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

견고(堅固)한 고독 /김현승

월정月靜 강대실 2013. 9. 3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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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堅固)한 고독

- 김현승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神)들의 거대(巨大)한 정의(正義)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堅固)한 ㉣칼날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懷柔)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木管樂器)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滋養)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현대문학} 130호, 1965.10)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제목부터가 비유로 되어 있고, 전편이 의인화되어 있다. 이 시에서 고독의 관념을 매개하고 있는 어휘들의 각 연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살펴본다. 제목의 '견고한 고독'은 '나뭇가지'와 거기에 달려 있는 '굳은 열매'에 비유되어 있다. '흰 얼굴, 손발, 창끝, 칼날' 등은 이미지들은 그 고독(열매)의 관념을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지탱하고 있는 나뭇가지는 곧 시적 화자 자신이다.
▶ 성격 : 상징적, 주지적, 비유적
▶ 표현 : 전체적으로 비유화 또는 의인화 되어 있다.
▶ 구성 : ① 고독의 형상과 화자의 자세(제1,2연)
             ② 화자의 행동 양식과 시련의 암시(제3-5연)
             ③ 고독 견지와 삶의 윤택(제6,7연)
▶ 제재 : 고독
▶ 주제 : 절대 고독의 추구

연구 문제
1 . (1)이 시의 수사적 특징을 한 단어로 쓰고, (2)최종적으로 고독을 무엇에 비유하였는지 찾아 쓰라.
<모범답> (1) 의인화 (2) 열매
2 . 제1연이 고독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제2연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모범답> 화자의 굳건한 정신 자세
3 . 화자는 결국 자신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는가?
<모범답> 고독이라는 열매를 지탱하는 나뭇가지
4 . 의 표현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 연속된 두 시행을 찾아 쓰라.
<모범답>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 더 휘지 않는
5 . ㉠∼㉤ 중, 상징하는 의미가 다른 것은?
<모범답> ⑤
① ㉠ ② ㉡ ③ ㉢ ④ ㉣ ⑤ ㉤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7연이 각각 매개어가 들어 있는 의인화된 시로서 '얼굴', '손발', '창끝', '떡', '칼날',과 '피와 살', '열매', '생명의 맛' 등이 원관념인 고독의 매개어 구실을 하고 있다. 화자의 고독이 하나의 열매에 비유될 수 있다면, 그 자신은 그 열매에 자양(滋養)을 바치느라고 마를 대로 마른 나뭇가지일 것이다.
제1연의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 단단하게 마른 / 흰 얼굴'이 고독의 형상이라면,
제2연의 '그늘에 빚지지 않고 /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 단 하나의 손발'은 그 고독의 열매를 지탱하려는 나뭇가지, 즉 화자의 정신 자세로 이해된다. 고독의 열매에 자양분을 주고 그것을 가꾸기 위해서는 '그늘'과 '햇볕'의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고 자기의 정신 영역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화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제6연에서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 더 휘지 않는' 굳굳한 정신 자세로 나타난다.
제3,4연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화자의 행동 양식을 보여 준다. 신의 거대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굶주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신의 정의 앞에 '창끝'(단 하나의 손발=나뭇가지=곧은 정신 자세)으로 거슬리는 한편 굶주린 사람들에겐 '마른 떡'(聖體)을 제 살과 같이 떼어 준다. 이것은 신의 전면적 부정이 아니라, 있어야 할 정의의 신에 대한 강력한 긍정이다.
제5,6,7연은 신과 인간의 합일의 경지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련을 암시하며 눈물과 견고한 칼날과 피와 살―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 수련이 '쌉쓸한 자양'이 되어 스며 있는 고독의 '열매'는 그가 혼신의 노력 끝에 이룩한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