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 김현승

월정月靜 강대실 2013. 9. 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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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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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김현승

 

  아침 해의 축복(祝福)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유리창(琉璃窓)들이

  순간(瞬間)의 영광(榮光)답게 최후(最後)의 찬란(燦爛)답게 빛이 어리었음은

  저기 저 찬 하늘과 추운 지평선(地平線) 위에 붉은 해가 피를 뿌리고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그들의 황홀(恍惚)한 심사가 멀리 바라보이는 광활(廣闊)한 하늘과 대지(大地)와 더불어 황혼(黃昏)의 묵상(黙想)을 모으는 곳에서

  해는 날마다 그의 마지막 정열(情熱)만을 세상에 붓는다 합니다.

  여보세요. 저렇게 붉은 정열(情熱)만은 아마 식을 날이 없겠지요.

  아니 우랄산 골짜기에 쏟아뜨린 젊은 사내들의 피를 모으면 저만 할까?

 

 

  그렇지요. 동방(東方)으로 귀양간 젊은이들의 정열(情熱)의 회합(會合)이 있는 날

  아! 저 하늘을 바라보세요.

  황금창(黃金窓)을 단 검은 기차(汽車)가

  어둡고 두려운 밤을 피하여 여명(黎明)의 나라로 화살같이 달아납니다.

  그늘진 산을 넘어와 광야(曠野)의 시인 ― 검은 까마귀가 성읍(城邑)을 지나간 후

  어두움이 대지에 스며들기 전에

  열차는 안전지대의 휘황한 메트로폴리스를 향하여

  흑암(黑暗)이 절박한 북부의 설원을 탈출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보! 이날 저녁에도 또한 밤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적막한 몇 가지 일을 남기고 해는 졌읍니다그려!

  참새는 소박(素朴)한 깃을 찾고,

  산 속의 토끼는 털을 뽑아 둥지에 찬바람을 막고 있겠지요.

  어찌 회색(灰色)의 포플러인들 오월의 무성(茂盛)을 회상(回想)하지 않겠습니까?

  불려 가는 바람과 나려오는 서리에 한평생 늙어 버린 전신주(電信柱)가

  더욱 가늘고 뾰죽해질 때입니다.

  저녁 배달부(配達夫)가 돌아다닐 때입니다.

  여보세요.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허다한 사람들에게

  행복(幸福)한 시간(時間)을 프레센트하는 우편물(郵便物)입니까?

 

 

  해를 쫓아 버린 검은 광풍(狂風)이 눈보라를 날리며 개선(改選)행진(行進)을 하고 있습니다그려!

  불빛 어린 창(窓)마다 구슬피 흘러나오는 비련(悲戀)의 송가(頌歌)를 듣습니까?

  쓸쓸한 저녁이 이를 때 이 땅의 거주민(居住民)이 부르는 유전(遺傳)의 노래입니다.

  지금은 먼 이야기, 여기는 동방(東方)

  그러나 우렁차고 빛나던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던 날

  오직 한마디의 비가(悲歌)를 이 땅에 남기고 선인(先人)의 발자취가

  어두움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하여 눈물과 한숨, 또한 내어버린 웃음 위에

  표랑(漂浪)의 역사(歷史)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쓰여져 왔다 합니다.

 

 

  그러면 여보,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당신들!

  쓸쓸한 저녁이 올 때 창밖에 안타까운 집시의 노래를 방송(放送)하기엔

  ― 당신들의 정열(情熱)은 너무도 크지 않습니까?

 표랑(漂浪)의 역사(歷史)를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 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悲憤하지 않습니까?

너무도 오랫동안 차고 어두운 이 땅,

너무도 오랫동안 차고 어두운 이 땅,

울분의 덩어리가 수천 수백 강렬(强烈)히 불타고 있었읍니다그려!

마침내 비련의 감정을 발끝까지 찍어 버리고

金붕어 같은 삶의 기나긴 페이지 위에 검은 먹칠을 하고

하고서, 강(强)하고 튼튼한 역사를 또다시 쌓아 올리고

캄캄하던 동방산(東方山) 마루에 빛나는 해를 불쑥 올리려고.

밤의 험로를 천 리나 만 리를 달려 나갈 젊은 당신들 ―

정서를 가진 이, 일만 사람이 쓸쓸하다는 겨울 저녁이 올 때

구슬픈 저녁을 더더 장식(裝飾)하는 가냘픈 선율(旋律) 끝에 매어 달린 곡조와

당신의 작은 깃을 찾는 가엾은 마음일랑 작은 산새에게 내어 주고

선색(線色) 등잔 아래 붉은 회화(會話)를 그렇게 할 이웃에게 맡기고

여보! 당신들은 맹렬한 바람이 추운 거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름찬 당신들의 일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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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100년이란다...

 

등단 추천작이라는데 여전히 어둡다.. 높이 있어 외롭고 쓸쓸한 지붕 위의 십자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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