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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언이설

감언이설甘言利說 / 월정 강대실 저잣거리 저편에 수런수런한 군중들 귀를 뚫는 산뜻한 음절, 음절 황새걸음이 성큼성큼 좇아가 꼿발로 항아리만 한 귀를 한다 이게 웬 떡이냐, 달콤하다! 오감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간밤의 꿈 떠올리다 일순 눈이 멀어 내속 주머니에 빵빵히 욱여넣는다 몽그작몽그작하며 눈치 살피다 몰염치 놓고 살그미 빠져나온다 욜랑욜랑 큰길로 걸어 신호 기다리다 들먹들먹 들뜬 마음 살짝 하나 입에 넣고 곰곰이 씹는다 앗, 사탕발림이다! 입안이 소태같이 쓰거워 지더니 신열이 오르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슴이 뜨끔하다.

오늘의 시 2024.02.23

그림자

그림자/ 월정 강대실  우리 부모님 그림자로 남은외씨 같은 흔적들어느 결에 하나 둘세월 강에 씻기어 가고그리움 여울여울 타오르는데 피붙이 하나링거 줄에 매달아 놓고 돌아와벽을 등지고 앉은 형제들서로들 눈동자 속에 얼굴을 새기다소주 한 잔 돌린다 맏형 근엄한 표정에아버지 계시다누이동생 파리한 얼굴 속에어머니 여실히 살아 계신다.                               2007. 02. 03.

오늘의 시 2024.02.14

성묘

성묘 / 월정 강 대 실    설날 아침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큰집 작은집 조카들 데리고 장형 막내랑 삼형제 나란히    부모님 산소에 성묘 드린다.두 아들은 지난밤 꿈길에 다녀갔다, 올 한 해도 우리 새끼들 모두 다 들은 말 들은 데 버리고 본 말 본 데 버리도록 해라, 가슴은 따뜻해야 이뿐 꽃 안는다.아버지 금싸라기 같은 덕담에 벌안 가득히 영롱한 햇살 넘실거리고돌아서는 발길 가벼운데 어머니는 서낭당 고개 다 넘도록 바라보고 서서 손사래 치신다.(2-44.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2.10

골목길 노인장

골목길 노인장/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 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 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 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 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 더는 못 보게 징벌 받았을까? 그 언젠가는 번쩍 뜰 수 있을까? 처음부터 궁금하고 가여움 가득했던 진흙탕 세상 담벼락 같이 살려다 두 눈 벌거니 뜨고도 허방다리를 짚어 그만, 큰물에 방천 터지듯 무너지고 말았다 틀어박혀 이렁저렁 오만 생각을 다 하다 닳고 터진 맨발 허겁지겁 노인장 찾는다 사람들 맹자 만나 되게 재수 없다고 침 뱉지 않아 감사할 뿐이라며 마음만 잘 먹으면 북두성이 굽어보시니 어여 가 밝은 두 눈 크게 뜨고 이 좋은 세상 온전히 품어라 이르신다. (3-90.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2.07

고향 당산할아버지

고향 당산할아버지/ 월정 강대실 발길이 멀어졌다 했는데 웬걸, 듬직하고 초롱한 모습들로 찾다니 네 선친 자식들 눈 띄워 줘야 한다고 고사리손을 잡고 눈물로 떠나셨다 당산할아버지는 처음 생겨나서부터 발을 내린 데가 천국이다 쭉 눌러 산다며 아버지 이름자뿐만이 아니라 우리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반기셨다 세상은 갓 지난 어제가 옛날이 되고 바야흐로 별세계 여행의 꿈에 부풀지만 제자리에서 자기 일 꽃피운 자라야 한다며 여기저기에 서린 선대의 향기 음미하고 발아래 도랑물에 삶에 얼룩진 일월을 씻고 애를 태우는 난마의 실마리까지를 찾았으니 올라가서 잘 아퀴를 지어라 하시고는 떠난 이들을 위해 고향은 무시로 기도한단다 어떻든지 머리를 이쪽으로 두르고 마음은 앞산처럼 푸르러라며 등을 토닥인다.

오늘의 시 2024.02.01

부끄러운 날

부끄러운 날/ 월정 강대실 틈이 보인다 싶으면 네 활개로 덤벙대는 몰골 눈에 든 가시처럼 껄끄러워도 마음 다잡으며 재갈 물고 버티다가도 마침내는 마구 뚫린 창구멍 되어 밑도 끝도 없이 띄워 보내는 오만 소리에 도가니 쇳물 끓듯 끓어오르는 화 맞대고 사자후를 토하고 나면 묵은 체증이 뚫린 듯 속이 후련하다 말고 한량없이 낯이 부끄러워 온종일 얼굴을 제대로 못 들고 회한의 속앓이를 하는 나에게 '에-끼 이 사람, 오십보백보여!'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홍당무 같이 달아오르는 낯바닥.

오늘의 시 2024.01.26

눈 내리는 밤이다

눈 내리는 밤이다 / 월정 강대실 나이가 드니 더 친구가 보고 싶다 일찍이, 타작마당 콩 튀어 나가듯 먼 바다로 헤엄쳐 가더니 전화 한 번 없는 길에서라도 만나 보릿국에 대폿잔 기울이며 죽마 타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따금씩 놀러 온 하리 맹순이 누님 형들이랑 둘러앉아 벌인 손목맞기 민화투 어쩌다, 뒷손이 잘 맞아 장원하게 되면 움켜쥐운 팔 후려치는 내 길고 매운 손가락 그 오동포동한 손목 만지고 싶은 큰댁 사랑방에 마실가셨던 아버지 밤이 이슥하면 발짐작이 어둠 헤쳐 와 에헴!, 큰기침 소리로 사립 열고 오신 가마솥 쇠죽 푸는 고무래 소리, 이라! 자라! 외양간 깃 주는 소리 듣고 싶은 딸 셋에 청상이 된 외할머니 큰딸 가마 뒤쫓아 와 핏덩이 열 받아 내고 우리 형제들 따라다니며 공부 뒷바라지하신 재판정..

오늘의 시 2024.01.25

노인장(관련 시 3편)

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정오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소복단장에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깊이 젖었을까‘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눈자위보다 더 깊은 기다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뛰노는 학동들에게서.    골목길 노인장/ 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더는 ..

오늘의 시 2024.01.17

어느 여름날1.2.3.4.5

어느 여름날1/ 월정 강대실 벗님네들 얼굴 한 번 볼 겸 해서 너릿재 사뿐 새털같이 넘었지요 술 익는 냄새 졸졸 쫓아가다 농주 큰통 하나 실었지요, 도가에서 주춧돌 놓일 날만 기다리던 계절 엉클어져 잔치 마당 한창이어 느릅나무 그늘 멍석 깔고 둘러앉아 막 한 잔 타는 목 축이려는 참에 솔밭 건너 앞산이 아는 시늉하여 어서 오라 손나발해 옆자리 앉히고 건하게 들었지요 너나들이해가며 산들바람도 대취하여 따다바리고 어느덧, 설움에 겨운 해 서녘에 벌겋고 텃새들 시나브로 제 둥지라 모여들어 흥얼흥얼 어둑발 붙들고 넘었지요 어느 여름날 그 하루 햇살 좋은 날. 어느 여름날2 / 월정 강대실 갈맷빛 동산에 계절이 무르익고 청산에 열린 계곡 맑은 물 지줄대니 한 마리 꽃나비 되어 시심에 젖는다. 갈매 치마 저고리 덧..

오늘의 시 2024.01.11

귀천-제일이 형

귀천歸泉 -제일이 형 월정 강대실 훤칠하고 번듯한 이목구비 방정한 걸음걸이에 호탕한 제일이 형 끝내는 넘고야 마는 한 고개. 눈 귀를 놀라게, 입을 즐겁게 마음까지를 배 부르게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더라 하며 세상이 좁아 산을 날고 물 위를 뛰고 세간에 요술 방맹이 고향 뒷등성이 큰 바위 얼굴 이더니 희미한 의식, 입 속으로 큰아들 이름 되뇜은 단말마의 마지막 고통이었나 끝내, 눈을 못 떠 얼굴 보지 못하고 꿈을 키우던 노령의 준령 밀잿길 아련히 바라보이는 영락공원 황토 땅 영생 낙원 찾아가누나. (3-67.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1.09

말바우 시장2

말바우 시장2 / 월정 강대실 몸조심할 양으로 순댓국 집 담 쌓다가 간만에 북적이는 틈새에 발붙인다. 필리핀 며느리 얻어 열 손자 본 리어카상 돈 번다고 맨날 늦더니 회사 사장과 눈 맞아 살림은 부엌 드난꾼 같은 아내 버리고 부모님 산소가에 움막 친 북악산 노 박사 망령 든 노모 백수에 쌀 백 가마 나눈 방앗간 못 먹고 헐벗고 자린고비로 모은 쇠푼에 정부 융자금 보태 얼기설기 지은 집 화마에 폭삭하여 죽을상 된 꺽다리 양반 단돈 이 천 원에 고기국에 밥 파는 할매집 노점상 곗돈이랑 사방 일숫돈 싹둑 베먹고 밤보따리 싼 푸줏간 도씨 소문이 쑥덕인다. 웃음과 눈물이 범벅 되어 질척인 장바닥 파장 막걸리에 취해 절뚝인다. (2-35. 먼 산자락 바람꽃) 말바우 시장2

오늘의 시 2024.01.07

대빗자루 보답

대빗자루 보답/ 월정 강대실 바람 가는 데 구름 실려가듯 이삿짐 따라온 대빗자루 꾸물대는 가을 내쫓다 몽당이 되었다 동리 뒤통수까지 우줄우줄 기어 내려온 산코숭이 빼곡히 들어서서 술렁대는 솜대 널린 댓가지 주워다 빗자루 맨다, 일찍이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첫솜씨 큰댁 들고가니, 형님 왈 재주가 괭이 쥐 잡은 것 같다 하시고 막냇동생, 입이 귀밑까지 닿고 자그마한 손 빗자루는 처제가 점쟁이 손금 보듯 만지작거리더니 손끝이 땡고추라며 가져간단다 산더미 같은 은혜, 대빗자루 보답한다. (4-105.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6

산밭1.2.3

산밭1 / 월정 강 대 실 앞장선 기억 따라, 산발치 칙칙한 오솔길 타고 드니 찔레나무 두렁을 파고들어 여기저기에다 진을 치고 개망초 우북이 모여들어 한바탕 새하얀 춤판인데 좋은 미영밭 다 묵혔다고 솜구름 눈흘기며 영을 넘는다. 산밭2 /월정 강 대 실 몇 해 전 가을 끄트머리 포르르!, 한 양반이 날아들더니 호들갑 떨며 토주 행세 부리더구먼 구린내가 몰큰몰큰 풍겼으나 어련히 알아 하겠지 싶어 못 본 척 납작 엎드려 있었지 그런데, 팔도 유랑 길에라도 올랐는지 그 후로는 도통 그림자도 안 비치니... 꼭 삿갓 같은 사람 이라며 찔레나무 사방에서 지경을 넘어들고 산딸기나무 가운데다 진 치고 칡넝쿨 온 밭을 횡행활보하니…… 구시렁대다 흠칫 말허리 꺾는, 산밭 씁쓰레한 낯꼴 눈앞에 아른거리는지 시르르 밭귀퉁이..

오늘의 시 2024.01.04

도둑괭이

도둑괭이 /월정 강대실 수묵 같은 어스름 유년의 기억 속 도둑괭이 한 마리, 빠끔히 샛문 밀치고 기어드는 방구들 들썩이는 오롱조롱한 새끼들 호롱불 옆 헌옷 깁던 어머니 도둑괭이 왔다며 꼬이면 질겁하여 이불 속 파고들었던 대꾼한 눈 수심의 어둠 속으로 오그라드는 울음소리 등에 달라붙은 뱃가죽 허기진 모습에 시퍼런 냄새의 촉수 앞세운 오늘도 여기저기 뒤지고 헤쳐 늘어 치도곤 먹이려는 심보가 채 비워내지 못한 마음속 미움의 싹으로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데 미움을 품는 것은 마음밭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니 불현듯, 작두날을 본 듯 서늘해진 가슴 색안경 접는다. (4-56.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

친구를 보내며

친구를 보내며/ 월정 강대실 이제 그만 뜬구름 쫓겠노라고 뒷산 곰바위가 시새워할 의지로 혈혈단신 자작골 노송 밑에 막 치더니 너덜 섶 불꽃 틔는 곡괭이질 검은 짐승 떼를 이루어 풀 뜯고 건불 넉넉히 지핀 골방의 다짐들 앞산보다 더 높고 청청한데 근자에 안색이 좀 그렇다 했건만 깊은 데다 칼 댔단 발 없는 말에 한 줌 만한 마음 무릎 맞댈 때는 이달 모임에는 꼬옥 얼굴 보자 해 놓고 까마귀 고기 드셨던가 깜빡 우리 속 눈과 귀 부리기재 서성이는데 生 死는 도랑 건너는 거나 진배없다는 듯 기어이, 이승에 내려놓은 탄 숨 소금 담긴 가슴 평안한 영면을 비네. (4-101.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

받침목

받침목/ 월정 강대실 볕내에 부끄러이 머리 내밀더니 철따라 온 들 색칠하는 풀잎 뜻도 의미도 없이 강바닥에 나동그라져 무량겁 씻기고 닳아 불심이 된 돌멩이 작은 몸짓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떠받치나니 평생 묵묵히 흙 속에 묻히어 공덕으로 길러 낸 십 남매 세파 그득한 먼 바다로 내보내고 곱디곱게 은빛 물드신 오평 할머니같이. (4-76.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