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한강 시

20. 한강 시//저녁의 대화 / 한강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20. 13:53

20. 저녁의 대화 / 한강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켜질 거야.』
검고 긴 그림자가 내 목줄기에 새겨진다.

아니,
나는 삼켜지지 않아.

이 운명의 체스판을
오래 끌 거야,
해가 지고 밤이 검고
검어져 다시
푸르러 질 때까지

혀를 적실 거야
냄새 맡을 거야
겹겹이 밤의 소리를 듣고
겹겹이 밤의 색채를 읽고
당신 귓속에 노래할 거야

나직이, 더없이,
더없이 부드럽게.
그 노래에 취한 당신이
내 무릎에 깃들어
잠들 때까지.

죽음은 뒤돌아서 인사한다.
『너는 삼켜질 거야.』
검은 그림자는 검푸른 그림자
검푸른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