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시

시와 낭송/ 황옥의 사랑가, 시 정일근, 장현주

월정月靜 강대실 2024. 9. 7. 04:02

 


황옥의 사랑가

정일근

운명의 맥을 짚어 누런 바다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바다 건너 동쪽나라에 하늘에서 알이 되어 내려왔다는

수로首露, 그대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 먼 나라 나사렛에서 태어난 야소耶蘇라는 남자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이 하늘에 있고

죽어서 다시 사는 일이 하늘에 있다면

제가 그대에게로 가는 것도 하늘이 정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랑이 하늘의 신탁神託이라면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머니가 주신 붉은 속곳을 준비하며 저는 자꾸만 붉어집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두려움은 잊기로 했습니다

이만오천리二萬五千里 뱃길 내내 초야初夜의 뜨거움을 꿈꿀 것입니다

첫날밤 그대가 열여섯 내 나이를 묻는다면

붉은 저 속곳보다, 바다를 건너며 붉어진 내 몸보다

더 붉은 처녀의 피로 답할 것입니다

내 배 안에서 하늘의 흰 피와 땅의 붉은 피가 섞여

새로운 나라 새로운 옥조玉朝의 피를 만들고

그 피 세세연년世世年年 붉게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건강한 남자로 곧추서서 저를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지금 아유타국에서 허許씨 성을 가진 황옥黃玉이

물고기 두 마리 문양을 증표로 수로首露, 그대에게 갑니다

정일근 시인

1958, 경남 진해에서 출생.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 울산 및 경상남도의 지역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시힘’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