내놓으라 하면

*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웃음은 아름다운 나무의 꽃과 같은 삶의 환희를 뜻하고 눈물을 열매와 상응하여 삶의 고뇌와 시련을 거쳐 도달된 결실의 세계를 의미한다. , 삶의 여러 의미를 깨우치게 하여 절대 순수에 이르도록 한 절대자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구절이다.

 

 

참고자료

 

김현승은 기독교주의적 시인으로 혹은 고독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독이란 어느 정도 기독교와 연관되는 것도 물론이다.

시인 자신은 고독을 통해 신에 가까이 가려는 것이 아니고, 고독 그 자체에 깊이 빠져 오히려 고독을 향유하는 것이며, 그 자신의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고독이라 말한 바 있다. 그의 시집 견고한 고독》《절대 고독의 이름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단단한 고독에 사무쳤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의 시는 내면적이고 고독한 단독자로서의 고뇌가 짙게 깔려 있다.

<눈물>도 이런 경향을 얼마간 띠고 있다. 독백체의 자기 독백이라든지, 내면적 침잠(沈潛), 경어체의 어조가 주는 경건성 따위는 다형(茶兄)의 시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질이다.

<눈물>은 그가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신에 의지해 잊어 보려는 아픔에서 썼다고 한다.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오직 정직하고 진실한 눈물이 있을 뿐이다하고 하여 눈물을 신께 바치는 진실이라고 보았다.

1연은 성서(聖書)의 알레고리를 차용하고 있다. <마태복음>13장에 나오는 것으로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가 그것이다. 성서에서 옥토에 떨어진 것은 씨앗이고, 이 씨앗은 결국 열매를 맺게 할 작은 생명이다. 영생적(永生的) 진실을 잉태하는 행위, 그것은 옥토에 작은 생명의 씨를 뿌리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화자는 눈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열매를 맺게 할 작은 씨앗으로 본다. 작은 씨앗(눈물)을 뿌림은 백 배의 열매(진실, 영원, 기독교적 초월 행위)를 위한 자기 극복의 몸짓이다. 이렇게 될 때, 슬픔(눈물)은 절대의 기쁨(눈물)으로 화할 수 있다. 그러기에 눈물의 의미는 단순한 차원에서 보다 초월적인 것으로 바뀌게 된다.

2. 눈물의 미덕을 말했다. 눈물의 물리적 형상을 통하여 추상적 가치를 보여 주는데, 눈물은 흠도 티도 없는 순수성을, 금가지 않은 완전성을 가진다. 따라서 눈물은 완벽한 가치를 지닌 절대의 것이 되고 만다. 화자는 이 절대의 가치, 절대의 순수에 빠지고자 한다. 화자의 절대 가치는 눈물뿐이다.

3,4연 눈물보다 더 가치로운 것을 신이 요구한다해도, 나에게서 가장 순수한 것은 눈물뿐이므로 눈물만을 바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눈물이 나의 전부이므로.

5. 신은 꽃을 만들었지만 쉬 시드는 것을 보고는 영생적인 열매를 또 만들었다. 꽃은 유한성을 상징하며, 열매는 영원성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웃음과 눈물이 대응된다. ()의 열락(悅樂)은 금방 사라지는 꽃과 같은 것이며, 눈물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화자는 슬픔을 영원성으로 극복하려 한다. 신이 만든 눈물은 절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신의 큰 뜻 속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