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봉 일기3-둘레길 쓸다

 
태왕봉 일기3/강대실
-둘레길 쓸다

 

 

오늘도 누군가 둘레길 깔끔히 쓸었다

길 닦아 놓으니 깍쟁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차마 시궁창 디뎠던 발 들여놓기 낯이 없지만

기분은 새벽 강물에 씻은 듯 산뜻하다

 

불현듯 내 해야 할 몫 쓸고 싶어진다

길 가양 늘비한 마른 다복한 댓가지 주워서

머리가 까맸을 적 어깨너머로 배운

아버지 케케묵은 솜씨 대빗자루 맨다

 

숲속 칡넝쿨을 찾자니 알발로 가당찮아

눈에 불을 켜고 둘레길 더듬어

필요 없이 매여 있는 끈을 주어서 묶는다

손에 결은 솜씨 아직껏 쓸 만하다

 

식전에 마당과 고샅을 쓸게 하시고

둘러보고는 정신이 개운하다고 추어주시던

어머니 만족해하시던 얼굴 떠올리며 

잡동사니 널브러진 마음도 함께 소제한다

 

서서히 해도 몇 발 못 쓸어 숨이 찬 미랭시

남은 구간은 내일 모레를 작정하고

혹은, 다른 이의 이어 쓸기를 기대하며

내가 준 자유 출입증 속에 꼭 넣고 발길 돌린다.

(초2-922./2025.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