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한강 시

2. 한강 시// 얼음꽃

월정月靜 강대실 2024. 10. 11. 21:51

2. 얼음꽃// 시 한강
 
 
오래 내리어 뻗어간
그들 뿌리의 몫이리라
하여 뿌리 여윈 나는 단
한 시절의 묏등도
오르지 못하였고 허깨비,
허깨비로 뒹굴다 지친 고갯마루에
무분별한 출분의 꿈만 움터놓았다
모든 미어지는 가슴들이
그들 몫의 미어지는 가슴들이
그들 몫의 미어지는 꽃이라면 
꽃이라면 아아
세상의 끝까지 가리라 했던
죽어, 죽어서라도
보리라 했던 저 숲 너머의 하늘
무엇이 꿈이냐 무엇이
시간이냐 푸르름이냐 빛이냐 나무여,
나무여
잠깐의 참회를 배우기 위해
그토록 많은 세월을 죄지었던가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목마름을 건너
저 버려진 잡목숲 사이로
몸 번져야 할 일
몸 번져 오래 울어야 할 일
좋다 계절이여 오라
눈발이여
퍼부어라, 이 불타는 수액을
뒤덮어다오, 그 위에
찬란히
춤추어도 좋으니.
(1993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