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12

감언이설

감언이설甘言利說 / 월정 강대실 저잣거리 저편에 수런수런한 군중들 귀를 뚫는 산뜻한 음절, 음절 황새걸음이 성큼성큼 좇아가 꼿발로 항아리만 한 귀를 한다 이게 웬 떡이냐, 달콤하다! 오감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간밤의 꿈 떠올리다 일순 눈이 멀어 내속 주머니에 빵빵히 욱여넣는다 몽그작몽그작하며 눈치 살피다 몰염치 놓고 살그미 빠져나온다 욜랑욜랑 큰길로 걸어 신호 기다리다 들먹들먹 들뜬 마음 살짝 하나 입에 넣고 곰곰이 씹는다 앗, 사탕발림이다! 입안이 소태같이 쓰거워 지더니 신열이 오르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가슴이 뜨끔하다.

오늘의 시 2024.02.23

그림자

그림자/ 월정 강대실  우리 부모님 그림자로 남은외씨 같은 흔적들어느 결에 하나 둘세월 강에 씻기어 가고그리움 여울여울 타오르는데 피붙이 하나링거 줄에 매달아 놓고 돌아와벽을 등지고 앉은 형제들서로들 눈동자 속에 얼굴을 새기다소주 한 잔 돌린다 맏형 근엄한 표정에아버지 계시다누이동생 파리한 얼굴 속에어머니 여실히 살아 계신다.                               2007. 02. 03.

오늘의 시 2024.02.14

성묘

성묘 / 월정 강 대 실    설날 아침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큰집 작은집 조카들 데리고 장형 막내랑 삼형제 나란히    부모님 산소에 성묘 드린다.두 아들은 지난밤 꿈길에 다녀갔다, 올 한 해도 우리 새끼들 모두 다 들은 말 들은 데 버리고 본 말 본 데 버리도록 해라, 가슴은 따뜻해야 이뿐 꽃 안는다.아버지 금싸라기 같은 덕담에 벌안 가득히 영롱한 햇살 넘실거리고돌아서는 발길 가벼운데 어머니는 서낭당 고개 다 넘도록 바라보고 서서 손사래 치신다.(2-44.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2.10

골목길 노인장

골목길 노인장/월정 강대실 도시 변방 어둑한 주택가 길모퉁이 웅크린 기와집 샛문 설주에 형틀 같은 작은 의자 하나 달렸다 오늘도 문안 든 불빛 몇 가닥 함께 앉아 한 노인장 빈손 수행하시는 중이다, 더는 못 보게 징벌 받았을까? 그 언젠가는 번쩍 뜰 수 있을까? 처음부터 궁금하고 가여움 가득했던 진흙탕 세상 담벼락 같이 살려다 두 눈 벌거니 뜨고도 허방다리를 짚어 그만, 큰물에 방천 터지듯 무너지고 말았다 틀어박혀 이렁저렁 오만 생각을 다 하다 닳고 터진 맨발 허겁지겁 노인장 찾는다 사람들 맹자 만나 되게 재수 없다고 침 뱉지 않아 감사할 뿐이라며 마음만 잘 먹으면 북두성이 굽어보시니 어여 가 밝은 두 눈 크게 뜨고 이 좋은 세상 온전히 품어라 이르신다. (3-90.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2.07

고향 당산할아버지

고향 당산할아버지/ 월정 강대실 발길이 멀어졌다 했는데 웬걸, 듬직하고 초롱한 모습들로 찾다니 네 선친 자식들 눈 띄워 줘야 한다고 고사리손을 잡고 눈물로 떠나셨다 당산할아버지는 처음 생겨나서부터 발을 내린 데가 천국이다 쭉 눌러 산다며 아버지 이름자뿐만이 아니라 우리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반기셨다 세상은 갓 지난 어제가 옛날이 되고 바야흐로 별세계 여행의 꿈에 부풀지만 제자리에서 자기 일 꽃피운 자라야 한다며 여기저기에 서린 선대의 향기 음미하고 발아래 도랑물에 삶에 얼룩진 일월을 씻고 애를 태우는 난마의 실마리까지를 찾았으니 올라가서 잘 아퀴를 지어라 하시고는 떠난 이들을 위해 고향은 무시로 기도한단다 어떻든지 머리를 이쪽으로 두르고 마음은 앞산처럼 푸르러라며 등을 토닥인다.

오늘의 시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