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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대시 100년|위안의 詩_정호승 _바닥에 대하여

월정月靜 강대실 2017. 8. 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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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100년|위안의 詩_정호승 _바닥에 대하여

 

 

080904

바닥에 대하여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바닥’과 싸우며 살아간다. 각기 처한 세계와 삶의 바닥이 다 다르므로, 누구도 다른 사람의 바닥에 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닥에서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래 이야기할 수 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 ‘바닥을 딛고 굳게 일어선 사람들’,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이거나 현재이거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닥은 또 다른 바닥과 연결되고, 바닥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깊이 연민하며 소통한다. 시가 그 일을 돕는다.

정호승은 ‘바닥의 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 시대와 사회, 개인의 어두운 바닥에 관해 노래해 왔다.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대에 그는,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서울의 예수’)음을 보았고, 끝없는 나락의 무저갱()과 같은 삶을 통과하면서는 ‘소금물을 마시며/썩은 내 창자를 꺼내 나뭇가지에 걸어두’(‘소금물을 마시며’)기도 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는 그의 시적 명령이 폭약처럼 터져 나온 것은 그 ‘바닥’의 어디쯤에서였다.

그런 정호승이, 바닥에 통달한 사람들의 말을 빌려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담담히 역설()한다. 없는 바닥을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 바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가장 좋은 방법. 모순을 단숨에 건너뛰는 역설()이다. 수사법이 단순히 문학적 기교가 아닌 ‘삶의 원리’임을 알게 하는 순간이다. 저마다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언은 없을 듯하다.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출처|동아일보

 

 

 

정호성시인

1950년 대구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76년 김명인, 김창완, 이동순 등과 반시(反詩) 동인 활동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석굴암을 오르는 영희’ 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첨성대'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위령제' 당선
1989년 제3회 소월문학상 수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 수상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수선화에게 _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슬픔 이 기쁨 에게

정호성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마음, 더불어 사는 것,

이웃과 불행을 나누면서 그것이 극복될 때까지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한마디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는 '기쁨'을 설득시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슬픔은 기쁨과 함께 걸어가겠다는 것이죠.

네이버지식in에서

 

 

 

현대시 100년|위안의 詩_정호승 _바닥에 대하여

편집|seorabeol_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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