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한강 시

11.한강 시// 첫새벽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13. 16:18

11. 첫새벽/ 한강

 
첫새벽에 바친다 내
정갈한 절망을,
방금 입술 연 읊조림을

감은 머리칼
정수리까지 얼음 번지는
영하의 바람, 바람에 바친다 내
맑게 씻은 귀와 코와 혀를

어둠들 술렁이며 포도(鋪道)를 덮친다
한 번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한 텃새들
여태 제 가슴털에 부리를 묻었을 때

밟는다, 가파른 골목
바람 안고 걸으면

일제히 외등이 꺼지는 시간
살얼음이 가장 단단한 시간
박명(薄明) 비껴 내리는 곳마다
빛나려 애쓰는 조각, 조각들

아아 첫새벽,
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
늘 거기 눈뜬 슬픔,
슬픔에 바친다 내
생생한 혈관을, 고동소리를

'내가 읽은 좋은 시 > 한강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한강 시//효에게  (0) 2024.10.17
12. 한강 시//조용한 날들  (0) 2024.10.17
9. 한강 시//서시  (1) 2024.10.13
6. 한강 시//어느 늦은 저녁 나는  (1) 2024.10.13
5. 한강 시//파란 돌  (1)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