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14. 육탁시/12. 모서리의 무덤

월정月靜 강대실 2025. 1. 27. 11:49

모서리의 무덤

조개껍질을 줍는다 백사장 조개껍질은 깨진 것도 둥글어져 있어, 시간의 오랜 힘이 모서리를 데려가 이 바닷가

모래로 부려놓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닷가에 와서 삶의 모서리를 굴리고 굴려 떨구어 냈을 것인가.

파도가 지나가자 내 위장 속에서 깨진 조개껍질 절걱거린다. 절걱거리며 위장을 찢고, 드디어는 출혈이 시작된다. 내 위벽 천공은 잦은 과음 탓이 아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던 중년의 무게를

저 파도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분노는 독이 될 뿐이라고 시퍼렇게 후려치며 모멸감에 떨었던 마음 파편을 쓸어가는 바다.

경솔한 자들의 입방아가 허옇게 거품 물고 스러진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성을 쌓고, 나는 조개껍질을 줍다 본다. 저것은 무덤을 빠져나온 생각의 흰 뼛가루, 눈부신 반짝임은 폭양의 장례식 만장.

없는 모서리가 내 마음을 툭 치고 간다. 그러니까 둥글어진다는 것은 거친 세파(世波)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잘 소화시켰다는 것, 삼킨 모서리 소화시키느라 내 위장은 늘 상처투성이다. 그러니 둥글게 산다는 것은 자기 안에 수천 개 흉터를 가지고 사는 일.

모서리를 떨구러 온 사람들이 와와와와 바다에 뛰어든다. 둥글어지기 위해 무덤처럼 둥근 튜브에 몸을 끼운 채, 그러나 평생 바닷가에 살아도

둥글어지기 힘든 삶도 있다. 시인이란 족속, 새로 태어나기 위해 날마다 마음의 알 깰 수밖에 없는, 뾰족한 모서리를 자기 안에 넣고 굴리고 굴릴 수밖에 없는

정신의 흰 뼈, 뼈의 무덤, 정작 둥글어진 것은 봉분이 없다.