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시

시와 낭송/곡창의 신화,신석정, 낭송 손효성

월정月靜 강대실 2024. 9. 7. 01:58

곡창穀倉의 신화神話/ 신석정

 

 

바다도곤 넓은 김만경金萬頃 들을

눈이 모자라 못 보겠다 노래하신

당신과 우리들의 이 기름진 땅을

 

아득한 옛날에

양반과 벼슬아치와

조병갑이와 아전 떼들의 북새 속에서

 

그 뒤엔

을사조약乙巳條約에 따라붙은 동척회사東拓會社

가와노상과 노구찌상과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

왜놈의 통변들의 등쌀에 묻혀

 

격양가도 잊어버린 벙어리가 되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과

손주들이 대대로 이어 살아왔더란다.

 

서러운 옛 이야기 지줄대며

동진강東津江 굽이굽이 흐르는 들을

그 무서운 악몽이 떠난 지 스무 해가

되었다 하여

우리 할아버지들의 피맺힌

옛 이야기를 잊지 말아라.

 

태평양太平洋을 건너왔을

지리산智異山을 넘어왔을

모악산母岳山을 지나왔을

다냥한 햇볕이 흘러간다 하여

 

우리 할아버지들의 땀이 배어든

이 몽근 흙을 잊지 말아라.

 

그 언젠가는 이 기름진 땅에

우리 눈물겨운 소작인小作人의 후예로 하여

드높은 격양가로 메마른 산하를 울리고

 

미국보리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그 서럽고 안쓰러운 이야기는

 

동진강 푸른 물줄기에 실려

아득한 아득한 신화로 남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