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엎지르고 깨 줍기 - 강대실 -
손끝이 게을러지기 시작하더니
마음먹은 일마다 허방을 치고
믿는 도끼에도 발등 찍힌다
내 사정을 눈치 챈 이웃들
살다보면 빨리 잊어야 할 일도 있다고
후딱 마음 정리하라 이른다
그래야, 앞이 보인다고
기름 엎지르고 깨 줍는다고
산밭에 참깨 몇 두럭 심는다
두벌 씨 산비둘기 배만 불려 주고
태반이 빈자리다
애잔한 것들, 잘 가꾸어 볼 생각에
해 동무 기다려 허둥지둥 찾으니
지나가는 골바람,
‘에끼, 가리새머리 없는 사람!’
이명처럼 울리더니
밀짚모자 낚아채 물고랑에 꿍겨박고는
솔밭 쪽으로 줄달음친다
시인: 월정(月靜) 강대실
월간 『한국시』 등단. 시집 『숲 속을 거닐다』외 2편. 광주문협회원. 무등문학회 회원.
詩評 - 시인 강대선 -
시인은 시체미를 떼고 매만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 매도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겨우 알 정도만 보여준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매의 실체를 더 잘 보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시인은 “손끝이 게을러지기 시작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서 그 이유를 은근슬쩍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살다보면 빨리 잊어야 할 일도 있다고/ 후딱 마음 정리하고 잊어야 할 일도 있다고”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만 해 두었다. 빨리 잊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독자로 하여금 더 적극적으로 시에 참여하게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기름 엎지르는 일처럼 실수로 후회하는 일이 어디 한 둘이던가. 기름 엎지르듯 후회로 남는 일들이 우리들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가. 여기에서 독자들은 시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또한 시인은 기름 엎지르고 깨 줍는 심정으로 “산밭에 참개 몇 두럭 심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그 두벌씨를 산비둘기가 죄다 먹고 남은 것은 태반이 빈자리다. 실상 이 빈자리는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남은 것들이라도 잘 가꾸어 볼 생각에 시인의 마음이 바쁘다.
하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것을 어쩌랴 “에끼, 가리새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골바람이 말하지만 실은 시인이 자신에게 말하는 말이다. ‘가리새’란 순우리말로 일의 갈피와 조리(條理)를 말하는 것이니 ‘가리새머리 없다’는 말은 깊은 생각 없이 덤볐던 자신의 판단과 행동을 비웃는 말일 것이다.
“밀집모자 낚아채 물고랑에 꿍겨박고는/ 솔밭쪽으로 줄달음치”는 골바람을 통해 우리네 삶을 해학적이면서도 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마지막에 절로 튀어나올 것 같은 “오메, 어찌까이”는 망연히 서 있을 시인에게 독자가 보내는 공감의 울림이며 찬사일 것이다.
[온 국민이 기자인 한국시민기자협회 윤일선 ]
윤일선 ilsunhw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