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시(시화.문예지)

서은문학

월정月靜 강대실 2020. 12. 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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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표 문예지 : 서은문학 통권 제6호

                    

2. 발표 일자: 2020년 12월 15일

 

 

진대나무를 만나다

 

가마골 용추사 계곡, 일찍이

발 잘 못 붙여 하늘 원껏 우러를 수 없고

긴 허리 꼿꼿이 펴지 못하여

대웅전 대들보로 택함 받지 못한

 

해와 달 바람 잊지 않고 찾아들고

그윽한 꽃향내 벌 나비 분분히 나래 치고

나무갓 큰 품 쫓긴 산짐승 걷어안았을

 

세수 이길 재간이 없어 수려함 쇠잔하고

독야청청 허연 알몸 절개를 지키더니

연전, 강풍에 붙안겨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죽지 않는다고

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

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보송히 말리는 일

자신만이 해야 할 일이다는

 

세월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

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

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

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그러고도, 궁극에 남은 지스러기는 기꺼이

흙으로 썩고 섞이어 목숨 탄 것들 생명소로

보시의 공덕 쌓아야 한다는.

 

 

길을 묻는 그대에게   

 

얼루기 먹던 제 구유통 마구 떠받아 엎듯

마음의 뜨락 우북한 잡초 갈아엎어야 하리.

 

어느덧, 지는 해 서창 너머로 설핏한데

여기저기 솔깃한 눈맛 귀맛 쫓아다니다

 

아까운 세월도 이웃도 다 흘려보내고

고향 땅 앞산 밑 탯자리에 발 붙인 그대여

 

뒷산에 숨어들어 할퀴고 내뺀 세월 뒤쫓다

목을 꺾고 울며 돌로 발등 찧어 봤는가!

 

불고추 씹어 내뱉는 얼얼한 고통 맛봐야 돼

줄밤을 새워서라도 우리 무릎 맞대자꾸나

 

늦지 않았다고 비로소 시작할 때가 왔다고

네발로 기고 물소의 뿔로 산과 바다를 넘자

 

맞잡은 다짐 앙가슴에 아로새겨, 기어코

뿌리 깊은 달콤한 사과나무 키워 내자

 

굽이쳐 흐르는 강물 제아무리 서글퍼도, 우리

노을빛보다 더 따스운 마음으로 건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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