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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과 그의 시

월정月靜 강대실 2010. 3. 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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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白石

1912. 7. 1 평북 정주~?             ☞     1912. 7. 1 평북 정주   ~   1995. 1. (83세)      2001/04/30 동아일보 자료 참조

시인.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북방정서를 통해 시화(詩化)했다. 본명은 기행(夔行).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1918년 오산소학교를 거쳐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 〈여성〉에서 편집을 맡아보다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 신징[新京]에 잠시 머물다가 만주 안둥[安東]으로 옮겨 세관업무를 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시 〈여승 女僧〉에서 보이듯 외로움과 서러움의 정조를 바탕으로 했다.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에서처럼 고향의 지명이나 이웃의 이름, 그리고 무술(巫術)의 소재가 자주 등장하며 정주 사투리를 그대로 썼는데,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키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슴〉 이후에는 시집을 펴내지 못했으며 그뒤 발표한 시로는 〈통영 統營〉(조광, 1935. 12)·〈고향〉(삼천리문학, 1938. 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학풍, 1948. 10) 등 50여 편이 있다. 시집으로 1987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과 1989년 고려원에서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을 펴냈다.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
        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
        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
        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
        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
        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
        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
        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
        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벌 : 매우 넓고 평평한 땅
           고무 : 고모, 아버지의 누이
           매감탕 : 엿을 고아낸 솥을 가셔낸 물. 혹은 메주를 쑤어낸 솥에 남아 있는 진한 갈색의 물.
           토방돌 : 집채의 낙수 고랑 안쪽으로 돌려가며 놓은 돌. 섬돌.
           오리치 : 평북지방의 토속적인 사냥용구로 동그란 갈고리 모양으로 된 야생오리를 잡는 도구.
           안간 : 안방.
           저녁술 : 저녁밥. 저녁숟갈.
           숨굴막질 : 숨바꼭질.
           아릇간 : 아랫방.
           조아질 :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리며 해찰을 부리는 일. 평안도에서는 아이들의 공기놀이를 이렇게 부르기도 함.
           쌈방이 : 주사위
           바리깨돌림 : 주발 뚜껑을 돌리며 노는 아동들의 유희.
           호박떼기 : 아이들의 놀이
           제비손이구손이 : 다리를 마주끼고 손으로 다리를 차례로 세며, '한알 때 두알 때 상사네 네비 오드득 뽀드득 제비손이 구손이 종제비 빠땅' 이라 부르는 유희
           화디 : 등경. 등경걸이. 나무나 놋쇠 같은 것으로 촛대 비슷하게 만든 등잔을 얹어 놓은 기구.
           사기방등 : 흙으로 빚어서 구운 방에서 켜는 등.
           홍게닭 : 새벽닭.
           텅납새 : 처마의 안 쪽 지붕이 도리에 얹힌 부분.
           동세 : 동서(同壻).
           무이징게국 : 징거미(민물새우)에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국.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

          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

          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

          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

          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 : 개의 이빨.
                재당 : 서당의 주인. 또는 향촌의 최고 어른.
                초시 : 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을 이르는 말.
                갓사둔 : 새사돈.
                붓장사 : 붓을 파는 직업의 장사꾼.
                몽둥발이 : 손발이 불에 타버려 몸뚱아리만 남은 상태의 물건.

                                           

                                            산골총각

                                           

                                                          어느 산골에
                                                          늙은 어미와
                                                          총각 아들 하나
                                                          가난하게 살았네.

                                                          집 뒤 높은 산엔
                                                          땅속도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에
                                                          백년 묵은 오소리가
                                                          살고 있었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오소리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아 갔네.

                                                          하루는 아들 총각
                                                          밭으로 일 나가며
                                                          뜰악에 널은 오조 멍석
                                                          늙은 어미 보라 했네

                                                          (어머니, 어머니,
                                                          오조 멍석 잘 보세요,
                                                          뒷산 오소리가
                                                          내려 올지 몰라요.)

                                                          그러자 얼마 안 가
                                                          아니나 다를까
                                                          뒷산 오소리
                                                          앙금앙금 내려왔네.

                                                          오소리는 대바람에
                                                          조 멍석에 오더니
                                                          이 귀 차고
                                                          저 귀 차고
                                                          멍석을 두루루 말아
                                                          냉큼 들어
                                                          등에 지고
                                                          가려고 했네.

                                                          조 멍석을 지키던
                                                          늙은 그 어미
                                                          죽을 애를 다 써
                                                          소리지르며
                                                          오소리를 붙들고
                                                          멱씨름했네.

                                                          그러나 아뿔싸
                                                          늙은 어미 힘 없어
                                                          오소리의 뒷발에
                                                          채여서 쓰러졌네.

                                                          오소리는 좋아라고
                                                          오조 멍석 휘딱 지고
                                                          뒷산 제 집으로
                                                          재촉 재촉 돌아갔네.

                                                          해 저물어
                                                          일 끝내고
                                                          아들 총각 돌아왔네.
                                                          오조 멍석
                                                          간 곳 없고
                                                          늙은 어미
                                                          쓰러졌네.

                                                          오소리의 한 짓인 줄
                                                          아들 총각 알아채고
                                                          슬프고 분한 마음
                                                          선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을 찾아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도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오조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범벅할까,

                                                          에라 궁금한데
                                                          떡이나 치자!)

                                                          오소리는 오조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덧거리도 힘껏 걸어
                                                          모으로 메쳐댔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뒷발로 걸어 차서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채인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동쪽 마을
                                                          늙은 소를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랫더니 늙은 소가
                                                          대답하는 말―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기장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노치 지질까,

                                                          에라 입맛 없는데
                                                          죽이나 쑤자!)

                                                          오소리는 기장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애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바른배지개 들어
                                                          바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대가리로 받아넘겨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받긴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서쪽 마을
                                                          장수바위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장수바위
                                                          대답하는 말―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찰벼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전병 지질까

                                                          에라 시장한데
                                                          밥이나 짓자!)

                                                          오소리는 찰벼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왼배지개 들어
                                                          외로 메쳤네.

                                                          그러나 오소리는
                                                          넘어질 듯 일어나
                                                          이빨로 물고 닥채
                                                          아들 총각 쓰러졌네

                                                          겨우겨우 제 집으로
                                                          돌아온 아들 총각

                                                          물린 것도 날이 지나
                                                          거의 다 아물으자
                                                          산 넘어 남쪽 마을
                                                          늙은 영감 찾아가서
                                                          오소리를 이기는 법
                                                          물어보았네,

                                                          그랬더니 늙은 영감
                                                          대답하는 말―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쳐라.)

                                                          아들 총각 좋아라고
                                                          그길로 달려갔네,
                                                          오소리네 집이 있는
                                                          뒷산으로 달려갔네.

                                                          아들 총각 문밖에서
                                                          듣는 줄고 모르고
                                                          오소리는 집안에서
                                                          가들거려 하는 말―

                                                          (수수 한 섬
                                                          져 왔으니
                                                          저것으로
                                                          무엇할까?
                                                          밥을 질까
                                                          떡을 칠까
                                                          죽을 쑬까
                                                          지짐 지질까,

                                                          에라 배도 부른데
                                                          지짐이나 지지자!)

                                                          오소리는 수수 한 말
                                                          푹푹 되어 지더니만
                                                          사랑 앞 독연자로
                                                          재촉재촉 나가누나.

                                                          이때 바로 아들 총각
                                                          오소리께 달려들어
                                                          통 배지개 들어
                                                          거꾸로 메쳤네.

                                                          그러자 오소리는
                                                          콩하고 곤두박혀
                                                          네 다리 쭉 펴며
                                                          피두룩 죽고 말았네

                                                          가난한 사람네
                                                          쌀을 빼앗고
                                                          힘 없는 사람네
                                                          옷을 빼앗아
                                                          땅속에 고래 같은
                                                          기와집 짓고,

                                                          잘 입고 잘 먹던
                                                          백 년 묵은 오소리,
                                                          이렇게 하여
                                                          죽고 말았네.

                                                          그러자 아들 총각
                                                          이 산골 저 산골에
                                                          널리널리 소문놨네―

                                                          백년 묵은 오소리
                                                          둘러 메쳐 죽였으니
                                                          쌀 빼앗긴 사람
                                                          쌀 찾아가고,
                                                          옷 빼앗긴 사람
                                                          옷 찾아가라고.

                                                          그리고 땅속 깊이
                                                          고래 같은 기와집은
                                                          땅 위로 헐어내다
                                                          여러 채 집을 짓고
                                                          집 없는 사람들께
                                                          들어 살게 하였네.

                                                          이리하여 어느 산골
                                                          가난한 총각 하나,
                                                          오소리 성화 받던
                                                          이 산골, 저 산골을
                                                          평안히 마음놓고
                                                          잘들 살게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