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시집-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월정月靜 강대실 2009. 4. 3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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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강대실 시집

 

 

                                     시와사람

 

 

 

自序

 

 `시는 하늘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내 뜻대로가 아닌 하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늘상 생각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던 시간들을 주워 모았으나, 과연 나는 하늘의 말

을 알고 있는지, 하늘의 말을 알고 시를 쓰는지, 나의 짐작으로 쓰면

서 뻔뻔스레 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끄럽기 한

정 없지만 이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습니다.

 그리고 또 시를 쓰고 있습니다.

 

              

 

                                                                                                                                                       1999년 가을 문 앞에서

                                                                                                                                                                          강 대 실

 

 

 

차  례

 

 

제1부 쑥불로 타는 그리움

 

어머니^7 12

어머니^9 14

어머니^10 15

生家 16

담쟁이 18

고향의 도랑에서 19

한가위 달밤에 20

한가위 달 21

羊角山 산보길 22

까치집 23

천생 농꾼 24

아들의 入隊 25

올 겨울 26

다랑치 논 27

감잎 28

고향의 여름밤 29

山中에서 온 편지 30

뜨락의 여름 31

 

 

 

제2부 잡풀을 뽑으며

 

잡풀을 뽑으며 34

노거수 35

늦은 퇴근길 36

영혼의 바위 37

고독 38

새로운 묵도 40

강섶에서^1 41

강섶에서^2 42

詩人의 告白 43

山頂에서 44

부끄러운 날 45

벼랑에 핀 꽃 46

새가 되고 싶다 47

살아가기 48

歲月 49

노을녘에서 50

나를 위로하며 51

불씨 52

출근길 53

산이 좋아 54

 

 

 

제3부 계절속의 탕아

 

봄눈 56

봄 오는 길목 57

영산홍 58

五月을 맞으며 59

들꽃^2 60

五月 61

서글픈 장미 62

잡풀들의 이야기 63

뱀사골 여름밤 64

배웅 65

가을 문 앞에서 66

初秋의 길손 67

석류 68

가을 아침 일기 69

경주 가는 길목 70

낙엽 밟으며 71

빈 들의 감나무 72

눈길을 걸으며 73

裸木의 겨울나기 74

민들레 75

油桃花 76

새벽달 77

기다림 78

낙엽^2 80

겨울 국화 81

 

 

 

제4부 시의 향기

 

詩 84

버려진 동전 85

청솔밭에서 86

새벽 87

俛仰亭에서 88

松江亭에서 89

老松 90

月夜 91

탐부리 해변에서 92

팍상한 계곡에서 94

노점상 96

새벽 97

詩人으로의 길 98

밤비 99

자투리땅 100

빗속의 여자 101

 

 

□시세계 해설

 

鄕愁어린 사무친 `憧憬에의 影像'/정소파 103

 

 

 

제 1 부

 

쑥불로 타는 그리움

 

 

 

 

어머니^7

 

저승 하늘

하도 멀어

들리지 않음이요

어머니,

보고 싶소!

되뇌어도

오오-냐,

오냐!

금시라도

반겨나실

어머니 모습

이밤사

애타게

그리운 얼굴

오롯이

간직한 채

지새웁니다.

 

 

 

어머니^9

 

무서리

북풍한설

恨 길어 녹이셨지요

봄바람

꽃 소식

얼비치는데

深淵

끌어안고

노을빛 따라 가셨지요.

 

 

 

어머니^10

 

보고파

어이 살까요

하늘 좋아 하늘로 가

달이 된 당신

깊은 밤

구름 틈새

찾아 헤매다

아픔으로 피어오른

아릿한 모습

별밭에 그려보는

그리운 얼굴

세상 끝 대고

애닯게 불러댑니다

당신의 이름.

 

 

 

 生 家

 

개울녘 정자나무

허허로운 가슴 쓸며

늘어나는 빈 집

지켜섰는 산골 동네

매방앗간 고샅 지나

탱자나무집 뒤

아들네로 떠난 새 주인

기다리다 녹슨 철문은

문패마저 떨구고 있다

거지반 허물어진 돌담

넘어다 뵌 집 안

뒤틀린 마루바닥에

흙먼지 뿌옇게 앉아

텃새들, 연신 모여들고

영혼의 숨결로

돌부리 솟아나는 마당

봄볕이 널리고

쑥잎들 토방 아래 졸다

귀 익은 소리에 고갤 든다.

 

 

 

담쟁이

 

대문 안에 갇힌 가슴 열어

이웃집 크네기

웃음소리 들었더냐

마실 가렸더냐

계절을 딛고

담위 올라앉아

앞 집 마당 넘보다

팔 하나 부러졌는데

그래도

이웃 사촌

정 나누며 살고파

울을 넘는다.

 

 

 

고향의 도랑에서

 

솟구치는 그리움에

찾아와

하루쯤 마음 달래고 간

도랑가 빈 자리

돌멩이에 낀 청태

타향살이 서러움에

북받친 눈물 방울들

얼룩져

무릎 적신다.

 

 

 

한가위 달밤에

 

어머니!

앞산 마루 두둥실 한가위 달밤

땀에 저린 일상 뒤안에 내려놓고

맨드라미 고운 잎

송당송당 썰어 넣어

달덩이로 지진 전

한사코 입에 넣어 주셨지요

곱기도 하다며 보라시던 보름달

이 밤엔 어머니 얼굴로 솟아

솟구치는 그리움에

호올로 바라봅니다

어머니!

자식 앞에서 보이지 않으려 했던

뺨 위 두 줄기 눈물

달빛에 너무도 선연했습니다

그 의미 지금도 모르나

이 자식 가슴속에

살아서는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흐릅니다. 

 

 

 

한가위 달

 

만선 되어 찾아온 배

고향 강포구

지새워 밝히더니

향리의 정리 싣고

멀리멀리 떠나갔나

서녘 강나루

하얀 쪽배

그리움 싣고

새벽강을 넘는다.

 

 

 

羊角山 산보 길

 

상수리 한 톨 투두둑

내려앉는 소리에

멧새 한 마리 찬 공기 가르며

잊었던 길 찾아 나서면

반가이 주워든 추억 한 알에

연방 움터오는 빛바랜 시절

잔디 위에 뒹굴던 친구는

고향에도 없어라.

 

 

 

까치집

 

유년시절

산밭 가는 길목

실개천 미루나무 높은 가지 위

올려 뵈던 동그란 집

떠난 나 기어이 찾아

이웃에

고향을 물어다 지은

까치 내외

그리움만 쌓여가는 세월

이제는 나도야

까치집으로 살아가네.

 

 

 

천생 농꾼

 

골짜기 농사

벗어나겠다고

알짜배기 전답만

팔아 넘기시더니

하늘바라기 어찌 못해

골짜기 밭 어찌 못해

벌통, 임야, 감나무……

선친 산소 어찌 못하여

평생 눌러 사시다

뒷산 어귀 양지밭에서

온 동네 논밭배미

다 내다보고 계신

천생 농꾼 우리 부모.

 

 

 

아들의 入隊

 

자작으로 햇살 한 번 쬐지 않은 여린 잎

못 미더워 떠보낼 수 없는 애틋한 배행길

말 못할 조바심 궂은 비로 가슴 에고

계백 원혼 매운 바람 올차게 뺨을 후리네

큰절로 하직하고 대열로 뛰는 당찬 녀석

멀어져 가는 행렬 눈길만 따라가다

텅 빈 연병장 한켠 동그마니 서 있는 몰골

행여나 까치가 볼까 흔연스레 돌아선다.

 

 

 

올 겨울

 

마소도 외양간에 들고

하찮은 날짐승까지도

보금자리를 찾아드는데

새해 벽두

남은 녀석마저

곁을 비운 연유도 있지만

실로 무던히 가슴팍 쳤던 세월

잡을래야 잡히지 않고

불러도 돌아올 줄 몰라

목마름에 발버둥쳐 보지만

왠지 공허 도지는 가슴 속.

 

 

 

다랑치 논

 

아파트가 밀려든다

고향으로 남은 논다랑치

세월 끌어안고

너저분히 뒹구는

생활의 잔해

작은 빈 터에

경운기 맴돌고 가면

하늘이 열리고

시절 만난 개구리

합창으로 계절을 노래하면

고향 소식

나이테로 번져온다.

 

 

 

감 잎

 

올 여름 도시 생활

용히 버티더니

문 안으로

푸른 감잎 하나 보냈나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꿈꾸다가

발자국 소리에 놀라

새벽을 하품질한다

이왕 조금만 더

참아 달란 기별로

찾아온 바람소리

울 넘어 기어든다.

 

 

 

고향의 여름밤

 

모낸 논다랑치

불꺼진 외딴 집,

쑥불 타는 마당 한켠에

누런 황소 한 마리 누워

어둠 씹어 먹고

편히 쉬는 밤

접동새만

검고 깊은 뒷산에서

밤을 지새기 외로워

처량한 울음으로

고향 여름밤을 지키고 있다.

 

 

 

山中에서 온 편지

 

여보게 친구,

올 겨울 길 열리면

재 너머 추월산 뒷켠

내 집 한 번 찾아주게나

경양동 들머리 아랫목

새끼줄 같은 길 호젓이 타고 들면

개울녘 양지받이 초막

떼를 이룬 어미 염소와 새끼 염소

여물 먹다가

자넬 맞아 들일 것이네

여기 저기 둘러보다

해 떨어지기 전에

생솔 가지 한 짐 찍어다

뒷바람 매운 연기에 눈물 훔치며

뚜- 욱뚝 부질러 군불 지피우세나

지글지글 온 방 끓어오르면

들앉아 세상사 부려놓고

이슥토록 이런저런 얘기 나누세 그려.

 

 

 

뜨락의 여름

 

짙푸른 강물

넘실대는 뜨락

찾아든 바람

해들해들

별이 쏟아진 감나무

가을 단꿈에 졸고

고개 떨군 분꽃

하품질 해대면

한마당 땡볕

어슬어슬 용마루 넘는다.

 

 

 

 

제 2 부

 

잡풀을 뽑으며

 

 

 

잡풀을 뽑으며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일로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제 자리에 옮겨 놓으셨고

나는 이 아침 나의 일로

풀을 뽑습니다

평생을 지심 메 전답 가꾸는

농투사니 떠올리며

잡풀 말끔히 뽑습니다

하느님!

한 계절만 참아달라며

발버둥쳐 울어대는 생명

해치우는 것

물론 죄가 되겠지요

하느님!

그러나

이 마음 개운한 건

어이 해야 합니까.

 

 

 

노거수

 

온 몸 썩히어

갖은 풍상

삭이고 서 있는

상처마다 피워올린

녹야청청의 마음, 오늘은

낙엽으로 또 버티나니

한 生

청청함으로 남는

내 마음 속

지주목입니다.

 

 

 

늦은 퇴근길

 

당신 같은 사람 하나 보았습니다

용봉로 사거리 신호 건너다

질주하는 라이트 선연한 빗줄기

함초롬히 맞으며

한 손으로 세상 가리고

마냥 채머리 떨고 있는

당신 닮은 여자 우연히 보았습니다

이슥한 밤 칭얼대는 신호에

부리나케 길 건너 뒤돌아보면

차량 행렬 저 편 신호등 아래

어깨 들먹이고 있는 여자,

그날 밤 퇴근길 가로막고

한없이 울어대는

영락없이 당신 닮은 여자 보았습니다.

 

 

 

영혼의 바위

 

산은 바위를 품고

바위는

그리움 하나 품고 산다

뿌리 없이 떠가는 구름

거연히 변하여도

가고 오는 여름날

내 마음은 빈 자리

저린 영혼

시 한 편으로 채우고

황혼녘 하늘에 서 있다.

 

 

 

고독

 

연자 맷돌 지고가다

숨이 턱에 닿았어도

된서리에 숨죽어

주저앉아도

의지가지 없네

걸핏하다

책잡히면

물 본 기러기 달려들어

짓밟고 쪼아대어

갈기갈기 홈을 내네

주저로운 세상

아니 갈 수 없어

눈 가리고

귀 막고 가야지

허기진 영혼

걸인만도 못해

고갯마루 올라 서서

하얀 세상 바라보고 웃는다.

 

 

 

새로운 묵도

 

오십 년 빗질하여

살아 온 세상

물정 모르고 치닫다가

여기까지 와 버렸네

속절없이 속절없이

길섶 열매 씹어 맛보는 것보다

더 쓰디쓴 열매 보일지라도

하늘 뜻 헤아려

살아가는 세상살이

물 흐르듯 살아야겠네

씻기운 섬돌처럼 살아야겠네.

 

 

 

강섶에서^1

 

얼마나 넓어야

저리

평온할 수 있을까

얼마나 깊어야

저리

속 뵈이지 않을까

얼마나 비워내야

저리

푸르게 살까

오늘도

산 그림자 묻을

마음밭 일군다.

 

 

 

강섶에서^2

 

강 속 훤한 달 바라보다

달 따라 물에 뛰어 든다

손과 얼굴을 닦고

마음까지 말끔히 씻고 나자

수면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하나

큰 눈으로 한참 들여다보면

조각달도 한 번 찾아들 수 없고

물방개 한 마리 헤엄쳐 놀 수 없는

시궁창 같은 속내

강가에 발 담그고 앉아

밤새껏 목울음 운다.

 

 

 

詩人의 告白

 

당신 생각으로만

살겠어요

당신 이름으로만

살겠어요

꽃잎 지우는

바람의 아픔까지도

복장 속

찬연한 노래로 부르며

당신 사랑으로만

살겠어요.

 

 

 

山頂에서

 

새우젓 접시 같단다

단지 속이란다

새해 초일 동그마니 산정에 앉아

터질 듯 한 복장 어르달랜다

산자락 훔친 바람 서천 노을에

마음밭 헹궈 내자

어둑발 속 산사에서 들려오는

木魚의 애연한 울음소리

눈감은 듯 살으란다

귀 막고 살으란다.

 

 

 

부끄러운 날

 

네 활개로 덤벙대는 몰골

눈에 걸려도

마음 다둑거리며

재갈 물고 살다가도

필경 마구 뚫린 창구멍 되어

밑도 끝도 없이 띄워 보낸

오만 소리에

솟구치는 화 참지 못해

사자후를 토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말고

생각할수록 한정없이 부끄러워

온종일 얼굴 들지 못하고

회한의 속앓이 하는 나에게

`에-끼, 똑같은 사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

 

 

 

벼랑에 핀 꽃

 

쪽빛

한 입에 머금고

벼랑 끝

움츠려 살다

시린 가슴

설움에 젖어

가없는 바다,

세상사 얽다.

 

 

 

새가 되고 싶다

 

속아 살아 왔다는 강물

떨쳐버리지 못하여

입결에 접어 둔 말 하고 나면

드러난 속내 부끄럽고

죄스럼 간과하지 못해

눈물 흘린다

단 한 발짝을 살더라도

벙어리 냉가슴 덮어 버리는

언어가 없어

바람 좇는 눈으로

새가 되어 창공을 날고 싶다

.

 

 

 

살아가기

 

코끝 파고드는 감미로움에

바장이다

하늘 가리고 다가서 보면

利己에만 눈이 버얼게

어르고 뺨치며

물고 물리는

허물어져 가는 세상

속내 옥죄어 오는 매스꺼움에

얼른 돌아서서 침 뱉는다.

 

 

 

歲 月

 

많아 뵈일까봐

바래 돋은 日月

먹칠 한다

반추

머리에 이고

걸어간다.

 

 

 

노을녘에서 

 

바람 앞에 서지 않고

흔들어 털어 내지 않고도

주먹을 쥐고 펴듯

품은 꿈 조각 하나

떨쳐버릴 수 있다면

가파른 둔덕바지

흔연스레 오를 수 있을 것을

세월에 채고 곱챈다 해도

청승궂게 숨비소리 내지 않고

이 길 기껍게 가리

외롭고 힘겨운 짐 진 이에게

슬거운 가슴 잊지 않아

흙에 몸 섞일 그때에

하늘의 큰 상 받으리.

 

 

 

나를 위로하며

 

늦으셨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저녁은 드셨고요

오늘도 힘 많이 드셨지요

옷 갈아 입으셔요

다리 좀 주물러 드릴께요

아니, 차 먼저 한 잔 하세요

인삼차를 드실래요

매실차를 챙겨올까요

피곤하실 터이니

꿀차가 좋겠어요

꽃잔에 차 한 잔 챙겨 마시며

내가 나를 위로한다.

 

 

 

불 씨

 

먼발치 자잘한 바람에

피워 품은 불씨

마음의 청약수 길어

사그라뜨리지 못하면

모닥불로 타오르나니

제 풀에 재가 되나니.

 

 

 

출근길

 

허허로운 아침

살바람에 웅크린

하얀 출근길

먼 산꼭대기

성큼 올라앉아

빈 들 노려보는

시린 눈빛

구부정한 나날

희미한 그림자

황혼길 끌고

언덕 오른다.

 

 

 

산이 좋아

 

깊은 산 속 비탈에

오두막집 지으리

산 문 막아

두고 온 사랑 발길 끊어지면

세상사 萬花로 읽으리

이따금씩

길 잃은 노루 인기척하면

손인 듯 반겨 맞아

저간의 얘기 나누며

하룻밤 벗하고 쉬어 보내리.

 

 

 

 

제 3 부

 

계절속의 탕아

 

 

 

 봄 눈

 

마알간 하늘

흩뿌린 꽃잎

그리움으로

가지에 피어나더니

밤을 지샌 자리

님이 흘린 아픔

흥건히 쏟고

흔적 없다.

 

 

 

봄 오는 길목

 

돌아서지 못한 겨울 움츠려 있다 배시시 웃는 햇살에 녹아버린 언덕받이 아래 지난 가을의 흔적 옹기종기 둘러앉아 옛이야기 수군대면 대지가 몸 풀어 봄 얘기 뾰조록이 머리 내밀고 강에 진치고 있는 동장군, 남녘에서 올려 보낸 화신에 전열 풀고 화평을 화답하는 노래 부르면 마른 풀덤불 속 몸 사리고 있던 갯버들강아지 시름 잊은 듯 창 열고 해동갑 하여 연초록 물 품어 올려 단장한다.

 

 

 

영산홍

 

영안실 앞마당

무더기 무더기 찾아들어

봄날이 시새워

잎새 연방 고갤 내밀면

아무런 기색 없이 꽃자리 내주고

수술 끝 대롱 달린다

봄바람 오열 소리 묻어 오면

살포시 발 아래 내려앉아

오월 끌어안고

핏빛 머금은 채 이울다.

 

 

 

五月을 맞으며

 

키재기로 솟아오르는

회색 숲 틈새

시간이 멈춰 서

도시 숨구멍으로 남은

한 점 손바닥만한 공간

칠팔월 넘보는

오월 초하루 햇살

질펀히 내려앉고

서러운 풀잎 흐드러지는 계절

숨이 턱에 닿도록

어깨를 짓누른

붙박이 일 내려놓고

푸르름 마신다.

 

 

 

들꽃^2

 

풀섶에 핀

하늘 끝 별빛

청명한 바람

소롯이 찾아들어

야윈 가슴 연

은밀한 독백

계절이 취한

가라앉은 외로움.

 

 

 

五 月

 

소복단장

고이 품은 꿈

여울물

하늘 소리

따슨 햇살 모아

개나리

진달래꽃

형형색색 수놓는 山河.

 

 

 

서글픈 장미

 

겨울 바람에

보송보송한 햇살

그리워지던 꿈조각

연초록 눈빛

벙긋벙긋 망울 터

사랑의 화신 된 너

담 밖 넘보다

빈 나팔 불어대는

슬픈 울음 외롭다.

 

 

 

잡풀들의 이야기

 

어디라고

찾아 든

낯선 생명 하나

쑥 뽑아 내려 하니

??????왜 못 살게 굴어요??????

??????나도 푸른 옷이잖아요??????

발붙여 살 데 어디냐며

눈물 흘린다.

 

 

 

뱀사골 여름밤

 

불볕 쏟아 담은 앞강이

붉덩물로 흐릅니다

깊은 골짜기 떠도는

원혼들 눈물입니다

산머리 차 오른 달 하도 설워

미어지는 가슴

밤새워 울어 옙니다

너울너울 산마루 너머

하늘 날 수 없는

혼백들 성긴 울음입니다

잃어버린 여름,

마지막 밤을 새는 강가에

철 잊은 들국화 한 송이 피었습니다.

 

 

 

배 웅

 

삼복 고개 너머

처서로 가는

염천의 긴 터널

여우비에 쫓겨

기죽은 八月

님의 숨결로 남아

봄비 속 숨쉬는 詩語

찌든 가슴에 녹아들고

젖은 줄 모르게

모시 윗도리

파고드는 여우비

몸도 마음도 흠뻑 젖어

九月의 길목을 나선다.

 

 

 

가을 문 앞에서

 

도망자였더냐

골짜기로 들녘으로

동리 안으로

쫓겨다니며

한 계절 물벼락에

녹초가 된 너

탕자처럼 기진하여

본색 한 번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더니

아픈 땅 위로

청명한 하늘

도둑 같이 몰려든다.

 

 

 

初秋의 길손

 

한껏 자라지 못한 들풀

바람에 부둥켜

몸부림친다

고요로운 산장

빈 벤치에 찾아든

길손

어깨를 짓누른

멍에 벗어놓고

붉어오는 체온

가슴에 담는다.

 

 

 

석 류

 

앳된 소녀인 듯

수줍어 떨리는 미소

말을 잊은 채

가슴만 보이네.

 

 

 

가을 아침 일기

 

성큼성큼 걸어

초초한 군상들 틈 비집고 서자

뉘댁이시냐며

돌개바람 시설궂게 달려든다

어느새 가로수로 몰려가

가지를 흔들어 댄다

나뭇잎 우수수 쏟아져 뒹굴고

선뜩선뜩 가을비 내린다

부리나케 우산을 받쳐들자

샛노란 이파리 하나 또르르 달려와

이지렁스레 발등에 올라앉는다

추워지는 일기에

머무를 마땅한 곳 어디냐며

엉두덜거리는데

구름 덮인 하늘 훔쳐보며

얼른 버스에 올라타 버린다.

 

 

 

경주 가는 길목

 

움츠린 산하 불 꺼진 굴뚝

속 탄 한숨 아프고

계절은 빛을 잃어

들판에 쓰러진 하늘 서럽다

수렁 속 쭉정벼 거두는

쥔 양반이 하도 안쓰러워

언덕배기 송아지 달고 서 있는 얼룩소

애잔한 가을을 우는 젖은 눈망울.

 

 

 

낙엽 밟으며

 

떨어져 뒹구는

노오란 은행잎

찹쌀 떠-억!

저무는 가을

깊은 가슴 적신다.

 

 

 

빈 들의 감나무

 

서넛 잎 남아 달린

찢긴 잎새

하늘 바라보며

몸부림치고

홍시 하나

터질 듯한 가슴

부둥켜안고

흘기죽대면

낯뜨거워

도망치는 내게

말라빠진 가시랭이만

따라나선다.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나선다 입춘이 내일인데 길이란 길은 끝없이 흰 길로 통하고 금방 스친 이가 찍은 발자국까지 숨어버린 눈길 소록소록 걷는다 속에 사그라지다 남은 그리움 조각 눈 속에 빠끔히 고갤 내민다 추억이 서린 길 따라 걷는다 눈꽃으로 피워내며 이슥토록 걷는다 이 길 다 가고 나면 그리움 이울고 말겠지 어느새 가로등 하얀 빈 터에 기다려 서 있는 문 앞에 당도한다 툭툭 그리움 털어 낸다 눈물을 닦아낸다

 

 

 

裸木의 겨울나기

 

찬 서리 내려앉은

가지 위

아침 햇살 잠을 깨

영롱히 비추는 산비알

못 잊을 그리움으로

허공 향해 손짓하는

나무들

시린 발 바라보고

북녘 향해

목쉰 노래로 살아간다

따스한 날

잔디에 뒹구는 꿈

피멍울 들어도

이 강을 건너자.

 

 

 

민들레 

 

바람결에 물어 왔나

물길 따라 찾아 왔나

타는 그리움 참지 못해

봄 볕 몇 낱 문안 들면

속도 모른 인간,

발길에 짓밟혔어라.

 

 

 

 油桃花

 

먼동이 번한 뜨락 한켠

그리운 얼굴로 벙글어

넌지시 문안 인사한다

그래 귀여운 것아

좁은 마당 마뜩찮아도

뙤약볕 넌더리나도

한 계절 벙긋이 남아다오

우리 내외 들며날며 눈 맞추고

여울지는 보고픔 달래 살것다.

 

 

 

 새벽달

 

바람으로 와

눈길 주고

바람으로 가시더니

쌓인 정보다

더 진한 아픔

반쪽 되어 멀어진 당신

嶺을 넘어 가시나요

슬거이

하늘 내주고.

 

 

 

 기다림

 

높은 산

깊은 골짜기

발자취만

숨 쉬는

가난한 땅

무성한 잡초

밟아 딛고

새 주인 맞을 날만

세세연년 기다려 섰는

 

 

 

매화나무

 

올해도

찾아 든 봄,

찌든 가슴 달래

벙긋벙긋 피어 올린 매화

잊지 말자고

열매 영글어

걷이 때 꼭 보자며

눈 맞춘다.

 

 

 

낙엽^2

 

못내

이별 아쉬워

설움에 젖어 젖어

모다 있더니

헤어지는 붉은 가슴

가누지 못해

목 쉰 울음 울며

미친 듯 몰려다닌다.

 

 

 

겨울 국화

 

지난밤

하이얀 나비 맞아들여

신부 같은 가슴 속

생기 솟는 노오란 네 얼굴

너마저 떠나가면

기어이 한 해는 가고

긴긴 세월 불타는 그리움에

얼마나 마음 조여 살거나.

 

 

 

제 4 부

 

시의 향기

 

 

 

 

 

裸木되어

황막한 대지 끝에 설 때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지요

당신의 노래 부를 수 있다지요

.

 

 

 

버려진 동전

 

그냥 버려두고

먼 그림자 밟고 갈수록

마음에 걸렸는데

후후 불어

주머니에 넣고 매만진다

잠결에

??????당신은 누구예요???????

??????당신의 체온이 뜨겁네요??????

물 담긴 놋대야 속

둥근 달처럼

훤하게 웃어 보인다.

 

 

 

 청솔밭에서

 

고적한 길 따라

새벽을 연다

산새 한 마리

새 날 씹고

어둠 날리는 소리

가슴 속 파고드는

바람 탄 솔향

세사에 옹이진 마음

씻은 듯 녹여주고

눈 귀 씻어

솔잎 사이로 날아드는

예배당 종소리.

 

 

 

 새 벽

 

서산마루 넘어 와

갈 곳 잊었나

가년스레

한데 주저앉아

밤새 졸더니

황새 한 무리

수잠 자다 열고 온

샛길 타고

스멀스멀

산모퉁이 돌아간다.

 

 

 

쭗仰亭에서

 

댓잎 스치는

솔솔 바람 따라

죽림 속 끊길 듯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 오르면

우람한 참나무 하나

연륜으로 우뚝 서

번져오는 잎의 향

사방 트인 정자

툇마루 올라서면

발 아래 산천 아스라하고

눈앞 하늘 땅 가이없는데

강호제현 모여들어

유유자적하다

국사를 개탄하던 아픈 심상

뜨락에 아른거린다.

 

 

 

松江亭에서

 

송림 속 돌계단

시인의 향

찾아 오르니

노송의 그림자

누마루 올라앉아

길손 반기고

강가에 늘린

창평 들판

짙푸름 일렁이어 오면

청댓잎

버림받은 여인의 노래로

반짝이는데

뒤꼍 산죽 몇 그루

쥔 양반 오실 날만

기다려 서 있다. 

 

 

老 松

 

황막한 세상 끌려와

수족 잘리고

쇠사슬로 동여 매여

솟는 해 반겨

팔 한 번 마음대로

펴 보지 못하고

쥔 양반 성화대로

뽄새 가누어

살아가는 老松

細雨 맞고 서서

더운 눈물 방울

발등에 흘린다.

 

 

 

月 夜

 

멀리 자리하는 것들

형상마저 앗아버린

먼 산 아래

불빛 서넛 주저앉아 조는

풀벌레 울음

풀잎 끝에 몰려들고

사념 저절로 무너져 내리는

무아경의 천국.

 

 

 

탐부리 해변에서

 

해초들의 부스러기

아픈 흔적으로 뒹굴다

모래톱에 녹아들고

검푸른 누리

흰 수포를 타고

미끄러지는 제트 스키

눈 끝

끝없는 무게로

하늘이 내려앉은

외로운 섬 하나

피어오른 흰 구름

사념 싣고

남국으로 가면

시심은

파도로 일렁이다

한 점 섬에 닿고

억겁을 씻고 씻은

조개 껍데기

하이얀 속살 부끄러워

모래알 품는다.

 

 

 

팍상한 계곡에서

 

태초의 숨결 오롯한

수십 수백길

깎아 세운 좌우 절벽

하늘 얹혀 있고

손 내밀면 잡힐 듯

계곡물이 갈라놓아

바라만 본 긴긴 세월

선 채로 굳은 바위

청태 향기

그리움 타는 가슴

주고 받는 숨결일레

이방인 태운 카누

물길 따라 밀고 끌며

바위도 넘어가면

발원지 수직으로 꽂힌 폭포수

세상의 번뇌 다 녹아

또 다른 세계

라구나의 하늘

동그란 얼굴 내밀고

이방인을 맞아 웃는다.

 

 

 

노점상

 

되살아 난 겨울 바람

일과를 놓았지만

마음 옥여 죄는 돌 짐

걸머지고 허덕이다

명퇴 푯말 세운

젊은 노점상 부부

아물지 않는 기억 여미고

마냥 선웃음 쳐보지만

발길 없는 포장마차

막 나온 붕어 몇 마리

비릿내 풍기며

세상 훔쳐본다.

 

 

 

새벽

 

자명종,

고 3년생을 둔 아내를 깨우고

정성을 씻는 씽크대 물소리

잠이 서운한 눈을 연다

5분 전을 경고하는

서너 번의 파열음에도

잠꼬대 속

메아리로 오는 `잠깐만'이 흐르고서야

녀석의 짠한 거동이 시작되면

적막 자락 헤치며

앞산 둔덕 터벅이는 내게

솔가지에 걸려 졸던 새벽달

거연히 그림자로 따라나서자

놀란 멧새 한 마리

깃 털어 애먼 길을 나선다.

 

 

 

 詩人으로의 길

 

쫓기듯 살아온 탓인가

깊은 늪에 빠져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족적 없이

황혼녘을 방황함은

그래도 시가 있기에

작은 것으로부터 나를 찾아

감싸 안으리

시를 사랑하기에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내리

정감 넘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아름다움 꽃 피우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앉아

맘에 드는 시 한 편 건질 그날까지

후회없이 이 길 가리.

 

 

 

 밤 비

 

어느 놈이냐!

창밖에 소곤거리는 놈이

주무시는데!

어디서 기어들어 온 놈이냐!

잠 깨운 놈이.

 

 

 

자투리땅

 

농사꾼 아니어도

흙의 마음 아는 듯

마음 빗장 열어

사촌으로 어우러져

폐자재 몰아 부친

자투리땅 일구어

정리를 가꿔가는

회색 동네 사람들

척박한 땅 가슴 열고

정을 먹고 자란 곡식

퇴색되는 마음

새파랗게 색칠한다.

 

 

 

빗속의 여자

 

여자야

어스름 퇴근길

우산도 없이 앞서 가는

긴 머리 여자야

빗방울

시리게 맞으며

어디로 가는가

질곡의 세월,

눈물 흘릴 곳 없어

호젓한 길 찾아 걷는가.

 

 

 

시세계 해설

 

鄕愁어린 사무친 `憧憬에의 影像'

 

 

                                                           정 소 파

 

 

 

시세계 해설

 

 

鄕愁어린 사무친 `憧憬에의 影像'

 

 

정 소 파

 

 시인(詩人) 강대실 군이 시창을 두드리며 진객(珍客)처럼 찾아온 날은 금풍이 소슬한 어느 초가을 추명(秋明), 산뜻한 아침나절이었다. 그 동안에 써온 가즙(佳汁)을 모아 하나의 시집으로 상자하겠다며 한 묶음 시고(詩稿)를 건너 주는 게 아닌가.

 돌이켜 멀리 그가 소년 시절, 맺은 인연으로 내 일찍이 교직생활 35유여 년 3락 중의 하나인 세상의 영재를 모아 가르침의 즐거움의 하나는 청람(靑藍)의 제자를 많이 배출해내는 것이 모름지기 사도의 큰 보람으로 여겼거니와 문학의 길에 들어 적잖은 시인 작가를 길러 오늘의 문단에 기라성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은 가슴 벅찬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계열별 4부로 나눈 작품 79편을 일별(一別) 통송(通誦)하며 심금(心琴)에 와 닿는 그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시인(詩人)의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은 고요히 울리는 리듬을 타고, 가슴의 심서를 흔드는 새로운 서정의 실험성을 띤 일작(逸作)들이었다.

 

 

1 . 구원(久遠)한 향수(鄕愁)로의 시

 

 강대실 시인은 즉물적 관조를 통한 대상인 자연을 하나의 향수(鄕愁)어린 자아의 형이상학적 영감을 통해 노래하며 시적 화자와의 일체감을 영유할 줄 아는 철학적 견지에 도달하고 있다.

 저 함묵을 지키는 하나의 무기물의 바위에서 생명 있는 유기적인 생물을 통하여 자아와의 교감을 거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심오한 경지에 까지 이르고 있는 시적 묘미를 은연중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은 바위를 품고

   바위는

   그리움 하나 품고 산다

   뿌리 없이 떠가는 구름

   거연히 변하여도

   가고 오는 여름날

   내 마음은 빈 자리

   저린 영혼

   시 한 편으로 채우고

   황혼녘 하늘에 서 있다.

                                 -「영혼의 바위」 전문

   

 

3연으로 된 단장(斷章) 1편 속에 함축된 시철학이 떠가는 한조각 구름에서 현실적 고뇌로의 여름날에 한치의 차이도 없이 현실을 반영하여 화자와의 모티브를 통해 가시적 유혹을 해 와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보게도 하여 한 편의 시로 만족하며 평생을 늙어도 여한 없음의 달관적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2 . 모정(母情), 그리고 `그리움의 한'

 

수록된 「어머니」 연작 3편 가운데 유독 「어머니^10」은 필자와의 동질성의 애틋한 모정을 여실히 묘사한 핍진(逼眞)한 작품이어 가슴을 에는 듯한 감명을 주는 작품이다. 저 「풍수지탄(風樹之歎)」의 권효시(勸孝詩)도 있거니와 효를 다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의 목메이는 이 철천의 한은 두고두고 잊을 길이 없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 것이다. 고이 길러 성장시켜 하나의 인격체로 서게 하기 까지의 그 피나는 고난의 길을 생각하면 생각사록 살아 생전 그 만분의 일의 갚음 없음이 뼈에 사무치도록 애달프고 서러웁다.

   

          보고파

   어이 살까요

   하늘 좋아 하늘로 가

   달이 된 당신

   깊은 밤

   구름 틈새

   찾아 헤매다

   아픔으로 피어오른

   아릿한 모습

   별밭에 그려보는

   그리운 얼굴

   세상 끝 대고

   애닯게 불러댑니다

   당신의 이름.

                                 -「어머니^10」 전문   

 

   강대실 시인이여!

 너무 슬퍼하지 말지어다. 내 또한 나이야 젊건, 늙건 어찌 어머니 그리움이 다를까 보뇨.

 그 고운 심성과 자애의 어진 마음은 저 하늘나라의 달이 되어 온 누리를 밝히고도 남으렸다.

 어머니가 보고플 땐 달이 되어 떠오른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이 있다.

 어머니가 그리울 땐 눈앞이 캄캄하여 목놓아 울어도, 울어도 풀리지 않는 기가 차 땅을 치는 때가 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여! 애절한 강시인의 목멘 울음 소리를 듣고서 어머니로의 도리에 게으름 없기를 ......

 

 

 3. 기다림과 만남 사이

 

 저 포악무도한 일제의 학정 아래서 쫓기고, 몰리며 살아왔던 백의민족이 저 두만강을 넘어서 허허벌판 북간도로 쫓기던 애달픈 겨레의 한 많던……. 조국 광복의 기나긴 36년의 기다림이나, 남북분단의 뼈져린 저 6^25 전쟁뒤의 이산가족의 재회의 기회가 이대도록 먼 50년의 기나 긴 세월 속에 애타도록 못 만난 통한의 형제자매, 그 구슬픈 만남의 오래인 기원이거나 인간 아니면 저 미물에 이르기까지 만나고, 헤어짐 등 그 무수한 전아(錢?)와 해후(邂逅)와 몌별(袂別)과의 관계에서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높은 산

   깊은 골짜기

   발자취만

   숨 쉬는

   가난한 땅

   무성한 잡초

   밟아 딛고

   새 주인 맞을 날만

   세세연년 기다려 섰는

   매화나무

   올해도

   찾아 든 봄,

   찌든 가슴 달래

   벙긋벙긋 피어 올린 매화

   잊지 말자고

   열매 영글어

   걷이 때 꼭 보자며

   눈 맞춘다.

                             -「기다림」 전문   

 

  강대실 시인은 하찮은 한 그루 매화나무에 부치는 회정도 깊은 애정을 기울여 가난한 이 메마른 땅에 숨어서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 줄 지조와 절개 높은 그 향 맑은 매화를 노래하고 있다.

 그것은 애틋한 기다림에서 오는 만남의 기쁨인 것이요, 그 만남은 하나의 환희로 못 잊을 그리움인 것이다.

 

 

 4. 기나긴 인고(忍苦)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겨울 나목과도 같은 살이를 하는것이 우리 인생이기도 하다. 더러는 풍요 속에서 더러는 빈곤속의 부단한 연속선에서 생성의 과정을 밟으며 살고 있다.

 시인의 깊은 상상적 사고는 외연적 유추의 날개를 타고, 저 한 그루 나무에 이르기 까지 굳센 의지의 서정적 강도를 보여 주고 있다.

   

         찬 서리 내려앉은

   가지 위

   아침 햇살 잠을 깨

   영롱히 비추는 산비알

   못 잊을 그리움으로

   허공 향해 손짓하는

   나무들

   시린 발 바라보고

   북녘 향해

   목쉰 노래로 살아간다

   따스한 날

   잔디에 뒹구는 꿈

   피멍울 들어도

   이 강을 건너자.

                             -「裸木의 겨울나기」 전문   

 

   

  엄동설한의 기나긴 겨울을 벌거벗고 살아나는 저 산비알의 겨울나무는 어쩌면 한 동안의 우리 겨레의 모진 생활과도 흡사하다 할 것이다.

 우리도 저 보릿고개를 허위 넘어가며 가까스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인생의 고난을 노래하듯 의인법(擬人法) 수사를 구사하여 ??????시린 발/바라보고//북녘 향해//목쉰 노래로/살아간다??????는 애절한 현실의 절창으로 깊이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바가 없지 않다.

 

 

 

5. 여로(旅路)의 구름을 타고

 

  우리 시를 3별하여 서사^서정^서경으로 대별할 수 있거니와 시인 강대실은 서경시에도 능란하여 저 자연의 경관을 눈앞에 보는 듯 여실히 그려내는 시재(詩才)는 그 천재의 주어진 재능으로 상 줄 만하다.

 경관을 읊조린 서경적 기행시는 자연과 인정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아 쉬운 듯 어려웁고, 거기에 더하여 언어미의 기교적 어려움이 뒤따른다 할진대 강 시인은 그것을 극복하여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다.

   

        

  해초들의 부스러기

   아픈 흔적으로 뒹굴다

   모래톱에 녹아들고

   검푸른 누리

   흰 수포를 타고

   미끄러지는 제트 스키

   눈 끝

   끝없는 무게로

   하늘이 내려앉은

   외로운 섬 하나

   피어오른 흰 구름

   사념 싣고

   남국으로 가면

   시심은

   파도로 일렁이다

   한 점 섬에 닿고

   억겁을 씻고 씻은

   조개 껍데기

   하이얀 속살 부끄러워

   모래알 품는다.

                       -「탐부리 해변에서」 전문   

 

   가슴 높이로 다가오는 저 슬프도록 묘막한 쪽빛난 바다를 바라보며 오묘한 바다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또 다른 모습이 성자처럼 엄숙하다.

 바다의 섭리를 꿰뚫어 그 깊이의 심오한 묘리를 체득하듯 그 시경의 깊이와 농도를 더해가는 신역(神域)의 경지 까지 도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쌓이는 정 보다 더 진한 아픔을 노래한 「새벽달」, 네거리 신호등 아래 서럽게 울고 서 있는 여자의 「늦은 퇴근길」, 미루나무 가지 위의 고향 같은 자그마한 까치집을 읊조린 「까치집」, 산 그림자 묻을 마음밭 일군다, 강가에 발 담구고 앉아 밤새껏 목울음 운다는 「강섶에서」의 연작 2편, 2연 4행의 단장(斷章)의 「석류」 같은 수작은 그 형식면에서 독창성을 나타낸 실험적 신서정의 전범(典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강대실 시인은 일상의 그 어떤 메시지도 시화할 수 있는 능수능란의 경지에 도달해 있을 뿐더러 아픔과 슬픔으로 부터 희망으로의 환치를 갈망하면서 그만이 지닌 특성을 표출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의 대성을 기대할만하다 아니할 수 없다.

 

 

   

바라건대 강대실 시인이여!

 난마로 어지러운 오늘의 시단에 하나의 질서를 세워 청량제로의 현실을 직시한 처녀시집 『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의 출간을 계기로 보다 그 사조(詞藻)의 빛부심과 건필을 빌며 사족을 붙여 써 해설로 가름한다.

 

                                                                                                                   1999^己卯^秋明 無等山麓 「雪月堂」 詩草菴에서

 

 

 

 

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1999년 9월 10일 인쇄

1999년 9월 15일 발행

 

지은이|강대실

펴낸이|강경호

등 록|1994년 6월 10일 제 05-01-0155호

펴낸곳|도서출판 시와사람

주 소|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192-2번지

전 화|(062)224-5319

팩 스|(062)227-5319

 

값 5,000원

 

ISBN 89-87061-25-6-3810

 

* 잘못된 책은 바꾸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