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 고재종 시/19. 세한도

월정月靜 강대실 2025. 3. 28. 14:16

세한도 / 고재종

 


날로 기우듬해가는 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방송 하나로/

집집의 새앙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내는 댑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켜고/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다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