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시

시와 낭송//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시 이승하

월정月靜 강대실 2024. 9. 7. 01:34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이승하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도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하며 살갑게 굴면서도
정작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어머니에게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간섭이 심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컸다는 착각과 함께
따뜻하게 대해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마치 옆집 이웃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게 굴다가도,
내 가족, 내 연인에게는 그렇게 대하기가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배우자나 가족에게는 남들에게 바라지 않는
특별한 기대나 개인적 욕망이 있어서이기 때문 일겁니다.

혹은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사회적 역할을 실수 없이 해내기 위해
자신만의 사회적 가면을 써서, 자신을 비롯한 사회적 타인들 모두가
서로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에 반해 배우자나 가족은 좋은 모습뿐만 아니라 나의 치부, 약점, 단점 등을
하나부터 열까지 꿰차고 있기에, 가장 날 것의 모습을 서로가 알고 있기에,
서로에게 너그럽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밤은 그런 복잡한 이해관계 잠시 내려두시고 온전히 따뜻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
이 두 가지만 가슴 가득 품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쑥스러워서, 어색해서 그 진심의 말까지 전달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그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스스로의 가슴에 품어보는 일 아니겠어요?


편안한 밤 되세요!
(노키드 카페에서 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