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한강 시

15. 한강 시//2월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17. 03:36

15.  2

 
나의 어머니쉰 두살윗입술이 잘 부르트시고반세기를 건너오시면서
도 웃을 때면 음조나 표정이 소녀같은아니 소년같은 분.
고즈넉한 저녁 딸과 마주앉아 마늘을 까신다어디선가 들려오는 풀피리
소리바람 찬 창으로 두리번거리던 딸은 소리의 주인공을 발견 못 한다
렇게 또 봄이 온다는 건가딸은 믿을 수가 없다구성진 가락은 다뉴브강의
푸른 물결윤심덕이 부른 노래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
 
 
좋은 날은 다 지나가버린 것 같아요 엄마
어머니 조용히 웃으신다
너도 지금 좋을 적 아니냐
이젠 저도 책임져야 될 나이가 된 걸요곧 졸업이에요
어머니 일어나 가스렌지 불을 줄이신다
느그 외할무니 하시던 말씀이 다 맞어야···비 피할라고 잠깐 굴에 들어갔
다 나온 것맨이로 그렇게 청춘이 가버린다고···
 
 
그렇게 청춘이 갔어요 어머니늪같은 청춘이 며칠 밤 목울음으로 다 새어
나가버렸어요
 
 
엄마 청춘도 그랬어요?
웃으며 딸이 짐짓 묻는다
글쎄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야
어머니 조용히 밥을 푸신다
하나도 기억이 안나···
 
 
어머니무엇이 아픈 어머니의 머리를 떠돌고 있을지혼령같은무슨 통
곡같은
 
 
나는 다시 태어나믄 사람으로 안 태어나고 싶어야꽃이나아나무나아,
새나난 그런 것으로 태어나고 싶어야
 
 
엄마새는 고달퍼요 벌레도 잡아먹어야 하고 허공을 종일 날아야 하잖아
요 산탄총을 피해야하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야 해요
뭣은 그렇게 안 힘들다냐.
어머니 다시 조용히 웃으신다
엄마이왕이면 나무가 좋아요꽃은 금세 시들잖아요 흙 좋고 깊은 땅에,
아무도 베어가지 못할 곳에요·· 기껏 나무로 태어났는데 그리로 길이라도
나면 어떡해요국도가 나지않을 한것진 들에 큰 나무로요···
어머니 웃으시네 소녀처럼아니 소년처럼 어머니우리 어머니 소리내어
웃으시네
정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믄베어지면 또 딴걸로 태어날 거 아
니냐
····뭐가 걱정이냐
 
 
나의 어머니쉰 두살그렇게 다치시고도벌집이 되시고도 상처로 진물
흐르지 않는 분눈물만고즈넉히 맑은 물만 흐르는 분반세기의 毒 묻은
사랑슬픔으로만 오로지 슬픔으로만 번지는 분
 
 
냇가에 나갔더니 어머니온통 얼음인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요
(* 한강 시인이 대학 4학년 때 과제로 쓴 시임)
 
-매일경제 매경칼럼 심윤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