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김현승 "플라타너스"

월정月靜 강대실 2013. 9. 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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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문예}, 1953.6)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하여 감정 이입의 기법으로 정서를 표출해 온 우리 시가의 전통을 계승했다. 플라타너스를 단순한 식물로서 바라보지 않고, 인간과 같은 생의 반려로 형상화하였다.
이 시의 화자는 플라타너스를 통해 자신의 어떤 생각과 정서를 함께 나누고자 했는가를 음미하자.
▶ 성격 : 서정적
▶ 어조 : 고독하면서도 친근하고 맑은 어조
▶ 심상 : 서술적, 감각적 심상
▶ 표현 : 의인법, 감정 이입법
▶ 구성 : ① 파아란 꿈을 가진 플라타너스(제1연)               
② 플라타너스의 넉넉한 사랑(제2연)
③ 나의 반려자인 플라타너스(제3연)
④ 플라타너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심정(제4연)
⑤ 영원한 반려자가 되기를 염원함(제5연)
▶ 제재 : 플라타너스의 자태
▶ 주제 : 고독한 영혼의 반려를 염원함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화자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50자 내외로 쓰라.
<모범답> 자연을 의인화하여 하나의 인격체처럼 대하는 데서 시인의 자연 친화적 태도를 알 수 있다.

2. 이 시의 제재인 플라타너스가 상징하는 의미를 두 어절로 쓰라.
<모범답> 영혼의 반려자

3. 이 시에서 특정 대상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속성으로서의 플라타너스를 나타낸 두 어절의 말을 찾아 쓰라.
<모범답> 그늘을 늘인다.

4. 제1-5연 중, 종교적 감수성이 가장 절실하게 표현된 연은?
<모범답> 제5연

<감상의 길잡이>(1)
제1연 : 사람은 꿈을 가진 존재이다. 화자는 플라타너스에게 너도 꿈을 아느냐고 물어 본다. 플라타너스는 벌써 그의 머리를 파아란 하늘에 두고 있다고 말 없는 말을 하는 듯하다. 플라타너스 역시 푸른 꿈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제2연 : 사람은 사모할 줄을 안다. 플라타너스는 사람이 아닌지라 누군가를 사모할 줄 모르지만 제 스스로 그늘을 만들어 누구든 쉬게 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특정한 대상을 향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일 터이다.
제3연 : 플라타너스는 외롭게 먼 길을 걷는 화자에게 유일한 반려자요, 벗이다. 고독을 위로하며 그 외로운 길을 동행하여 준다.
제4연 : 화자는 이 고마운 벗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고 싶으나, 나무와 사람은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그러한 소망을 실현할 수는 없다.
제5연 : 시인과 플라타너스는 지상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이웃하며 지켜 보는 영원한 반려자가 되고자 한다.

이 시는 플라타너스를 의인화하여 꿈과 덕성을 지닌 존재로 예찬하고 그러한 자세로 삶의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뜻을 노래한 시다. 나무와 사람은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지만, 지상의 삶 속에서 서로의 고독한 영혼을 달래며 겸허하게 살아가자는 주제가 담겨 있다.

<감상의 길잡이>(2)
일제 식민지하에서 강인한 의지와 민족적 낭만주의 경향의 시들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김현승은, 일제 말기에는 타협을 거부하여 붓을 꺾고 10년의 세월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는 종래의 생경한 수사(修辭) 취미가 사라진 대신, 완숙한 경지의 서정성과 사물의 본질을 깊이 보려는 경향으로 씌어진 김현승 문학의 제2기의 작품이다. 플라타너스라는 가로수를 '너'라는 단수 개념으로 의인화시켜 인생의 반려(伴侶)로 삼아 생에 대한 고독과 우수, 그리고 꿈을 간직한 사랑의 영원성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간결한 시어의 구사로 시상을 압축, 리듬감 있는 운율로 시적 감각을 최대로 살리고 있다.
1연은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는 플라타너스의 모습을 통하여 인간과 마찬가지로 꿈을 가진 존재로서의 플라타너스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2연은 자연의 예지를 드러내고 있는 부분으로, 사람처럼 사모할 줄은 모르지만, 자신의 몸으로써 그늘을 만들어 남을 쉬게 해 주는 플라타너스의 희생과 헌신적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자연이 침묵으로써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사랑의 참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자연의 참뜻은 인간에게 주는 예지나 교훈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말없이 수행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3·4연에서 인생이라는 고단한 길을 걷는 화자가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그늘을 늘여 주는 플라타너스의 모습이야말로 인간과 함께하는 삶의 반려자로서의 자연의 역할을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타너스에게 화자는 '뿌리 깊이 / 영혼을 불어 넣어' 줌으로써 자연과의 교감 내지 일치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이 같은 소망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라는 것은, 인간이 유한적 존재,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자,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인간의 한계 의식 또는 운명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이란 일생의 종말을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이며, '검은 흙'은 '수고하고 짐진 자'로서의 인간이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으로 죽음의 세계이다. 그 같은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때 갖게 되는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죽음이라는 것도 유한적 존재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된 화자는, 마침내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어' '별과 창이 열린' 세계로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이렇게 이 시는 '자연   인간   신'의 상관 관계 속에서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꿈과 의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