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한강 시

32. 한강 시/ 피 흐르는 눈 4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20. 14:01

32. 피 흐르는 눈 4 


이 어스름한 저녁을 열고
세상의 뒷편으로 들어가 보면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있다

고요히 등을 돌린 뒷모습들이
차라리 나에겐 견딜 만해서
되도록 오래
여기 앉아 있고 싶은데​

빛이라곤
들어와 갇힌 빛뿐​

슬픔이라곤
이미 흘러나간 자국뿐

조용한 내 눈에는
찔린 자국뿐

피의 그림자뿐

흐르는 족족​

재가 되는
검은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