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의 사랑가
정일근
운명의 맥을 짚어 누런 바다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바다 건너 동쪽나라에 하늘에서 알이 되어 내려왔다는
수로首露, 그대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 먼 나라 나사렛에서 태어난 야소耶蘇라는 남자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일이 하늘에 있고
죽어서 다시 사는 일이 하늘에 있다면
제가 그대에게로 가는 것도 하늘이 정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랑이 하늘의 신탁神託이라면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어머니가 주신 붉은 속곳을 준비하며 저는 자꾸만 붉어집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너는 두려움은 잊기로 했습니다
이만오천리二萬五千里 뱃길 내내 초야初夜의 뜨거움을 꿈꿀 것입니다
첫날밤 그대가 열여섯 내 나이를 묻는다면
붉은 저 속곳보다, 바다를 건너며 붉어진 내 몸보다
더 붉은 처녀의 피로 답할 것입니다
내 배 안에서 하늘의 흰 피와 땅의 붉은 피가 섞여
새로운 나라 새로운 옥조玉朝의 피를 만들고
그 피 세세연년世世年年 붉게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건강한 남자로 곧추서서 저를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지금 아유타국에서 허許씨 성을 가진 황옥黃玉이
물고기 두 마리 문양을 증표로 수로首露, 그대에게 갑니다
정일근 시인
1958, 경남 진해에서 출생.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 울산 및 경상남도의 지역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시힘’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1일1시필사18>'황옥의 사랑가', 정일근|작성자 품격스피치 권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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