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백석 시-여승, 여우난 곬족, 고향,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월정月靜 강대실 2012. 1. 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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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가지취 : 취나물의 일종.

* 금덤판 : ① 금광.  금점판 ② 조선 때, 호조나 공조에 딸려 금광(金鑛)의 세금을 거두던 관청

* 섶벌 : 재래종 일벌.

*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 성격 : 애상적, 감각적, 서사적 구성*(단순한 시간적 흐름이 아닌 역순행적 구성), 사실주의적.

▶ 서술 시점상의 특징 : 객관적 서술(소설의 1인칭 관찰자 시점)

▶ 어조 : 회상적

▶ 특징 : ① 감각적 어휘의 구사

② 시상의 압축, 절제

▶ 구성 : 역순행적(회고적) 구성에 의한 전개

① 여승의 현재 모습(제1연)

② 여승의 과거 삶의 궤적(제2∼4연)

-제2연 : 시적 화자의 여인과의 만남

-제3연 :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외로운 처지의 여인

-제4연 : 한 많은 여인이 여승이 됨

▶ 제재 : 한 여자의 일생(가족공동체의 해체)

▶ 주제 : 한 여인(여승)의 비극적 삶.(가족 공동체의 상실의 비애)


[여우난 곬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後妻)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 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 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 엄매, 사춘 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 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뽁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오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 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 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 육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 여우난 곬족 : 여우난 골 부근에 사는 일가 친척들.
* 진할머니 진할아버지 : 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 포족족하니 : 빛깔이 고르지 않고 파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 매감탕 : 엿을 고거나 메주를 쑨 솥을 씻은 물로 진한 갈색.
* 토방돌 : 집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 오리치 : 평북 지방에서 오리 사냥에 쓰이는 특별한 사냥 용구.
* 반디젓 : 밴댕이젓.
* 저녁술 :저녁 숟가락 또는 저녁밥.
* 숨굴막질 : 숨바꼭질.
* 아르간 : 아랫간. 아랫방.
* 조아질하고 - 제비손이구손이하고 : 아이들의 놀이 이름들.
* 화디 : 등장을 얹는 기구. 나무나 놋쇠로 만듦.
* 홍게닭 : 새벽닭.
* 텅납새 : 처마의 안쪽 지붕.
* 무이징게 국 : 민물새우에 무를 넣고 끓인 국.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회고적
▶제재 : 명절날의 집안 풍경
▶주제 : 공동체적 삶의 풍요로움과 순수성
▶특징 : 토속적 소재와 평북 사투리를 적절히 사용하고 반복과 나열 기법을 통해 명절날 고향의 정취를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고향]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북관(北關) : 함경남도 지방의 별칭

*여래(如來) : 석가모니 여래의 약칭, 부처를 높여 부르는 말

*관공(關公) :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

*막역지간(莫逆之間) : 벗으로서 아주 허물없는 사이
 

▶ 성격 : 서술적, 서사적, 회고적

▶ 구성 :

1-2행 : 외로운 타향살이를 하는 화자의 병으로 인한 향수

3-4행 : '의원'의 풍모와 인생

5-15행 : '의원'이 하자인 '나'를 진맥하는 상황

16-17행 :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 제재 : 북관에서 만난 육친

▶ 주제 : 육친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삿 : 삿자리의 준말.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질옹자배기
*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북더기불
* 쌔김질 : 새김질
*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에 속한 좀나무. 키는 2 m쯤 되고 가지에 가시가 나며, 잎은 넓은 바소꼴이며 톱니가 있다. 열매는 '갈매' 또는 '서리자'라 하여 약재나 물감으로 쓴다.

 

▶ 감상의 초점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국 등지를 떠돌아 다니며 쓴 백석의 시로서 당대 지식인으로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쓴 작품이다.
고향을 떠난 화자가 유랑, 방황의 삶의 살다가 어느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무기력감에 젖어 세월을 보내다가 이윽고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다.
▶성격 : 서사적, 독백적, 자기반성적

▶제재 : 자신의 근황(고향의 상실)

▶시상의 전개 : 어조의 전환 ( 좌절 (그러나) 의지 )
▶주제 : 고통스러운 삶을 이기려는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